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 문명과 싸우기 위해 준비한 무력은 끝내 인간을 향했다. 외계 문명은 부존재로서 제4차 전쟁에 참여했다. 전쟁의 양측은 인간이었다. 외계 개입 선언 뒤 항성연합들은 같은 관측 자료를 공유했다. 중심부연합 정부는 어느 진영의 해석도 공식적인 공동방어 정책으로 채택하지 않았다. 해석은 갈렸다. 주전파 항성연합은 외부의 지성적 개입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감시망과 예비발전시설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감축파 항성연합은 원인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에너지의 흐름을 늘리면 결손도 늘어난다고 반대했다. 주전연합은 통로 입구에 탐지기와 차단장치를 설치했다. 감축연합은 그 장치의 생산과 운영에 드는 에너지를 공개하도록 요구했다. 어느 쪽도 결손의 원인을 설명하지 못했다. 양측은 상대의 정책이 은하의 생존 가능성을 낮춘다며 서로를 비난했다. 전쟁 초기 두 연합은 상대의 시설을 공격하는데 신중했다. 대신 양측은 관측자료의 접근권을 제한하고 발전장비의 공급계약을 중단했다. 주전연합은 은하 외곽의 예비전원을 비축했고 감축연합은 자신들이 관리하는 통로에서 군사용 화물의 우선순위를 낮췄다. 그 영향은 양쪽에 속하지 않은 항성연합에도 미쳤다. 두 진영은 행성의 위치가 아니라 연결된 항로에 따라 갈렸다. 같은 항성계에 서로 다른 진영의 입구가 있었고 어느 쪽에 전력을 공급하느냐에 따라 생활권이 바뀌었다. 통로를 완전히 닫으면 연결권을 침해하므로 양측은 개방 시간과 안전 심사, 운송 순서를 자기 진영에 유리하게 조정했다.
무력충돌은 일부 관리시설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했지만 전사자 수는 많지 않았다. 양측은 확전을 바라지 않았다. 후대의 역사위원회가 이 시기를 냉전이라는 부제를 단 제4차 전쟁으로 분류한 주된 이유는 양측이 전시동원권을 행사하고 항성의 출력을 상대 진영에 공급하지 않도록 통제했기 때문이다. 어느 쪽도 전쟁을 공식적으로 선포하지 않았으므로 공식적인 종전협정도 존재하지 않았다. 냉전 동안 양측은 결손 연구를 따로 진행했다. 같은 자료를 검증하는 장비가 두 벌씩 설치됐고, 양측은 상대의 분석을 믿지 않아 추가 검사를 요구했다. 이 비용은 불신의 대가였지만 일부 결함을 발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됐다. 중복 연구를 낭비라고만 분류할 수 없는 이유였다. 시간이 흐르자 두 연합은 모두 유지비 문제를 인정했다. 주전파 항성연합의 감시망은 공격을 발견하지 못한 채 커졌고, 감축파 항성연합은 시설을 줄이자는 주장과 기존 시민의 권리를 함께 유지할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두 진영은 우선 이용자가 없는 통로부터 공동으로 조사하기로 했다. 공동조사는 첫 번째 통로 폐쇄계획에 필요한 합의를 낳았다. 그 합의문은 종전협정을 비공식적으로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