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부와 물질이나 에너지를 교환하지 않는 물리계.
- 후기 은하물리학에서는 무엇을 외부라고 부를 것인가에 대한 합의를 뜻했다.
- 멸망 이후에는 내부에 있는 자가 바깥을 발견할 수 없도록 닫힌 세계를 가리킨다.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은하 문명은 마지막까지 이 문장을 포기하지 않았다. 항성은 빛을 방출하며 질량을 잃었고, 행성은 그 빛을 받아 데워졌다가 더 긴 파장의 복사로 우주에 돌려보냈다. 생명은 그 흐름의 일부를 붙들어 몸을 만들었고, 몸이 죽으면 저장했던 에너지를 열과 물질로 되돌렸다. 형태는 바뀌었으나 에너지의 총량은 변하지 않았다. 어느 장소에서 줄어든 것은 다른 장소에서 늘어났다. 최초의 광자 결손이 발견됐을 때에도 물리학자들은 보존법칙을 의심하지 않았다. 의심받은 것은 계측기와 기준시와 관측자의 정의였다. 법칙이 틀릴 가능성보다 은하에 설치된 모든 장치가 같은 방식으로 틀렸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았다. 그러나 결손은 장치의 종류와 무관하게 나타났다. 항성에서 방출된 빛, 웜홀을 통과한 빛, 블랙홀 주변을 도는 가스의 열, 행성 내부의 방사성 붕괴에서 모두 설명되지 않는 부족분이 발견되었다. 부족분의 크기와 양상은 서로 달랐다. 빛만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던 현상은 측정이 정밀해진 뒤 질량과 운동량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원자 하나는 어제보다 가벼워지지 않았다. 행성 하나도 갑자기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대규모 계측에서 결손은 물체들 사이에 흐르는 에너지를 비교할 때 두드러졌다. 방출된 양보다 흡수된 양이 조금 적었다. 그러나 에너지가 다른 물체로 전달되지 않는 폐쇄공동에서도 광자는 사라졌다. 유출은 웜홀이나 발전망을 지나는 에너지에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우주는 에너지가 흐를 때마다 통행세를 걷는 것처럼 보였다. 사라진 몫은 열이 아니었다. 열이었다면 주변의 온도가 올라야 했지만 그런 현상은 관측되지 않았다. 질량이 있었다면 중력이 남아야 했다. 진공에 저장된 에너지라는 설명도 버려졌다. 결손이 누적되는 동안 우주의 팽창률은 측정 가능한 범위에서 변하지 않았다. 남은 가능성은 관측된 은하가 폐쇄계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문명은 스스로 자기인식을 부정해야만 했다. 문제는 물리학보다 먼저 언어에서 드러났다. 우주라는 단어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뜻했다. 모든 것의 바깥은 정의상 존재할 수 없었다. 에너지가 바깥으로 나갔다고 말하려면 우주가 아닌 장소를 먼저 인정해야 했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작은 폐쇄계를 만들려고 했다. 보온병과 진공실과 항성 간 저장고는 외부와의 교환을 줄였지만 완전히 끊지는 못했다. 중력은 벽을 통과했고, 양자장은 내부와 외부를 함께 채웠으며, 장시간이 지나면 어떤 차폐물도 복사를 방출했다. 완전한 고립은 계산을 위한 이상이었다. 웜홀은 그 이상을 뒤집었다. 벽으로 안과 밖을 나누는 대신 서로 멀리 떨어진 두 장소를 하나의 경계로 묶었다. 입구 사이에 공간은 없었지만 에너지는 건너갔다. 문명은 거리를 제거할 수 있었고, 마지막 과학자는 그 기술을 이용해 이미 빠져나가고 있던 에너지가 모일 곳을 만들었다. 그가 만든 저장공간은 우주 속의 방이 아니었다. 은하 어딘가에 숨겨진 행성도 아니었고, 블랙홀 안쪽의 빈 공간도 아니었다. 그것은 기존 시공간과 하나의 목으로 연결된 새로운 인과영역이었다. 내부에서 일어난 사건은 목을 통하지 않고는 외부에 영향을 줄 수 없었다. 외부의 어떤 빛도 내부를 비추지 못했고, 내부의 어떤 중력도 외부에서 직접 측정되지 않았다. 공간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저장공간 바깥에서 측정한 입구는 원자핵보다 작을 수 있었다. 내부의 부피는 입구의 표면적과 같은 방식으로 결정되지 않았다. 한쪽에서 고양이 목걸이처럼 보이는 구조가 반대쪽에서는 은하계보다 큰 영역을 포함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크기가 아니라 시간이었다. 저장공간의 내부시간은 외부보다 느리게 설계되었다. 외부에서 수십억 년이 흐르는 동안 내부에서는 몇 초만 지나갔다. 들어간 빛은 거의 변하지 않은 채 보존되었고, 물질은 붕괴할 시간을 얻지 못했다. 이 구조가 완성된 시점은 은하 문명의 말기였다. 항성들은 늙었고, 회전하는 블랙홀들은 채굴되었으며, 문명의 유지비는 생산량을 넘어선지 오래였다. 마지막 과학자는 그때까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던 에너지의 흐름을 추적했다. 최초의 결손은 그가 태어나기 오래전에 기록되어 있었다. 그는 과거에 손을 뻗거나 과거로 물질을 보내지 않았다. 은하 역사 전체에 쌓인 웜홀의 시간차를 이용해, 이미 흐르고 있던 에너지가 미래에 모일 수 있도록 저장공간을 완성했다. 그가 만든 것은 유출의 시작이 아니라 유출된 에너지의 도착지였다. 과거의 광자는 언제나 자신의 미래로 이동했다. 빛은 시간을 거슬러 가지 않았다. 시간이 빛의 앞에서 접혔다.
보존법칙은 한 번도 깨지지 않았다. 과거에 사라진 에너지는 미래의 저장공간에 쌓였다. 양쪽을 하나의 물리계로 계산하면 들어간 양과 나온 양은 일치했다. 그러나 과거의 관측자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저장공간을 자신의 계에 포함시킬 수 없었다. 미래의 관측자는 저장공간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한 축적된 에너지를 측정할 수 없었다. 각 시대는 자신이 볼 수 있는 것만 우주라고 불렀다. 그래서 모든 시대에서 에너지는 결손된 것처럼 보였다. 결손 연구자들은 경계면을 찾으려 했다. 에너지가 빠져나갔다면 어딘가에 출구가 있어야 했다. 그들은 은하 외곽, 블랙홀의 사건지평선, 웜홀의 목을 조사했다. 출구는 한 장소에 있지 않았다. 에너지가 방출되고 흡수되는 모든 과정이 경계가 되었다. 저장공간은 은하 밖 어딘가에 있지 않았다. 결손이 관측되던 시대에는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곳이었다. 연구자들은 에너지가 사라지는 순간은 볼 수 있었지만, 그 에너지가 도착할 미래는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미래를 볼 수 없었기에 보존법칙에 대한 믿음은 더 확고해졌으며 이 믿음은 문명을 안심시켰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면 언젠가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블랙홀의 결손이 확인되었을 때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되었다. 블랙홀은 외부에서 측정한 질량과 회전과 전하로 그 상태를 알 수 있었다. 문명은 회전에너지를 끌어내 발전망에 공급했고, 그 에너지가 다른 곳으로 전달되는 과정에서도 작은 결손이 발생했다. 초기에는 채굴량과 출력의 계산오차로 처리되었다. 이후 블랙홀의 회전과 질량이 예상보다 빠르게 줄었지만, 주변 발전시설은 출력 저하를 보충하기 위해 더 깊이 에너지를 뽑았다. 채굴과 손실이 거듭되면서 사건지평선도 줄어들었다. 과거 문명은 그것을 블랙홀의 붕괴로 기록했다. 보존법칙은 어느 편도 들지 않았다. 법칙은 에너지의 총량만 같게 만들었다. 누가 그것을 잃고 누가 얻는지는 기록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