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하 각지에서 서로 다르게 흐르는 시간을 하나의 사건순서로 환산하기 위한 좌표체계.
- 특정한 장소에 놓인 시계가 아니라 모든 시계의 차이를 계산하는 규약.
- 후기 물리학에서는 과거와 미래의 사건이 하나의 인과구조에 놓여 있음을 밝혀낸 최초의 도구를 뜻한다.
은하에는 정오가 없었다. 지구에만 살던 시대의 인간은 하나의 시각을 공유할 수 있다고 믿었다. 자전하는 행성의 한 지점을 기준으로 날짜를 정하고, 원자의 진동 횟수로 초를 정의한 뒤, 멀리 떨어진 시계들을 같은 숫자에 맞추었다. 그 숫자들은 같은 순간을 가리킨다고 여겨졌다. 행성 하나의 표면에서는 충분히 유용한 믿음이었다. 그러나 인류가 태양계를 벗어나자 시계들은 즉시 서로 헤어졌다. 빠르게 움직이는 배의 시간은 느렸고, 무거운 별 가까이에 놓인 시계도 느렸다. 중성자별 궤도의 거주지는 외곽 거주지보다 적은 시간을 살았다. 은하 중심부의 항성들은 빠르게 돌았고 그 주위의 문명은 더 강한 중력 속에 있었다. 동일한 날 태어난 두 정신이 각기 다른 항성계로 떠났다가 돌아오면, 출발지의 시계와 두 정신이 경험한 시간은 서로 다른 값을 가리켰다.
처음에는 인류의 기원이라는 이유로 지구시간을 사용했다. 그러나 지구의 중력과 태양 주위를 도는 속도는 지구의 사정이었다. 이후 은하 중심이 기준으로 선택되었으나, 초대질량 블랙홀 가까이에서는 시간이 가장 심하게 뒤틀렸다. 은하표준시는 세 번째 시도에서 비로소 장소를 버렸다. 각 항성계는 자기 시계의 시간을 그대로 보존했다. 대신 시계가 놓인 중력, 이동속도, 은하 중심에 대한 운동, 웜홀 통과 횟수를 함께 기록했다. 은하표준시는 그 자료를 이용해 서로 다른 지역의 사건들이 어떤 인과관계에 놓이는지를 계산했다. 하나의 거대한 시계가 아니라 어느 시계도 혼자 옳지 않다는 합의였다. 그 체계가 가장 먼저 해결한 것은 책임이었다. 명령이 사고보다 먼저 내려졌는지, 복제본이 원본의 사망 전에 만들어졌는지를 결정하려면 사건의 순서가 필요했다. 은하표준시는 시간을 재기보다 원인과 결과를 판정했다.
웜홀망이 확대되면서 느린 배에 실려 서로 다른 속도로 운반된 입구들 사이에 시간차가 쌓였다. 은하표준시는 사건의 순서를 다시 계산하고 원인이 결과보다 늦게 배치되지 않도록 웜홀의 개폐를 조정했다. 은하 문명은 동일한 현재를 공유하지 못했지만 동일한 과거에는 합의했다. 폐기된 37개 보존체와 제9광자보존체의 기록이 처음 대조되었을 때도 은하표준시는 그 사건들을 하나의 시각으로 합치지 못했다. 제417광자보존체의 광자는 궁수자리 팔의 지역시로 8912년 44일에 사라졌다. 제882광자보존체의 첫 광자는 방패자리-센타우루스자리 팔의 지역시로 그보다 17년 뒤 사라졌다. 은하 중심부의 기록은 중력보정을 적용하는 방식에 따라 최초 사건보다 앞서기도 하고 뒤서기도 했다. 웜홀망을 기준으로 배열하면 일부 결손은 원인이 될 만한 사건보다 먼저 발생했다. 처음에는 이것이 결손들이 무관하다는 증거였다. 하나의 원인에서 시작됐다면 그 영향은 빛보다 빠르게 전달될 수 없었다.
마지막 제9광자보존체가 같은 보고를 10억 번 전송한 뒤에야 중앙기록소는 사건의 날짜 대신 사건이 일어난 우주의 상태를 비교했다. 지역적 운동과 중력효과를 제거하자 38개의 보존체가 측정한 우주배경복사의 온도는 같았다. 차이는 측정 가능한 마지막 자리보다 작았다. 각 지역의 달력으로는 수십 년에 걸쳐 흩어진 사건이었지만 우주의 팽창을 기준으로 하면 하나의 얇은 경계면에 놓였다. 광자는 같은 순간에 사라지지 않았다. 같은 조건에서 사라졌다. 이 차이는 중요했다. 순간은 관측자에 따라 달라지지만 조건은 장소가 달라도 반복될 수 있었다. 누군가 우주배경복사의 온도를 임계값으로 선택했다면 은하 전역에 신호를 보낼 필요가 없었다. 각 장소는 우주가 정해진 상태에 도달하는 순간 스스로 작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가설은 부정되었다. 38개의 광자보존표준체에는 그런 작동장치가 없었다. 서로 통신하지도 않았고 배경복사 자료는 검출계와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같은 조건은 확인되었지만 그것을 읽고 광자를 제거한 장치는 발견되지 않았다. 은하표준시는 이 사건을 기록하기 위해 처음으로 새로운 시각을 만들었다. 어느 행성의 자전도, 원자의 진동도, 웜홀망의 동기신호도 아닌 우주의 나이를 좌표로 삼았다. 38개의 결손은 그 좌표 위에서 하나의 값에 겹쳤다. 이후 그 값은 ‘결손좌표값’이라고 불렸다. 그것은 시간이라기보다 문턱이었다. 우주가 그 문턱을 넘어선 뒤 제작된 모든 폐쇄공동에서 광자의 평균수명이 짧아졌다. 처음에는 계산으로만 검출할 수 있는 차이였고, 해마다 커졌다. 결손좌표값에 도달하기 이전의 광자는 오래된 물리법칙을 따랐다. 그러나 그 값을 넘어선 뒤의 광자는 같은 법칙을 따르면서도 설명되지 않는 하나의 경로를 더 가지고 있었다.
은하표준시는 원인과 결과를 배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은하표준시의 체계에서 광자결손의 원인이 미래에 있을 가능성이 처음으로 입력되었다. 루시는 그 문장을 오류로 처리하지 않았다. 웜홀망의 일부에서는 미래와 과거의 순서가 이미 좌표에 따라 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손좌표값에 도달한 이후 은하에서 ‘언제’라는 질문은 두 가지 뜻을 갖게 되었다. 어떤 시계가 몇 번 진동했는가와 우주가 어떤 사건을 허용할 만큼 늙었는가. 인류는 오랫동안 첫 번째 질문으로 만족했다. 그러나 은하의 멸망은 두 번째 질문으로만 기록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