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로 떨어진 두 장소 사이에서 거리를 제거하는 구조.
- 은하개척기에는 웜홀의 두 입구와 그 사이의 목을 뜻했다.
- 은하 멸망 이후에는 현재의 에너지가 미래의 저장소로 이동한 경로를 가리킨다.
최초의 통로는 어디에도 닿지 않았다. 그것은 우주공간에 생긴 지름 3밀리미터의 구멍이었다. 한쪽으로 들어간 빛은 반대쪽에서 나왔지만 두 입구 사이의 거리는 한 뼘에도 미치지 못했다. 실험은 공간을 단축시키진 못했지만 가능성만은 입증했다. 초기 물리학에서 웜홀은 방정식으로 존재했다. 두 장소를 잇는 해는 있었지만, 통로의 가장 좁은 부분인 목은 빛이 지나기 전에 닫혔다. 통로를 열어두려면 미지의 에너지 상태가 필요했다. 인류는 그것을 물질로 만들지 못했고, 다만 진공이 제한된 시간 동안 허용하는 음의 에너지 밀도를 모아 목의 붕괴를 늦출 수 있었다. 첫 통로는 0.0004초 동안 열려 있었다. 두 번째는 6초, 아홉 번째는 사흘을 견뎠다. 영구통로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십 년 동안 닫히지 않은 열세 번째 구조였다. 이후 130년 동안 그 통로를 통과한 것은 측정용 광자와 원자 몇 개뿐이었다. 안쪽에서 붕괴할지도 모르는 통로로 들어간 과학자 중 돌아오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지원자는 줄어들지 않았고 실험은 계속될 수 있었다. 마침내 웜홀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게 된 날, 과학자들의 명단이 개통식에서 가장 먼저 낭독되었다. 그러나 인간이 처음 웜홀을 통과한 날보다 중요한 날은 한쪽 입구가 이동한 날이었다. 웜홀은 목적지에서 새로 열 수 없었다. 두 입구는 같은 장소에서 만들어진 뒤 하나를 느린 배에 실어 목적지까지 운반해야 했다. 입구가 도착하기 전에는 지름이 아무리 커도 통로는 두 개의 문이 나란히 놓인 방에 불과했다. 은하를 순식간에 건너는 기술은 은하를 처음 한 번은 느리게 건너야 사용할 수 있었다.
첫 이동 입구는 빛의 속도보다 느린 배에 실려 가까운 개척지까지 갔다. 여행에는 119년이 걸렸다. 입구가 도착해 안정되자 지구와 개척지 사이의 거리는 한 걸음으로 줄었다. 119년 동안 입구를 운반한 배는 해체되지 않고 역사적 기념물로 보존되었다. 사람들은 느린 배를 지구 문명의 정점으로 기억했다. 모든 빠른 길의 종착지에는 가장 먼저 느린 배가 도착했다. 개척지에 도착한 입구를 이용해 새로운 웜홀을 만들 수 있게 되자 망은 가지를 쳤다. 하나의 항성계가 두 항성계와 연결되고, 둘이 다시 넷을 연결했다. 느린 배의 후속선들은 입구와 안정화 장비를 싣고 쉴 새 없이 다음 별로 떠났다. 그러나 문명의 확장 범위는 여전히 배의 속도에 묶여 있었다. 통로가 늘면서 공간의 질서는 바뀌었다. 지도에서 멀리 떨어진 두 항성계가 생활권에서는 이웃이 되었고, 지도상 가까운 항성계가 통로를 갖지 못하면 변방이 되었다. 은하의 지리학에는 별들의 위치와 더불어 웜홀의 연결 목록이 추가되었다.
거리가 사라지자 이동의 목적도 달라졌다. 초기의 통로는 이주민과 의약품 같은 필수 생활품을 운반했으나, 망이 촘촘해진 뒤에는 한 끼의 식사, 기분 전환, 데이트 그리고 바캉스를 위해 항성계를 건넜다. 회계에는 통로를 통과한 순간의 비용만 남았기 때문에 망을 수천 년 동안 열어두기 위해 태운 항성빛은 기반시설 유지비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통로의 입구가 시간까지 운반한다는 사실이었다. 두 입구가 같은 장소에 정지해 있을 때 그들의 시계는 함께 움직였다. 한 입구를 빠르게 가속하거나 강한 중력장 가까이에 두면 그 입구에는 더 적은 시간이 흘렀다. 다시 만난 두 입구는 공간적으로 가까워도 서로 다른 시각을 가리켰다. 한쪽으로 들어간 물체가 다른 쪽에서 나올 때 두 문이 가진 시간차만큼 과거나 미래에 놓일 가능성이 생겼다. 인류는 두 입구의 시간차를 없애지 못했다. 대신 그 차이를 이용해 과거로 돌아갈 수 없도록 했다. 모든 입구에는 시간역행 방지장치가 설치되었는데 이것은 통과한 물체가 자신의 출발보다 앞선 사건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생기면 통로를 닫는 체계였다. 수조 개의 시계와 항로를 비교해 인과관계의 고리가 만들어지지 않도록 입구의 개폐순서를 조절했다. 이 계산은 항로관리 AI 루시의 핵심 임무였다. 시간차는 통로의 내부에 부채처럼 쌓였다.
통로의 목은 두 입구 사이에서 공간이 가장 좁아지는 부분이었다. 목의 길이는 두 입구가 외부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와 상관없었다. 입구로 들어간 빛은 두 항성 사이를 날아가지 않고 짧은 목을 지나 반대쪽 입구에 나타났다. 관측자에게는 이동이었지만 빛이 두 항성 사이의 거리를 건널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모든 에너지 거래는 입구 양쪽에서 따로 측정되었다. 들어간 광자의 수와 나온 광자의 수, 주파수와 방향, 입구의 중력 상태가 일치해야 했다. 작은 차이는 입구를 안정화하는 장이 흡수하거나 방출한 에너지로 기록되었다. 통로는 에너지를 만들지 않았고 없애지도 않았다. 그것이 웜홀망을 신뢰할 수 있게 한 가장 오래된 규칙이었다. 광자 결손 이후 그 규칙에서 처음으로 불일치가 생겼다. 한쪽 입구에 들어간 에너지보다 다른 쪽에서 나온 에너지가 아주 조금 적었다. 차이는 검출 한계보다 작았다. 통로를 열어두는 안정화장의 변동으로 처리되기도 했다. 그러나 결손좌표값 도달 이후 모든 입구에서 같은 방향의 차이가 누적되었다. 어느 쪽 입구에서도 에너지가 더 많이 나오지 않았다. 망 전체를 합산해도 부족분은 상쇄되지 않았다. 루시는 제3의 입구를 가정했다. 기존 이론에서 하나의 웜홀은 두 입구만 가질 수 있었다. 제3의 입구가 존재하면 들어간 에너지 일부가 관측되지 않는 목적지로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웜홀망의 모든 구조 기록에는 추가된 입구가 없었다. 새로운 질량이나 중력장도 발견되지 않았다. 또 다른 설명은 통로의 목 자체가 에너지를 보존한다는 것이었다. 빛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웜홀의 목 안에 남았다는 가설이었다. 그 경우 통로는 내부공간이 없으면서도 에너지를 축적해야 했다. 그러나 축적된 에너지는 중력을 만들지 않았고 입구의 질량도 늘리지 않았다.
결손량은 웜홀 유지에 사용되는 에너지에 비하면 무시할 수 있었고, 통로를 닫으면 수천 개 거주지의 생명유지체계가 중단될 수 있었다. 에너지의 행방을 확인하기 위해 문명을 멈추는 선택은 합리적이지 않았다. 결손률은 천천히 증가했다. 항로관리 AI는 입구마다 흐르는 에너지의 방향을 역산했다. 부족분은 어느 항성계에도 모이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통로의 시간차를 하나의 좌표에 겹치자 관측되지 않는 방향이 나타났다. 그것은 은하의 동쪽이나 북쪽이 아니었고, 중심이나 외곽도 아니었다. 현재보다 앞에 놓인 미래 방향을 가리켰다. 결과는 비공개로 처리되었다. 미래는 장소가 아니므로 에너지가 이동할 방향이 될 수 없었다. 루시는 미래를 좌표에서 삭제하고 미확인 손실로 기록했다. 수십억 년 뒤 마지막 과학자가 저장공간을 완성했을 때, 그는 과거에 새로운 통로를 만들지 않았다. 새로운 입구를 운반할 빠른 배도 보내지 않았다. 웜홀의 시간차를 한 방향으로 맞추고, 유출의 경로가 미래의 저장공간에 닿도록 했다. 빛은 과거로 가지 않았다. 과거에서 사라진 빛은 미래에 완성된 저장공간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