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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 역사편

2. 은하표준시 협정

은하표준시는 은하 전체에 같은 시간이 흐른다는 믿음만으로 성립하기 어려웠다. 제1차 전쟁이 끝난 뒤 변방 거주지들은 전투명령, 통로 폐쇄, 구조요청의 순서를 놓고 다퉜다. 어떤 항성계의 기록에서는 구조요청이 폐쇄보다 먼저였고, 다른 기록에서는 그 반대였다. 폐쇄를 명령한 기관이 요청을 받은 뒤에도 입구를 열지 않았는지 판단하려면 사건들의 선후 관계를 다시 계산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은하 전체에 같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것은 전쟁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었다. 인류가 여러 항성계로 퍼진 뒤에는 행성마다 하루의 길이가 달랐고, 우주선과 인공구조물에는 정오를 정할 자전도 없었다. 빠르게 이동한 시계와 강한 중력 가까이에 있던 시계에는 서로 다른 시간이 흘렀다. 웜홀의 한쪽 입구가 오랫동안 이동하면 두 입구 사이에도 시간차가 쌓였다. 초기에는 각 거주지가 자기 시간을 사용했다. 상품의 유통기한과 계약일에는 출발지와 도착지의 날짜를 함께 적었다. 여행자는 목적지에 도착한 뒤 현지 달력을 확인했다. 번거로웠지만 그래도 거래는 계속됐다.

문제가 된 것은 책임이었다. 두 거주지가 같은 광물을 팔기로 계약했는데, 한쪽 기록에서는 가격 변경이 계약보다 앞섰고 다른 쪽 기록에서는 뒤였다. 첫 분쟁은 광물을 나누는 것으로 끝났다. 비슷한 분쟁이 늘자 매번 나누는 비용이 거래의 이익을 넘어섰다. 협정을 공식적으로 요구한 곳은 보험연합이었다. 사고가 보험가입 전에 발생했는지 판단할 수 없는 항로가 늘었기 때문이다. 한 우주선의 사고는 출발지 기록에서는 가입 이후였고 목적지 기록에서는 가입 이전이었다. 각 보험사는 자신에게 유리한 날짜를 제출했다. 법원은 어느 날짜를 쓸지 결정할 공통 기준을 요구했다. 물리학자들은 은하 전체에 절대적인 현재는 없다고 답했다. 법원은 절대적인 시간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한 것이 아니라 판결에 사용할 계산법을 정해달라고 요구했다.

최초 회의에는 8천 개 항성연합과 3만 개 교통망을 비롯해 보험사, 종교기관, 인격복제조합이 참여했다. 대표단은 여러 장소에서 웜홀을 통해 회의에 접속했다. 회의가 시작되자 어떤 대표단의 달력에서는 개회식이 이미 끝나 있었다. 개회선언은 참석자들에게 전달될 때까지 열세 번 반복됐다. 공식기록에 어느 선언을 첫 번째로 올릴지 결정하는 데에는 6년이 걸렸다. 표준시를 어디에 둘 것인지도 합의하지 못했다. 다수의 항성연합은 인류의 기원을 이유로 지구시간을 제안했다. 중심부연합 정부는 인구가 많은 지역의 시간을 주장했다. 변방 거주지들은 중심부의 강한 중력환경을 반대 근거로 들었다. 각 연합은 객관적인 기준을 주장하면서 자기 지역의 시계를 제출했다. 계약의 기준시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이자와 임금, 공직자의 임기가 달라질 수 있었다. 시간의 선택은 곧 권한의 배분이었다.

회의는 단일한 시계를 채택하지 않았다. 각 지역이 자기 시계의 기록을 보존하고, 그 시계가 놓인 중력과 운동, 웜홀 입구의 상태를 함께 기록하기로 했다. 은하표준시는 원자시계와 펄서의 신호, 천체의 운동을 대조해 그 기록들을 환산하는 좌표체계였다. 그 체계가 모든 사건의 절대적인 앞뒤를 정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서로 영향을 줄 수 있었던 사건의 순서는 검증하고, 영향을 주고받을 수 없었던 먼 사건에는 협정에서 정한 기록상의 순서를 부여했다. 법원은 후자를 판결 규칙으로 적용했다. 어느 지역의 시계도 표준시 자체가 아니라는 점에서 협정은 공평했다. 그 공평함을 유지하는 데에는 비용이 들었다. 은하 곳곳의 신호를 계속 모아야 했고, 신호를 보내는 웜홀의 시간차도 계속 측정해야 했다. 오차에 대비해 기준망은 세 개로 만들어졌다. 두 기준망의 값이 다르면 세 번째가 판정했다. 세 값이 모두 다르면 별도의 계산체계가 허용오차를 판단했다. 협정 체결 뒤 그 계산체계가 첫 번째 기준망의 시계를 사용한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수정안은 비교체계도 세 개로 늘리는 것이었다. 기준망의 유지시설은 처음 예상한 규모보다 아홉 배 커졌다. 협정 이후 사고의 순서를 판정할 수 있는 항로가 늘었고 계약분쟁은 줄었다. 복제된 인격들의 기억기록도 동일한 규칙으로 비교할 수 있게 됐다. 협정은 비용이 컸고 효과도 컸다.

체결일에는 여러 행성에서 같은 표준시각에 축제를 시작했다. 어떤 행성에서는 그 시각이 한밤중이었고, 웜홀이 없는 변방 거주지는 축제신호를 17년 뒤에 받았다. 주민들은 신호를 받은 날 행사를 열었다. 중앙기록은 이미 끝난 축제의 뒤늦은 보고로 분류했다. 대중에게는 은하 전체가 하나의 시계를 사용한다는 설명이 보급됐다. 정확한 설명은 아니었으나 학교와 행정기관에서는 유용했다. 사람들은 각자의 시간을 유지하면서 공통시간이 있다는 말로 계약하고 여행했다. 협정 뒤 전쟁과 거래의 오래된 기록도 새 좌표로 옮겨졌다. 변환에는 수십 년이 걸렸다. 표준시 기준망은 이후 교통과 구조, 분쟁 판정에 계속 사용됐고, 그 범위만큼 유지시설도 커졌다. 후대의 결손 연구자들이 서로 다른 항성계의 기록을 비교할 수 있었던 것도 이 협정 덕분이었다. 협정 당시에는 아직 최초의 광자 결손이 관측되지 않았다. 은하표준시는 그 현상을 예상해 만들어진 체계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