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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 역사편

3. 연결권 선언

연결권은 고립된 장소에 산다는 이유로 구조에서 제외되지 않을 권리로 시작됐다. 제1차 전쟁 뒤에도 통로가 모든 변방 거주지에 설치된 것은 아니었다. 인구가 많고 생산량이 높은 항성계에는 여러 입구가 열렸다. 새 거주지는 입구를 실은 우주선이 도착할 때까지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을 기다려야 했고, 도착한 뒤에도 안정화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은하개척청은 예상 교역량이 통로 유지비보다 큰 곳부터 연결했다. 인구가 늘어나면 설치를 재검토했다. 한정된 장비와 에너지를 배분하기 위한 기준이었다. 제91외곽 거주지에는 4천여 명이 살았다. 개척청은 인구가 1만 명을 넘으면 웜홀을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지하 광물의 생산이 계획대로 늘면 10년 안에 기준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광물층은 예상보다 깊었다. 채굴장비가 고장 나고 주민들이 떠나면서 인구는 2천 명 아래로 줄었다. 거주지는 연결되지 않아 성장하기 어려웠고, 개척청은 성장하지 못한 곳에 통로를 설치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거주지 자치 정부는 설치기준을 낮춰달라고 열세 번 요청했다. 답변은 같았다. 현재 인구와 교역량으로는 경제성이 없으며 인구가 늘면 재검토한다는 내용이었다. 열네 번째 요청은 발송되지 않았다. 산소 생산에 쓰이던 배양조가 변이한 미생물에 오염됐다. 필요한 약품은 다른 항성계에 있었고, 가장 가까운 연결 거점에서 느린 배로 운반하면 62년이 걸렸다. 거주지는 산소를 아끼기 위해 광산과 학교를 닫고 주민들의 활동시간을 줄였다. 마지막으로 확인된 생존자는 오염 발생 41년 뒤 배양조 하나가 작동 중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구조선이 도착했을 때 냉동수면 장치 112개가 남아 있었다. 세 개에만 전력이 공급되고 있었고, 복원된 사람은 한 명이었다. 구조대가 가져온 약품의 무게는 12킬로그램이었다. 중심부에서는 같은 약품이 가정용 정화제보다 싸게 판매되고 있었다.

사건은 처음에 개척 실패로 분류됐다. 제91외곽 거주지는 설치기준인 인구 1만 명에 도달하지 못했고, 개척청은 계약을 위반하지 않았다. 생존자가 중심부에 도착한 뒤 열세 차례의 요청과 답변이 공개됐다. 마지막 답변은 산소 부족으로 인구가 줄던 시기에 인구 증가를 기다리겠다는 내용이었다. 개척청은 자동응답 양식의 문구라고 해명했다. 담당자는 오염을 알고 있었으나 기준 밖의 통로를 승인할 권한이 없었다. 한 곳에 예외를 인정하면 같은 처지의 수천 개 거주지에도 예외를 인정해야 했다. 예외를 처리할 재원과 절차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변방의 거주지들은 항성연합을 결성하고 한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판단 기준을 바꾸자고 중심부연합에 요구했다. 인구와 생산량이 통로 설치의 우선순위를 정할 수는 있어도, 구조 가능성 자체를 없애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중심부연합 정부는 모든 정착지에 웜홀을 보장하면 유지비를 감당할 수 없다고 반대했다. 논쟁은 19년 동안 계속됐다. 그 사이 연결되지 않은 거주지의 사고가 추가로 조사됐다. 알려진 질병을 치료할 약품이 없었던 곳, 식량은 있었지만 재배시설의 부품이 없어 수확하지 못한 곳이 기록됐다. 각 사고의 사망자는 은하 전체의 통계로 보면 미미했다. 연결권을 지지한 사람들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인구를 유일한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논쟁이 길어지면서 항성연합은 연결을 경제적 지원이 아니라 시민의 권리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중심부연합도 모든 거주지에 동일한 규모의 통로를 제공할 수는 없었지만, 최소한 구조가 가능한 연결 하나는 보장하는 절충안에는 동의했다. 이때 확립된 원칙은 이후 통로 하나의 보장에서 두 개, 다시 세 개의 예비통로를 요구하는 제도로 확대됐다. 연결권 선언은 모든 지속적 거주지에 은하망 연결을 보장했다. 인구, 생산량, 거리는 권리의 유무를 결정하지 않았다. 통로 이용자가 줄더라도 남은 시민의 동의 없이 연결을 끊을 수 없도록 했다. 선언 이후 의약품과 기술자가 변방으로 이동했고, 고립 때문에 버려지던 거주지는 줄었다. 제91외곽 거주지에도 웜홀이 설치됐다. 현지에 거주자는 없었으나 폐허 조사와 희생자 추모를 위해 통로가 열렸다.

새 권리가 적용되자 예상하지 못한 신청도 늘었다. 한 사람이 먼저 행성에 거주등록을 하고 연결을 요구한 뒤, 통로가 생기면 정착권을 다른 회사에 넘기는 방식이었다. 일부 거주자는 통로 개통 전에 떠났다. 개척청은 신청을 취소하려 했고, 신청자는 돌아갈 예정이라고 통보했다. 떠난 사람의 귀환 가능성을 어디까지 보호할지는 선언에 적혀 있지 않았다. 이 문제는 뒤에 별도의 판결을 필요로 했다. 연결권을 시행하는 기관은 있었지만, 연결 의무가 언제 끝나는지 결정할 규칙은 마련되지 않았다. 선언 백주년 보고서는 고립으로 인한 사망이 99.8퍼센트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통로 유지비의 증가는 다른 항목에 기록됐다. 두 수치는 같은 결정의 결과였으나 같은 표에서 비교되지 않았다. 연결권은 변방의 생존을 보장하는 데 성공했다. 그 성공으로 새 정착지가 늘었고 문명이 유지해야 할 입구도 늘었다. 훗날 에너지 부족으로 통로 폐쇄가 논의될 때마다 제91외곽 거주지의 기록은 어김없이 제출되었다. 폐쇄를 제안한 쪽은 이번에는 구조선이 제때 도착하리라는 근거를 제시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