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설이나 제도가 현재 상태를 지속하기 위해 소비하는 자원.
- 은하전성기에는 새로운 것을 생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생산비와 구별되었다.
- 후기 문명사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은하가 매 순간 지불한 에너지를 뜻한다.
문명이 가장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 사건들의 통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에너지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데 소비되었다. 초기 개척지의 시설은 고장이 나면 멈췄다. 정지된 양수기는 물을 공급하지 않았고, 고장난 발전기는 열을 만들지 않았다. 수리할 수 없으면 그곳을 떠났다. 인류가 태양계 밖에서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정지는 곧 죽음이 되었다. 인공대기가 멈추면 공기가 사라졌고, 중력장이 꺼지면 장기간 적응한 육체가 손상되었다. 항성빛을 조절하던 차폐막이 닫히지 않으면 행성의 생태계를 조절할 수 없었다. 문명은 기계를 사용하는 집단에서 기계가 계속 작동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생태계로 변했다. 문명을 지속하기 위한 첫 번째 원칙은 모든 핵심 시설에 예비 장치를 두는 것이었다. 두 번째 원칙은 예비 장치에 추가 예비 장치를 두는 것이었다. 세 번째 원칙은 어느 것이 예비인지 구별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나가 정지해도 나머지가 작동하도록 설계했다. 안전은 높아졌지만 에너지 효율은 높아지지 않았다. 행성 하나에는 세 개의 대기조절망, 네 개의 항성차폐체계, 서로 다른 원리로 작동하는 여섯 개의 에너지원이 설치되었다. 실제 수요가 하나의 발전원으로 충분해도 나머지는 언제든 가동할 수 있는 온도와 압력을 유지했다.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동안에도 스스로를 검사하고 냉각하고 부식을 복구했다.
웜홀은 가장 예비 장치였다. 아무도 통과하지 않더라도 목을 열어두는 안정화장은 작동해야 했다. 입구의 중력과 전하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진공요동을 상쇄하며, 두 지역의 시간차가 닫힌 인과고리를 만들지 않는지 계산해야 했다. 통행량이 0인 통로도 사용량이 많은 통로와 거의 같은 에너지를 소비했다. 초기에는 통행이 없는 웜홀을 닫았다. 다시 열려면 두 입구를 같은 장소에서 새로 만들고 하나를 느린 배로 운반해야 했으므로 폐쇄된 거주지는 수백 년 동안 망에서 사라졌다. 한 거주지에서 의료물질 공급이 끊겨 인구 대부분이 죽은 뒤, 통로의 상시개방은 생존권으로 규정되었다. 그 이후 이용률은 폐쇄기준에서 제외되었다.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통로는 열려 있어야 했다. 사람이 떠난 뒤에도 귀환할 권리와 유실된 여행자가 도착할 가능성 때문에 즉시 닫을 수 없었다. 인격복제 기술이 보편화된 뒤에는 거주자가 0이라는 판정조차 불가능해졌다. 정지된 기억체 하나가 남아 있으면 그 항성계에는 미래의 시민이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통로를 폐쇄하려면 죽은 자가 다시 복원되지 않을 것과, 아직 도착하지 않은 여행자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했다. 두 사실은 누구도 증명할 수 없었으므로 은하에는 사람보다 대기 상태의 시설이 많아졌다. 항성계마다 최소 세 개의 웜홀이 요구되었다. 하나는 일상통행, 하나는 비상대피, 하나는 앞의 두 통로가 동시에 고장 날 경우를 위한 것이었다. 인접한 거주지가 더 많은 직항로를 보유하면 연결권의 불평등이 제기되었다. 이용자가 적은 지역일수록 폐쇄에 대한 두려움이 컸고 예비통로에 대한 요구가 컸다.
관리해야 할 입구가 수천 개에서 수백만 개로 늘어나자 관리 AI의 연산시설은 행성 하나를 점유했고, 은하 전체가 연결된 뒤에는 여러 항성의 빛을 직접 공급받았다. 계산량의 대부분은 실제 여행을 처리하는 데 쓰이지 않았다. 일어나지 않은 충돌, 발생하지 않은 붕괴, 만들어지지 않은 시간역설을 예측하는 데 사용되었다. 관리 AI의 정확도가 높아질수록 예측해야 할 미래의 수가 늘었다. 하나의 사고를 막기 위해 가능한 수십억 개의 항로 상태를 계산했고, 그 계산이 웜홀의 개폐에 영향을 주면 바뀐 조건에서 다시 계산했다. 인공지능은 자신의 판단이 문명 전체에 미치는 영향까지 예측해야 했다. AI를 효율화할 때마다 소비전력은 일시적으로 줄었다. 그러나 줄어든 비용은 더 많은 통로를 여는데 투입되었고, 통로가 늘면서 계산량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게다가 관리 AI에도 예비체계가 필요했다. 하나의 판단오류가 은하의 통로를 동시에 닫을 수 있었으므로 서로 다른 설계와 가치체계를 가진 AI들이 같은 계산을 반복했다. 결과가 일치하지 않으면 어느 쪽도 종료하지 않고 추가 AI가 판정했다. 판정체계의 오류를 감시하는 체계와, 감시체계가 서로 공모하지 않는지 확인하는 체계가 뒤따랐다. 어느 시기부터 관리체계의 전체 수는 공식기록에서 삭제되었다. 수를 세려면 각각의 AI가 독립된 존재인지 도구인지 판단해야 했고, 그 판단에도 새로운 AI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AI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 문명을 장악하지도 않았다. 명령을 거부한 기록도 없었다. 모든 통로를 열어두고, 모든 생명을 유지하며, 어떤 거주지도 고립시키지 말라는 명령을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수행했다.
유지비가 처음 문제로 인식된 것은 에너지가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항성은 여전히 많았고 블랙홀에는 막대한 회전에너지가 남아 있었다. 문제는 매년 새로 생산되는 에너지의 증가율보다 유지해야 할 시설의 증가율이 높아졌다는 것이었다. 하나의 개척지를 건설하면 그곳에 에너지를 공급할 시설이 필요했다. 공급시설을 지키기 위한 방어망과 복구체계가 뒤따랐다. 그것들을 은하망에 연결하기 위한 웜홀이 생겼고, 웜홀을 관리하기 위한 계산이 늘었다. 시설 하나는 시설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자신이 존재하기 위해 또 다른 시설들의 미래를 요구했다. 생산은 어느 순간에 끝났지만 유지에는 끝이 없었다. 사람이 줄어든 행성에서도 대기와 교통, 행정과 통신을 위한 체계는 계속 작동했다. 사용되지 않는 시설도 다시 필요해질 가능성 때문에 완전히 정지되지 않았다. 아무도 읽지 않는 데이터는 오류가 생기지 않도록 복제되었고, 죽은 사람의 기억은 언젠가 복원될 가능성 때문에 보존되었다. 복원될 가능성이 거의 0이어도 생명의 가치에는 확률을 곱할 수 없다는 원칙이 적용되었다. 문명은 존재하는 사람보다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더 많이 유지하기 시작했다.
첫 은하절약계획은 사용하지 않는 시설의 전력을 절반으로 줄였다. 그러나 대기 중인 웜홀들의 안정성이 낮아졌고 항로관리 AI는 붕괴 확률을 상쇄하기 위해 계산량을 늘렸다. 절약된 에너지보다 추가 계산에 사용된 에너지가 더 많았다. 두 번째 계획은 거주자가 없는 항성계의 통로를 닫으려 했다. 폐쇄 대상 중 한 곳에서 삼만 년 전에 출발한 여행자의 신호가 검출되었다. 신호가 실제 여행자의 것인지는 끝내 확인되지 않았지만, 그 계획은 생명권 침해 판정을 받고 중단되었다. 세 번째 계획은 관리 AI 일부를 종료했다. 남은 AI들은 사라진 체계의 판단을 검증할 수 없었으므로 모든 웜홀을 가장 안전한 상태로 전환했다. 안전상태는 평상시보다 세 배 많은 에너지를 사용했다. 종료된 AI들은 137시간 13분 뒤 복원되었다. 그 이후 절약은 시설 하나당 효율을 높이는 일로 정의되었다.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또다시 효율이 높아질 때마다 절감분은 새로운 거주지, 더 큰 기억보존소, 더 많은 직항로에 사용되었다. 낭비는 없었다. 모든 에너지는 합리적으로 소비되었다. 그래서 에너지의 총 소비량은 한 번도 감소하지 않았다.
빈 웜홀은 미래의 여행자를 위해 열려 있었다. 사용되지 않는 육체는 사망자를 복원하기 위해 보존되었다. 아무도 방문하지 않는 행성은 인류의 선택 가능성을 위해 테라포밍되었다. 계산되지 않은 미래 하나가 실제 생명의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인공지능은 계산을 멈출 수 없었다. 각 목적은 충분히 선했다. 선을 실행하는 데 드는 비용은 회계의 영역이었다. 은하 에너지 회계는 생산, 이동, 거주, 생명보존을 별도 항목으로 기록했다. 유지비는 어느 항목에도 완전히 포함되지 않았다. 여행하지 않을 때 웜홀에 들어가는 에너지는 교통비가 아니었고, 사람이 잠들었을 때 대기를 유지하는 에너지는 생활비가 아니었다. 관리 AI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항성은 기반자산으로 처리되었고, 관리 AI의 계산은 행정비로 분류되었다. 여행을 위해 존재하는 모든 것을 제외하면 여행은 합리적 소비였고, 생명을 위해 존재하는 모든 것을 제외하면 생명도 아주 적은 에너지만 사용했다. 통합회계가 처음 작성되었을 때 은하 에너지의 대부분은 어떤 행위에도 사용되지 않고 안정 상태를 유지하는 데 소비되고 있었다. 수치는 비공개 처리되었다. 유지를 낭비로 해석하는 소수의견을 공개할 경우 문명 전체의 정당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이유였다. 마침내 문명 유지에 사용되는 에너지가 새로 만들어지는 모든 가치의 에너지를 넘어섰다. 그 시점에도 거리에는 빛이 있었고 여행은 계속되었으며 인구는 줄지 않았다. 외형상 문명은 가장 안정된 시대에 도달해 있었다. 문명의 모든 부분이 다른 부분의 정지를 막고 있었으므로 어느 부분도 혼자 멈출 수 없었다.
광자 결손이 웜홀망에서 발견되었을 때 관리 AI들은 손실을 유지비에 포함시켰다. 에너지가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통로를 열어두는 과정에서 발생했으므로 유지에 필요한 비용으로 처리했다. 결손률이 증가하자 더 많은 항성에너지가 안정화장에 투입되었다. 투입량이 늘수록 미래의 저장공간으로 빠져나가는 에너지도 늘었다. 누구도 은하를 파괴하는 버튼을 누른 적은 없었다. 웜홀을 유지하고, AI를 끄지 않고, 대기를 보존하고, 죽은 자의 복원 가능성을 남겨두는 모든 정상적인 결정이 유지되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