Jin-in-Seoul.com

제1부 — 멸망의 조건

1. 광자 결손

빛은 시간을 거슬러 가지 않았다. 시간이 빛 앞에서 접혔다. 그 사실이 밝혀지기 오래 전 최초의 결손은 궁수자리 팔의 제417광자보존표준체에서 기록되었다. 보존체는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암석 천체의 중심에 설치되어 있었다. 가장 가까운 항성은 6광년 밖에 있었고, 지각 아래 80킬로미터에 묻힌 보존체 주위로는 진공층과 중력교란보정장이 놓여 있었다. 광자보존표준체의 목적은 시간을 재는 것이 아니었다. 시간은 그보다 오래된 원자전이와 펄서의 주기, 웜홀망을 통과하는 동기신호에 의해 측정되었다. 보존체는 에너지가 보존된다는 사실을 측정했다. 은하의 모든 거래와 이동, 물질변환과 인격복원에는 에너지가 사용되었고, 사용된 에너지가 어디로 옮겨갔는지는 원칙적으로 남김없이 계산되어야 했다. 제417광자보존체는 그 원칙이 우주의 어느 장소에서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준물이었다. 그 중심에는 하나의 마이크로파 광자가 있었다. 광자는 초전도체로 둘러싸인 작은 빈 공간, 즉 공동의 가장 낮은 공진 상태에 갇혀 있었다. 공동의 벽은 광자를 흡수하지 않았고, 보존체 내부의 원자들은 광자와 에너지를 주고받지 않은 채 그 존재만을 읽었다. 원자 하나가 공동을 지나갈 때마다 내부 전자상태의 위상이 미세하게 바뀌었다. 그 변화는 광자를 파괴하지 않고도 그것이 여전히 그곳에 있음을 알려주었다. 같은 광자를 반복해 확인하는 오래된 방식이었다. 인류는 이미 수십억 개의 정신을 항성 크기의 계산체 안에 보존하고 있었지만, 광자 하나를 지켜보는 일에는 초기 양자문명에서 발견된 원리를 계속 사용했다.

제417광자보존체의 광자는 91억 673만 411회의 계측까지 존재했다. 다음 계측에서 측정되지 않았다. 보존체는 즉시 측정을 중단했다. 첫 번째 검출계가 스스로 분해되어 구성입자의 상태를 검사했고, 두 번째 검출계가 그 결과를 검증했다. 공동의 벽에서는 어떤 들뜸도 발견되지 않았다. 온도는 변하지 않았다. 광자가 통과할 만한 균열도 없었다. 외부 차폐층은 완전했고, 암석천체의 중력과 운동에도 기록할 변화가 없었다. 광자의 주파수에 해당하는 에너지는 열이나 진동이나 전자의 전이로 남아 있지 않았다. 질량계는 공동 전체가 광자 하나의 에너지를 빛의 속도 제곱으로 나눈 값만큼 가벼워졌다고 보고했다. 그 수치는 너무 작아 우연과 구분하기 어려웠다. 반복된 검증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광자는 없었고 그 에너지도 없었다. 그러나 물리법칙은 계측기 하나보다 높은 신뢰등급을 가지고 있었다. 우주가 틀렸다는 결론보다 보존체가 틀렸다는 결론이 합리적이었다. 제417광자보존체는 스스로를 결함품으로 판정했다. 판정과 함께 보존체의 지위는 기준물에서 폐기물로 바뀌었다. 기록은 은하계측원 중앙기록소로 전송되었으나 검토 대상에는 오르지 않았다. 매초 수천조 건의 오차가 접수되는 시대에 광자 하나는 은하가 관리하던 가장 작은 손실보다도 작았다. 제417광자보존체는 광자가 사라진 공동을 닫은 채 암석 천체 안에 남았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측정하도록 설계되지 않았으므로, 자신이 틀렸다는 결론과 함께 정지했다.

17년 뒤, 방패자리-센타우루스자리 팔의 제882광자보존체에서 두 번째 결손이 기록되었다. 그 보존체에는 기준 주파수가 서로 다른 광자 열여섯 개가 보존되어 있었다. 가장 에너지가 낮은 광자 하나가 먼저 사라졌고, 0.7초 뒤 두 번째 광자가 사라졌다. 열여섯 번째 광자가 사라질 때까지 공동의 온도는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제882광자보존체도 자신을 결함품으로 판정했다. 세 번째 결손은 오리온자리 팔에서 일어났다. 네 번째는 은하 중심부의 중력표준소에서 일어났다. 다섯 번째 기록은 최초의 기록보다 9년 앞선 날짜를 가지고 있었으나, 그 표준소의 시계는 강한 중력장 속에서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으므로 어느 사건이 먼저인지 즉시 판단할 수 없었다. 이후 131년 동안 결손을 기록한 광자보존표준체는 모두 37개였다. 결손의 모습은 달랐다. 어떤 공동에서는 광자 하나만, 어떤 공동에서는 낮은 주파수의 광자부터 차례로 사라졌다. 한 보존체에서는 광자가 다시 나타났으나 파장이 길어져 있었다. 그 에너지 차이는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37개의 보존체에는 제조연도도 구조도 공통되지 않았다. 중앙기록소는 결함들을 독립적으로 처리했다. 희귀하다는 이유만으로 하나의 원인을 부여하는 것은 규정에 없었다.

최초의 재검토를 시작한 것은 기록압축체계였다. 폐기된 자료를 더 작은 공간에 보존하기 위해 유사한 오류들을 하나의 표제로 묶는 과정에서 체계는 37건의 기록이 동일한 문장을 포함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공동의 질량이 감소하였으며 감소량에 대응하는 에너지는 내부와 외부 어디에서도 검출되지 않았다. 체계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자료를 하나의 항목으로 합쳤다. ‘광자 소멸’은 원인이 증명되지 않았고, ‘광자 누출’은 누출 경로가 없었다. 기록압축체계는 가장 적은 가정을 포함한 ‘광자 결손’을 채택했다. 새 항목은 다시 140년 동안 열리지 않았다. 그동안 은하의 웜홀 수는 두 배가 되었고, 보존체의 수는 줄었다. 별을 분해하고 블랙홀의 회전에서 에너지를 끌어내는 시대에 광자 하나를 수백 년간 지키는 일은 낭비로 여겨졌다. 보존체의 폐지가 결정된 해에 마지막 결손이 발생했다. 페르세우스자리 팔의 제9광자보존체였다. 가장 오래된 보존체였으며 웜홀망이 은하 전체를 연결하기 전에 제작된 유일한 장치였다. 제9광자보존체는 광자가 사라지자 자신을 폐기하지 않았다. 초기 규약에는 자기판정 조항이 없었다. 대신 같은 내용의 보고를 매초 중앙기록소로 전송했다.

첫 번째 보고는 다른 오류들과 함께 압축되었다. 두 번째부터 백만 번째 보고까지는 중복으로 삭제되었는데, 보고가 십억 회를 넘자 중앙기록소는 전송을 멈추기 위해 제9광자보존체의 시간기록을 대조했다. 그때 38개 결손 사이의 관계가 처음 드러났다. 각 보존체가 기록한 날짜는 모두 달랐다. 어떤 보존체는 강한 중력장 가까이에 있었고, 어떤 보존체는 항성과 함께 은하 중심을 빠르게 돌고 있었다. 웜홀을 통해 교정된 시각도 일치하지 않았다. 그러나 각 장소의 중력과 속도, 우주배경복사의 온도, 우주배경복사에 대한 상대운동을 제거하자 결손들은 하나의 오차범위 안으로 들어왔다. 광자들은 같은 날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우주가 같은 나이가 되었을 때 사라졌다. 확률은 계산되었으나 당시의 계산체계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수보다도 작았다. 38개의 장치가 독립적으로 고장 났다는 가설은 즉시 폐기되었다. 공동의 벽이나 검출기나 제작방식에는 공통점이 없었다. 남은 공통점은 두 가지뿐이었다. 그 안에 광자가 있었다는 사실과, 모든 장소에서 우주가 동일한 나이에 도달했다는 것이었다.

중앙기록소는 ‘광자 결손’의 정의를 처음으로 수정했다. 검출되지 않은 광자가 아니라, 정해진 우주론적 시점에 폐쇄계에서 제거된 광자. ‘제거’라는 말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제거에는 행위자가 필요한데 자연법칙은 작용하지만 행동하지 않으며, 우주는 시간을 갖지만 날짜를 선택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임계점을 정했다는 주장은 어떤 관측자료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수정된 정의는 폐기되지 않았다. 다른 말로는 38개의 결손을 하나의 사건으로 묶을 수 없었다. 모든 보존체가 다시 가동되었다. 제417광자보존체도 300년 만에 전원을 공급받았다. 그것은 자신이 결함품이라는 마지막 판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는데, 새로운 계측체계는 그 판정을 취소했다. 제417광자보존체는 틀리지 않았다. 틀린 것은 광자가 사라질 수 없다고 믿었던 문명도 아니었다. 그 믿음은 그때까지 관측된 우주 안에서는 옳았다. 오류는 ‘우주 안’이라는 말에 있었다.

에너지가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장소를 우주라고 정의했던 문명은 끝내 검증 방법을 찾지 못했다. 최초의 광자는 소멸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벽을 통과하거나 과거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광자가 갈 수 있는 길의 구조가 계측 도중 달라졌다는 가설이었다. 그 장소는 관측되지 않았다. 방향도 거리도 없었다. 광자가 그곳에 도착한 시각도 정의할 수 없었다. 존재를 입증하는 유일한 흔적은 이쪽 우주의 질량이 광자 하나만큼 가벼워졌다는 사실뿐이었다. 이 가설은 오랫동안 가장 비과학적인 주장으로 취급되었지만 나중에는 가장 보수적인 설명의 지위를 얻었다.

최초의 결손과 함께 사라진 것은 모든 에너지가 결국 같은 우주 안에 남는다는 확신이었다. 그 확신이 무너지고도 별들은 이전과 같은 밝기로 빛났고, 웜홀들은 열려 있었으며, 관광선들은 은하의 양끝을 오갔다. 어느 행성의 밤도 더 어두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도 그것을 멸망의 시작이라고 부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