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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 역사편

5. 제3차 전쟁

은하표준시와 항로망이 정교해지면서 재난의 확률도 이전보다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게 됐다. 대기조절시설의 고장, 항성폭발, 전염병, 생태계 붕괴는 미리 확률로 표시됐다. 어느 식민지는 향후 30년 안에 대기순환계가 정지할 가능성이 4퍼센트였고, 다른 항성계에서는 80년 안에 항성활동이 거주한계를 넘을 가능성이 0.6퍼센트로 계산됐다. 대부분의 위험은 실제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다. 행정기관은 위험의 크기와 대피에 필요한 비용을 비교해 일정 수준을 넘는 경우에만 주민을 이동시켰다. 예측기술이 발전할수록 기준 아래에 놓이는 사람도 늘었다. 사고 가능성이 1퍼센트라면 백 번 가운데 아흔아홉 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은하 전체에 같은 판단을 반복하면 언젠가는 남은 한 번이 발생했다. 대피명령을 받지 못한 식민지에서 실제 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과거의 위험예측 기록이 공개됐다. 사고를 막을 수 없었다는 설명은 점점 어려워졌다. 위험은 이미 계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생태계연맹, 의료조합, 구조단체, 종교기관, 재난피해자 조직이 느슨한 연합을 만들었다. 처음 사용된 이름은 생명보호연합이었다. 그들의 요구는 단순했다. 예측할 수 있는 죽음을 행정비용 때문에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연합은 위험도가 기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대피를 원하는 주민에게 통로와 거주지를 제공하라고 요구했다. 처음에는 민간모금으로 비용을 부담했다. 대피한 식민지 가운데 실제로 아무 사고도 일어나지 않은 곳이 많았다. 비판자들은 그것을 불필요한 이동이라고 불렀다. 연합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 실패의 증거는 아니라고 답했다.

첫 무력 충돌은 제63외곽권에서 발생했다. 해당 지역의 항성활동은 17년 안에 위험수준을 넘을 가능성이 2.1퍼센트로 계산됐다. 은하재난청은 강제대피 기준인 5퍼센트에 미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주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생명보호연합은 자체 수송망을 이용해 주민을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대피를 원하는 사람은 전체 주민의 절반을 넘었지만, 목적지의 거주공간과 생명유지시설은 그 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연합은 인근 식민지의 비상시설 사용을 요구했다. 재난청은 다른 지역의 안전능력을 감소시킬 수 있다며 거부했다. 연합은 비어 있는 비상거주지와 예비통로 일부를 점거했다. 재난청은 시설을 반환하라고 명령했다. 연합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을 생명을 구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어떻게 불법이 될 수 있느냐고 반박했다. 충돌은 여러 항성계로 번졌다. 위험도가 낮다는 이유로 대피가 거부된 식민지들이 연합에 합류했고, 자원의 강제배분에 반대하는 항성계들은 재난청을 지지했다. 전쟁 중에도 양측은 자신들이 더 많은 생명을 보호한다고 주장했다.

제63외곽권의 항성에서는 예상했던 재난이 일어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도 거주가 가능했다. 정부는 대피가 필요하지 않았다는 증거로 이를 제시했다. 같은 시기에 연합이 강제로 주민을 이동시킨 열두 개 지역 가운데 세 곳에서는 실제 재난이 발생했다. 한 곳의 대기조절망이 붕괴했고, 다른 곳에서는 항성 흑점의 폭발로 행성 표면의 절반이 거주불능 상태가 됐다. 세 지역에서 대피한 주민 대부분은 살아남았다. 전쟁은 정부군이 주요 통로를 회수하면서 끝났다. 생명보호연합은 시설점거권을 인정받지 못했고 자체 군사조직을 해산했다. 대신 종전협정은 재난예측 자료의 공개와 자발적 대피권을 보장했다. 위험도가 공식 기준보다 낮더라도 주민이 이주를 요구할 수 있었고, 행정기관은 거부 사유를 기록으로 남겨야 했다. 위험을 계산한 기관은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에도 그 판단을 설명해야 했다.

전쟁이 끝난 뒤 생명보호연합의 지지자는 줄지 않았다. 실제 재난이 발생한 세 지역의 생존자들이 연합을 옹호했다. 이후 선제적 대피에 반대하는 사람은 먼저 그 세 지역의 주민들에게 왜 그들이 남아 있어야 했는지를 설명해야 했다. 위험을 무시한 결과는 죽음으로 남았고, 과잉대피의 결과는 대부분 비용으로 남았다. 두 결과는 같은 방식으로 기억되지 않았다.생명보호연합은 이후 여러 차례 이름과 조직을 바꾸었다. 보호해야 할 대상도 현재 살아 있는 주민에서 냉동수면자, 인격복제본, 복원 가능한 기억체로 넓어졌다. 수만 년 뒤 이 계보는 선제적 생명보호 의무연합으로 이어졌다.제3차 전쟁 이후 은하의 재난정책에는 새로운 질문이 추가됐다.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얼마나 높은지가 아니라, 알고 있던 위험을 외면했을 때 누가 책임질 것인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