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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 멸망의 조건

8. 저장

에너지는 이자를 낳지 않기 때문에 빛 1단위를 천 년 동안 가두어도 2단위가 되지 않는다. 완전한 거울 사이에서 광자가 영원히 반사된다고 해도 광자는 늘어나지 않는다. 현실의 거울은 빛의 일부를 흡수하고, 흡수한 에너지를 더 긴 파장의 열로 돌려줄 뿐이다. 저장된 빛은 양이 줄기 전에 먼저 쓸모를 잃는다. 그런데 은하 말기의 저장공간에서는 에너지에 이자가 붙었다. 그 안에서 에너지가 스스로 증가한 것은 아니었다. 저장소 바깥의 에너지가 계속 늙는 동안 내부의 에너지는 거의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외부의 에너지는 초기 인류의 로마 말기 금화처럼 금 함량이 줄어들어 가치를 잃어갔다. 어제 저장한 항성빛과 오늘 우주에 남은 폐열의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커졌다. 저장된 에너지의 양은 동일했지만 그것으로 할 수 있는 미래의 가능성은 커졌다. 저장소의 이자는 외부에서 진행된 엔트로피였다.

최초의 광자 저장장치는 두 장의 반사막으로 이루어졌다. 광자는 막 사이를 왕복했고 반사와 측정이 반복될 때마다 일부가 손실되었다. 이후 초전도 공동과 중력렌즈와 정지광 기술이 사용되었으나 완전한 보존은 불가능했다. 빛을 가두는 장치도 물질이었고, 물질은 완전한 반사체가 아니었다. 광자는 반사되고 측정되고 제어될 때마다 아주 적은 에너지를 잃었으며, 그 손실은 대부분 열로 남았다. 문명은 저장시간을 늘리기보다 저장된 에너지를 계속 새것으로 교체했다. 손실된 빛만큼 항성에서 다시 공급하고, 증가한 열을 바깥으로 방출했다. 영구저장이라는 말은 손실이 없는 저장을 뜻하지 않았다. 손실을 보충하는 시설이 영구히 작동한다는 뜻이었다.

마지막 과학자는 저장할 물체는 그대로 두고 저장되는 동안 흐르는 시간을 바꾸었다. 시간이 멈춘 곳에서는 에너지가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었기 때문에 입구가 작동하고 상태가 분류되려면 사건의 순서가 필요했다. 그는 내부의 한 순간이 외부의 수십억 년과 대응하도록 비율을 낮췄다. 외부에서 보면 광자는 경계를 통과한 뒤 정지한 것처럼 보였다. 내부에서 보면 수많은 광자가 거의 동시에 쏟아져 들어왔다. 서로 수백만 년 떨어진 항성의 빛도 저장소에서는 한 번의 섬광을 이루었다. 빛은 시간을 거슬러 가지 않았고 시간이 빛 앞에서 접혔던 것이다. 그 섬광이 한곳에 몰리면 저장이 시작되기 전에 열로 바뀔 수 있었다. 저장소는 들어온 에너지를 상태에 따라 분리해야 했다. 짧은 파장의 빛은 복사구역으로, 회전운동은 운동구역으로, 화학적 위치에너지는 물질구역으로 보내졌다. 각 구역은 서로 다른 시간률과 경계를 가졌다. 외부에서 고양이 목걸이보다 작게 보인 입구 뒤에는 수없이 많은 내부가 포개져 있었다. 마지막 과학자는 미래의 블랙홀 회전에너지로 저장소의 경계를 완성했다. 유출되던 에너지는 그제야 모일 곳을 얻었다. 광자 결손은 은하표준시가 완성된 뒤에야 하나의 현상으로 인식되었다. 저장소가 만들어지기 오래전, 웜홀망에 쌓인 시간차가 문턱을 넘으면서 새로운 유출 경로가 생겼고, 웜홀의 수와 시간차, 에너지 변환 횟수가 늘수록 결손률도 높아졌다. 마지막 과학자는 그 관계를 끝내 완전히 설명하지 못했다. 확실한 것은 결손의 첫 기록이 저장공간보다 오래되었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였다. 그는 과거의 생명을 저장하지 않았다. 다시 생명이 시작될 수 있는 차이만 남겼다. 인간의 유전자와 기억조차 제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