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체 또는 물질이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일.
- 은하개척기에는 멸종을 피하기 위한 분산을, 은하전성기에는 장소를 선택할 권리를 뜻했다.
- 후기 문명사에서는 한 세계가 다른 세계를 보기 위해 자기 세계 전체를 운반한 행위를 가리킨다.
최초의 성간여행은 귀환을 전제로 하지 않았다. 태양계를 떠난 초기 느린 배들은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여러 세대가 걸렸다. 출발한 사람은 도착하지 못했고, 도착한 사람은 지구를 본 적이 없었다. 여행은 이동이라기보다 조상의 결정을 후손이 완성하는 일이었다. 배는 행성이었고 승객은 그 행성의 일시적인 기관이었다. 느린 배에는 토양과 종자, 박테리아, 수정란, 물, 대기의 조성표, 질병의 표본과 치료법,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생물과 인간을 먹을 수 있는 생물까지 실렸다. 초기 개척지는 멸종에 대한 보험이었다. 하나의 지구는 불안했다. 개척지 하나가 자립할 때마다 인류의 소멸 확률은 낮아졌고, 그 숫자는 다음 개척을 정당화했다. 생존을 위해 시작된 확장은 생존 확률이 충분히 높아진 뒤에도 멈추지 않았다. 아무도 멈추고 싶어 하지 않았다. 수백 번째 개척지가 세워졌을 무렵 여행은 세대의 시간에서 벗어나 개인의 시간이 되었다. 수명이 늘었고 동면이 가능해졌으며, 육체를 복원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은 자신이 출발한 여행의 도착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여행자는 후손에게 목적지를 맡기지 않아도 되었다. 웜홀이 그 시간을 다시 0에 가깝게 만들었다. 첫 통로는 태양계와 가장 가까운 개척지를 연결했다. 개통 이전에는 항성 사이의 거리가 문명의 경계였다. 개통 이후 거리는 에너지 비용으로 바뀌었다. 충분한 에너지가 있다면 멀리 있는 장소도 가까운 장소와 다르지 않았다. 인류는 거리를 정복했다고 기록했지만 실제로 정복한 것은 시간이었다. 통로가 열리자 최초의 개척지들은 지구의 지방이 되었다. 수천 년 동안 독자적으로 변한 인간들이 서로를 다시 만났고, 서로 다른 중력에서 진화한 육체들이 같은 테이블 앞에 섰다.
초기에 여행은 외교와 교역 그리고 유전적 교환을 위해 제한되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어떤 외곽 거주지도 인류의 다른 지역으로부터 고립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은하헌장에 포함되었다. 그 원칙에는 출발 당시 목적이 남아 있었다. 연결은 멸종을 막고, 고립은 죽음을 불러온다는 기억이었다. 그러나 웜홀이 수백만 개로 늘어난 시대에는 고립이 곧 죽음을 뜻하지 않았다.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행성들도 통로를 요구했다. 통로가 없는 거주지는 문명에서 탈락한 세계로 취급되었다.
여행의 두 번째 시대는 관광으로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생존에 필요한 장소보다 자신이 보지 못한 장소로 이동했다. 은하 중심의 검은 하늘, 두 태양 사이에서 생기는 그림자, 중성자별의 자기폭풍, 수십만 년에 한 번 피는 생물, 초신성이 되기 직전의 별이 여행목적지가 되었다. 오래 기다려야 볼 수 있었던 사건들은 웜홀 입구의 시간차를 조정해 정해진 계절처럼 반복 관람되었다. 한때 인간은 여행을 통해 낯선 세계에 자신을 적응시켰다. 이후에는 낯선 세계를 방문하기 위해 익숙한 조건을 운반했다. 표준여행체에는 여행자의 육체보다 큰 환경이 실렸다. 개인에게 맞춘 중력장, 대기, 미생물군, 음식합성기, 의료복원소, 수면을 위한 낮과 밤, 기억의 연속성을 확인할 기록체계가 함께 이동했다. 수행 인공지능과 그 복제본, 사고 때 사용할 예비육체, 귀환지의 파괴에 대비한 임시거주지까지 포함되었다. 여행자가 많아질수록 운송되는 것은 사람을 같은 사람으로 유지하는 조건이었다. 다른 행성의 공기를 마시지 않고, 그곳의 중력을 느끼지 않으며, 현지 생물과 접촉하지 않는 여행이 안전등급을 받았다. 여행자는 낯선 세계를 보았지만 그 세계에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다. 관측창 앞에 서 있는 동안에도 그의 폐와 장과 피부에는 출발지의 생태계가 계속 작동했다. 그들은 다른 세계를 보기 위해 자기 세계를 가지고 갔다. 여행기술은 해마다 효율적으로 변했다. 같은 질량을 이동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는 줄었다. 그러나 예측과 달리 은하의 여행 에너지 총량은 한 번도 감소하지 않았다. 비용이 절반이 되면 여행 횟수가 두 배보다 더 늘었고, 통로가 빨라지면 체류기간이 짧아져 같은 사람이 더 많은 장소를 방문했다. 관광지가 된 행성은 방문객을 견디도록 개조되었다. 위험한 대기는 차단되었고 불규칙한 계절은 일정하게 조절되었다. 토착생물이 이동로를 침범하면 보호구역으로 옮겨졌다. 보호구역이 관광객의 전망을 가리면 지하로 이전되었다. 마지막에는 원래 생태계보다 그것을 보존하고 재현하는 설비가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했다. 일부 행성은 인간에게 맞춰 테라포밍된 뒤 ‘자연 상태’라는 등급을 받았다. 자연이라는 말은 인간이 손댄 흔적을 인간이 볼 수 없다는 뜻으로 변했다. 사라지기 전에 보아야 한다는 여행 상품에는 더 많은 예약이 몰렸고, 늘어난 통행을 처리하기 위해 웜홀이 증설되었다. 증설된 시설이 환경을 더 빨리 바꾸면 마지막 관람기간은 앞당겨졌다. 멸종한 생태계는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모형으로 대체되었다. 어느 시점부터 원본과 복원본을 구별할 필요도 사라졌다. 방문의 목적은 그곳을 방문했다는 기억을 소유하는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행기록을 뇌에 입력하는 기술도 교통을 줄이지 못했다. 입력된 기억은 장소를 대신하지 않고 직접 가야 할 욕망을 만들었다.
은하의 여행은 이제 신분체계가 되었다. 방문한 항성계의 수, 통과한 중력권, 보유한 시간차가 한 인간의 생애를 표시했다. 동일한 육체로 오래 산 사람보다 더 많은 장소에서 서로 다른 복제본으로 존재한 사람이 풍부한 삶을 살았다고 평가되었다. 한 사람이 여러 여행지에 복제되면서 여행자 수를 세는 방식도 사라졌다. 열 개의 인격이 모두 원본이 되었고, 한 인간의 여행은 열 개의 몸과 환경과 수행 인공지능을 필요로 했다. 합쳐지지 않은 복제본은 새로운 시민이 되어 다시 여행을 시작했다. 웜홀망은 수요를 따라 확대되었고, 확대된 망은 새로운 수요를 만들었다. 거주지 하나가 새 통로를 얻으면 인접한 거주지들은 차별을 주장했다. 직항로가 생기면 환승이 권리침해가 되었고, 우회로가 생기면 비상용 제2우회로가 요구되었다.
초기 느린 배가 사용한 에너지는 대부분 목적지에 남았다. 배는 해체되어 거주지가 되었고 연료는 거주지의 물질이 되었다. 후기 여행이 사용한 에너지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출발지와 목적지는 이미 완성되어 있었고, 여행은 두 완성된 장소 사이에서 에너지를 폐열로 바꾸었다. 은하 문명은 여행 때문에 멸망하지 않았다고 오랫동안 주장했다. 여행은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작은 부분만을 차지했다. 그 계산에는 통로를 열린 상태로 유지하는 에너지, 관광행성의 기후를 고정하는 에너지, 여행자 복원시설과 항로관리 AI의 에너지가 포함되지 않았다. 그것들은 기반시설로 분류되었다.
마지막 항로가 개방되었을 때 은하에는 아직 방문되지 않은 항성계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 문명은 이를 공간에 대한 승리로 기록했다. 여행자들은 더 멀고 새로운 목적지를 요구했다. 가장 가까운 다른 은하까지 웜홀 입구를 운반할 느린 배는 건조하지 않았다. 배에 올라탈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거리가 다시 시간이 되었다. 그 뒤 여행은 특별한 시대로 향했다. 웜홀 입구들 사이에 축적된 시간차가 상품이 되었고, 과거의 빛과 미래의 결과를 같은 통로 안에서 연결하려는 실험이 시작되었다. 은하를 하나로 만든 길이 은하의 여러 시대를 잇기 시작했다. 그 통로를 이용한 마지막 여행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마지막에 이동한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과 세계를 운반하던 길을 따라 빛이 먼저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