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은 궐석재판이었다. 원고는 살아 있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죽었다고 판정할 수도 없었다. 사정은 이랬다. 제19외곽권의 폐광에서 기억저장체 하나가 발견됐다. 표면에는 미카엘이라는 광산기술자의 이름과 저장일이 남아 있었다. 그는 폐광이 닫히기 40년 전 사고로 사망했다. 당시 의료진은 그의 뇌 일부를 기록했으나 복원에는 실패했다. 의료차트에는 기술이 발전할 때까지 기록을 보존하라는 지시가 남았다. 광물이 고갈된 뒤 주민들은 떠났다. 마지막 행정관이 이주하면서 거주인구는 0명으로 기록됐다. 연결권 선언과 제3통로 의무법에 따라 설치된 세 통로, 발전시설, 대기시설은 계속 작동해야 했다. 에너지관리청은 폐쇄계획을 세웠다. 세 통로에 들어가는 전력을 인근의 거주지 두 곳에 공급하는 게 더 좋다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폐쇄조사 중 발견된 미카엘의 기억저장체는 식민지 발전망에 연결돼 있었다. 발전기를 끄면 저장된 상태가 무너질 가능성이 있었다. 다른 곳으로 옮기려면 전원을 분리해야 했고, 그 과정도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었다. 저장체 안의 기록이 온전한지 확인하기 위한 정밀검사는 기록 자체를 손상할 수 있었다. 결국 관리청은 복원 가능성을 평가했다. 계산법에 따라 수치는 0.00006퍼센트에서 18퍼센트까지 달랐다. 어느 값이 맞는지 확정할 검사방법은 없었다. 관리청은 저장체를 역사자료로 분류해 가능한 정보를 복제한 뒤 시설을 닫기로 했다.
생명보호연합이 소송을 냈다. 소장에는 미카엘의 이름이 원고로 적혀 있었다. 관리청은 원고가 존재한다는 사실부터 증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생명보호연합은 그가 직접 의사를 표현할 수 없으므로 대리한다고 답했다. 법원은 소송을 받아들였다. 미카엘이 살아 있을 가능성에 대해 심리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재판은 112년 동안 이어졌다. 저장체를 손상하지 않고 읽는 기술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기 때문이다. 검사기술이 개선될 때마다 성공 가능성과 손상 가능성을 다시 계산했다. 위험이 낮아져도, 그 위험을 감수할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해결되지 않았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세 통로와 발전기는 가동됐다. 시설을 먼저 닫으면 판결의 대상인 저장체가 손상될 수 있어 임시보전명령이 내려졌다. 소송비용보다 시설 유지비가 커졌고, 이후에는 폐광이 운영되던 시기의 광산수익 전체를 넘었다. 관리청은 저장체만 다른 곳으로 옮기자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생명보호연합은 이동 과정 중 손상 위험과 복원 뒤 동일성 문제를 제기했다. 복원된 존재가 사고 당시의 기술자인지, 이동 뒤 만들어진 복제본인지를 따지는 재판이 분리됐다. 원래 재판과 새 재판의 원고가 같은 사람인지를 가리는 절차도 뒤따랐다.
최종 쟁점은 복원 가능성에 어느 정도의 확률을 요구할 것인가였다. 관리청은 최저기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가능성이 극히 낮은 저장체까지 영구히 보호하면, 다른 시민에게 공급할 에너지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요지였다. 생명보호연합은 확률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그 가능성을 가진 사람의 권리를 없앨 수 없다고 반박했다. 하급심은 관리청의 손을 들어줬다. 복원 가능성이 낮고 시설 유지에 드는 비용이 크다고 판단했다. 판결 뒤 장기여행자와 기억보존 계약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도 같은 기준으로 제한될 수 있는지 문의하기 시작했다. 기억보존기업의 계약이 취소됐고 일부 항로에서는 귀환자가 몰려 사고가 발생했다. 상급심은 판결을 뒤집었다. 판결문은 ‘귀환 가능자’라는 법적 지위를 만들었다. 귀환 가능자는 지금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더라도 미래에 시민으로 돌아올 합리적인 가능성이 있는 존재였다. 기억저장체와 저온수면 상태의 사람, 웜홀 전송 중 행방을 잃은 여행자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느린 우주선의 승객이 그 범주에 포함됐다. 상급심은 복원 가능성의 최저 확률을 숫자로 정하지 않았다. 현재의 기술로 불가능한 복원이 후대에는 가능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판결의 원칙은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앞으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제19외곽권의 세 통로는 폐쇄되지 않았다. 판결은 실제로 권리를 보호했다. 연락이 끊긴 여행자의 재산이 보존됐고, 저온수면자의 시민권이 인정됐다. 기억보존기업이 파산해도 보관장치를 임의로 정지할 수 없게 됐다. 수십 년 뒤에는 소멸한 줄 알았던 여행선이 웜홀 입구의 시간차 때문에 300년 늦게 도착했다. 판결이 없었다면 승객들의 시민권과 재산을 되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 뒤 시설 폐쇄심사에서는 귀환 가능자가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 의무가 됐다. 빈 도시의 기억보존소와 퇴역 우주선의 항해기록, 오래된 저온수면 장치가 조사대상이 됐다. 저장된 자료가 시민의 기억인지 단순한 기록인지 확정할 수 없는 경우에는 심사가 계속됐다. 폐쇄하려는 기관은 보호해야 할 사람이 없음을 입증해야 했다. 지하와 해저, 궤도에 남은 저장시설을 조사하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여행자를 검색했다. 새로운 기록이 발견되면 심사가 다시 시작됐다. 어떤 곳에서는 폐쇄심사에 드는 에너지가 통로 유지비를 넘었다. 관리청은 시설을 계속 가동하는 편을 선택했다.
제19외곽권의 광산기술자는 끝내 복원되지 않았다. 판결 뒤 8천 년 동안 저장체의 상태를 검사했으나 평가결과는 기술의 발전에 따라 달라졌다. 한때 복원 가능성은 높아졌고, 뒤에는 사고 당시 기록되지 않은 부분이 발견됐다. 어느 검사도 그 가능성을 0으로 확정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