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로가 하나뿐인 거주지는 고립될 위험을 항상 안고 있었다. 통로가 두 개인 거주지의 가치는 두 배가 아니라 10배 이상이었다. 가치를 매긴 것은 수많은 개인들의 집단적인 합의였다. 그러나 제44중간권 사고는 이 합의에 균열을 만들었다. 제44중간권에는 800억 명이 살았다. 세 개 행성이 하나의 생활권을 이루었고 대기와 물, 식량의 일부를 외부에서 공급받았다. 주통로는 중심부 교역망에, 예비통로는 인접 항성계에 연결돼 있었다. 두 통로는 서로 다른 제조사가 만들었다. 입구는 행성의 반대편에 설치됐고 전력망과 관리 AI도 분리됐다. 독립성 검사에서 탈락한 적은 한 번도 없는 체계였다. 그런데 두 통로가 같은 날 닫혔다.
은하표준시 기준망이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잘못된 값을 보냈다. 두 관리 AI는 다른 프로그램을 사용했지만 같은 표준시 신호를 받았다. 두 입구에서 인과관계의 충돌 가능성이 표시됐고, 각 체계는 규정대로 통로를 폐쇄했다. 주통로는 11초 뒤 오류를 확인했다. 예비통로는 14초 뒤 확인했다. 어느 쪽도 혼자 다시 열리지는 않았다. 다른 통로의 안전 확인을 받은 뒤 재개방하도록 설계돼 있었기 때문이다. 주통로는 예비통로를 기다렸고 예비통로는 주통로를 기다렸다. 현지 기술자들은 안전장치를 해제하려 했다. 규정은 외부검증 없이 시간역행 방지장치를 풀지 못하게 했다. 현지 정부가 비상권한을 발동했으나 명령을 승인할 중앙기관은 통로 반대쪽에 있었다. 식민지에는 자급용 발전시설과 식량이 남아 있었다. 처음 사흘 동안 시민들은 사고를 일시적인 통행 중단으로 받아들였다. 네 번째 날 대기조절망의 촉매가 부족해졌다. 세 행성의 대기는 자연적으로 호흡할 수 없었다. 대기조절시설은 촉매를 정기적으로 공급받는 조건으로 운영됐다. 예비재고는 세 달분으로 기록돼 있었으나 실제 재고는 17일분이었다. 제조사가 촉매의 수명이 늘었다고 발표한 뒤 비축량을 줄였기 때문이다.
수명 연장값은 통로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의 온도와 압력을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었다. 18일째부터 대기 질이 나빠졌다. 식민지 정부는 공장을 멈추고 시민들을 저온수면으로 옮겼다. 장치는 모두를 수용할 수 없었다. 어린이와 환자, 생명유지시설의 기술자가 우선순위에 올랐다. 인접 항성계에는 구조물자가 준비돼 있었다. 예비통로의 반대편 입구도 그대로 있었다. 강제로 통로를 열면 쌓인 시간차 때문에 인과관계의 모순이 생길 수 있다는 경고가 해제되지 않아 물자를 보낼 수 없었다. 사고 후 27일째 중앙기관은 비상명령을 승인했다. 통로 없이 전달된 승인신호가 제44중간권에 도착하는 데에는 36년이 걸렸다. 통로는 36년 뒤 다시 열렸다. 인구 800억 명 가운데 복원 가능한 상태로 남은 사람은 9천여 명이었다. 깨어난 사람들은 자신들이 몇 주 동안 고립됐다고 생각했다. 외부에서는 한 세대가 지나 있었다. 사고조사위원회는 두 통로가 설계대로 작동했다고 결론 내렸다. 잘못된 시간신호를 받았을 때 닫힌 것도, 외부검증 없이 다시 열리지 않은 것도 규정에 맞았다. 위원회는 사고 원인을 두 통로의 ‘독립성 부족’으로 분류했다. 제조사와 전력망이 달라도 표준시 신호와 승인체계는 같았다. 해결책으로 제안된 것은 세 번째 통로였다.
새 통로는 앞선 두 통로와 다른 항성계에 연결하고, 다른 에너지원과 시간기준, 관리 AI를 사용해야 했다. 두 통로가 함께 닫히더라도 세 번째 통로를 통해 외부의 검증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공식명칭은 ‘거주권역 연결연속성 보장법’이었다. 시민들은 제3통로 의무법이라고 불렀다. 반대자들은 비용을 제시했다. 이미 두 개 이상의 통로를 운영하던 식민지만 수백만 곳이었다. 모두에게 새 입구를 운반하고 유지하려면 수천 개 항성의 출력을 추가로 사용해야 했다. 찬성자들은 제44중간권의 사망자 명단을 한 명씩 읽어나갔다. 한 사람당 사망자 백 명의 이름을 읽었고, 다음 사람이 다시 백 명의 명단을 읽었다. 그 모습은 생명보호연합의 자체 통신망을 통해 은하 전역으로 송출되었다. 통로 하나의 천문학적인 설치비용은 계속 문제가 되었으나 법은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됐다. 세 번째 통로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비용은 다음 세대에게 전가되었지만 문명의 지속적인 발전과 성장은 어렵지 않게 해결할 것이라는 믿음이 더 컸다.
처음에는 일정 인구 이상의 거주권역에 세 번째 통로가 의무화됐다. 새 입구를 목적지까지 운반하는 데 수십 년이 걸렸으므로 느린 배 산업이 다시 성장했다. 웜홀 제조업체와 발전기업, 시간관리업체도 확장됐다. 제3통로 건설은 변방 거주지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다. 인구기준에 못 미치는 식민지들은 연결권 선언을 근거로 법의 확대를 요구했다. 인구가 적다는 이유로 낮은 수준의 안전을 감수하게 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었다. 법원은 거주민의 수에 따라 생명의 가치를 달리 매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제3통로 의무는 모든 거주식민지로 확대됐다. 이번에는 생명보호연합이 명단을 낭독한 필요가 없었다. 외곽의 한 연구기지에는 연구자 103명이 살았다. 주통로의 하루 평균 이용자는 열두 명이었고 예비통로는 1년 동안 네 번 사용됐다. 세 번째 통로가 완성된 뒤 첫 이용자는 개통식에 참석한 정치가였다. 그가 돌아간 뒤 18년 동안 세 번째 통로를 이용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동안 입구와 안정화시설은 계속 작동했다. 정부는 이용률이 낮은 통로의 가동 수준을 낮추자고 제안했다. 생명보호연합과 궤를 같이 하는 수많은 단체들은 드물게 쓰는 통로일수록 위기 때 반드시 열려야 한다고 반대했다. 수많은 단체들의 끊임없는 요구와 노력으로 세 번째 통로의 검사가 늘었고, 검사인력이 드나들면서 이용률도 높아졌다. 검사인력에는 반드시 생명보호연합이 지정한 3인 이상 포함되어야 했다. 생명보호연합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기부로 운영되는 비영리단체였기에 중심부연합 정부는 더 이상 이들의 주장을 무시할 수 없었다. 관리기관은 이용률 수치를 통로의 필요성을 입증하는 자료로 제출했다.
생명보호연합의 주요 후원자 가운데에는 은하 문명 초기 느린 배 산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열두 가문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웜홀망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여러 항성권에 거대한 사유지를 소유하고 있었고, 공공통로에서 다른 시민들과 항로와 시간표를 공유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겼다. 제3통로 의무법이 서로 독립된 통로를 안전의 조건으로 인정하자 열두 가문은 자신들의 사유지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공통로 이용을 강제하는 것은 재산의 독립성과 안전을 침해한다는 논리였다. 처음에는 각 가문에 비상용 사유통로 하나만 허가됐다. 그러나 여러 항성권에 사유지를 가진 가문들은 어느 지역에서 사고가 발생할지 알 수 없다며 각 항성권마다 독립된 통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가장 많은 영지를 가진 한 가문은 자신이 소유한 모든 항성권에 별도의 통로를 설치했다. 그 가문이 보유한 사유통로의 수는 일부 항성연합 전체가 운영하는 공공통로보다 많았다. 은하무역이 확대되면서 무역연합의 상인들과 새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같은 권리를 요구했다. 이들은 공공통로의 대기시간과 검사가 거래를 지연시키고, 한 사람의 이동이 늦어질 경우 여러 항성계의 공급계약이 동시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개인통로는 사치품이 아니라 물류안전시설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후 광산권 거래로 갑자기 거액을 번 사람, 희귀 행성의 토지권을 상속받은 사람, 복권과 확률투자로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 사람도 사유통로를 신청했다. 오래된 가문의 재산과 우연히 얻은 재산을 법이 구별할 근거는 없었다. 설치비와 유지비를 부담할 능력이 있다는 사실만 확인되면 개인통로를 허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판결이 이어졌다.
개인통로의 수가 늘어나면서 생명보호연합과 부유층의 이해관계도 자연스럽게 겹쳤다. 열두 가문과 무역연합의 상인들은 연합의 재난구호기금과 연구사업에 많은 돈을 기부했다. 연합은 모든 통로가 서로 독립되어야 하며, 사용빈도가 낮다는 이유만으로 안전시설의 가동을 줄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후원자들은 자신의 사유통로를 비상시에 공공구조망에 제공할 수 있다고 약속했다. 실제 구조에 사용된 횟수는 많지 않았지만, 사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사유통로는 은하 전체의 예비안전망에 포함됐다. 생명보호연합은 후원자의 명단을 숨기지 않았다. 부유한 사람이 낸 돈이라고 해서 그 돈으로 구한 생명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연합의 입장이었다. 반대자들은 통로를 더 많이 소유한 사람들이 더 많은 통로를 요구하는 단체에 가장 많은 돈을 기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은 이해관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전에 관한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라고 답했다.
그러나 공용 통로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비용은 예상보다 컸다. 작은 거주지는 에너지원과 시간기준을 각각 세 벌씩 마련하기 어려워 이웃 식민지들과 시설을 공유했다. 공유시설에 연결된 세 통로는 다시 같은 기반시설에 의존하게 됐다. 유지비용은 중심부연합 정부의 예산으로 지출되었기에 통로에 기생하는 수많은 개인들은 그것을 눈먼 돈이라고 불렀다. 제3통로 의무는 다른 시설에도 적용됐다. 대기조절장치와 발전기, 기억보존소와 관리 AI에 독립된 예비체계를 요구하는 규정이 생겼다. 여러 장치가 같은 원인으로 고장 날 가능성이 확인되면 그 원인을 감시하는 체계가 추가됐다. 법 시행 뒤 단일 통로의 고장으로 거주권역 전체가 사망하는 사고는 완전히 사라졌다. 법은 생명을 구한다는 본래 목적에 완벽하게 도달했다. 인류는 진정한 의미에서 은하 문명을 완성했다고 자축했다. 그 성공으로 법을 축소하기도 어려워졌다. 한편 통로망의 유지비와 사용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사용량이 적은 입구부터 줄이자는 제안이 나왔다. 반대 측은 법 시행 뒤 줄어든 사망자 수를 제시했다. 줄어든 사망자 명단은 백지였다. 축소를 주장하는 쪽은 통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의 총량을 제시했다. 그러나 800억 명의 기록 앞에서 세 번째 통로가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려면, 같은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을 이유를 증명해야 했다. 이것은 불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