웜홀의 통로 폐쇄는 냉전 이전에도 간헐적으로 이루어졌다. 대개 안정성 문제로 폐쇄되거나 경제성이 낮아 유지가 중단되는 경우였다. 그러나 제3통로 의무법과 귀환 가능자 판결 이후에는 안전을 이유로 한 예비통로의 수가 오히려 늘어났고, 경제성을 이유로 한 폐쇄는 사실상 사라졌다. 붕괴하거나 사고가 난 통로의 입구는 수리했고, 수리할 수 없으면 새 입구를 설치했다. 통로의 유지와 수리, 교체는 다시 새로운 수요를 만드는 거대한 산업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통로를 더 이상 유지하지 않기 위한 폐쇄계획에 모두가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에너지절약위원회가 등록된 통로의 이용률을 합산하자 절반 이상에서 1년 동안 통행기록이 없었다. 수천 년 동안 사람이 지나지 않은 입구도 있었다. 입구의 목을 안정시키고 시간차를 계산하며 비상신호를 기다리는 장치는 계속 전력을 사용했다. 위원회는 이용자가 없는 통로에 쓰이는 에너지를 다른 용도로 돌리면 수천억 명의 생활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 버려진 관광행성, 폐광만 남은 행성, 인간이 떠난 수많은 행성들과 한 번도 이용되지 않은 제3통로가 폐쇄 후보에 올랐다. 중심부연합 정부는 생명보호연합의 자문단이 제시한 네 가지 조건을 수용하여 공식적인 폐쇄 기준을 발표했다. 1천 년 동안 통행기록이 없고, 현지 거주자가 없으며, 귀환 가능자가 발견되지 않고, 다른 통로로 대체할 수 있을 때에만 폐쇄를 심사할 수 있었다.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통로는 유지됐다.
처음 조사한 통로는 96만 개였다. 심사를 통과한 것은 518개였다. 오래된 승객명단과 복원되지 않은 기억체, 돌아오겠다는 기록이 귀환 가능자 심사의 근거가 됐다. 거주자가 없다는 사실도 확인하기 어려웠다. 행성의 지하와 행성 궤도에 독립적으로 거주하는 존재도 조사 대상이었다. 통로를 안전하게 닫는 비용도 컸다. 목에 남은 에너지를 처리하고 두 입구의 시간차를 고려해야 했다. 잘못 닫으면 인접 통로의 안정화장에 충격을 줄 수 있었다. 일부 입구에서는 폐쇄 작업에 수백 년치 유지비가 필요했다. 위원회는 장기간 절약되는 에너지가 그 비용보다 많다고 계산했다. 518개 가운데 위험도가 낮은 100개가 우선 시범대상으로 선정됐다. 첫 대상은 오래전에 운영을 멈춘 기상관측소의 위성이었다. 3천 년 동안 통행기록이 없고 생명반응도 검출되지 않았다. 옛 직원들의 후손은 조상들의 장소를 방문할 권리를 주장했다. 정부는 관측소의 기록을 복제하고 내부를 원격 조사한 뒤 청원을 기각했다. 장소를 보존하는 일과 그 장소로 가는 웜홀을 영구히 유지하는 일은 다르다고 판단했다. 통로는 예정대로 사고 없이 닫혔다. 뒤이어 열한 개의 통로가 안전하게 폐쇄됐고, 절약된 에너지는 다른 거주지에 공급됐다. 계획에 반대하던 지역에서도 지지자가 늘어났다.
열세 번째 통로를 닫는 도중 출구 쪽 입구의 감시체계에서 오래된 호출부호가 발견됐다. 신호는 871년 전에 출항한 느린 배에서 보내고 있었다. 그 배는 입구가 있는 항성계로 자동항해 중이었고 도착까지 17년이 남아 있었다. 배에는 저온수면 상태의 승객 칠백 명이 타고 있었다. 폐쇄를 중단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그러나 이미 좁아진 목을 다시 확장하면 붕괴할 위험이 있었다. 기술자들은 입구를 유지하는 방법과 새 통로의 입구를 운반하는 방법에 대해서 검토했다. 새 입구가 도착하기까지는 43년이 필요했다. 우주선은 17년 뒤 닫힌 입구가 있던 곳에 도착했다. 배의 에너지는 그때부터 11년을 더 버틸 수 있었다. 구조선이 도착한 것은 우주선보다 26년 뒤였다. 승객들은 구조선이 오기 15년 전에 사망했다. 조사 결과 출항기록은 폐쇄심사 당시 자료에 포함돼 있었다. 목적지의 항성명이 871년 동안 네 차례 바뀌어, 검색체계가 같은 장소로 분류하지 못했다. 알려진 여행자가 없어야 한다는 폐쇄조건은 충족되지 않았던 것이다. 담당 기관과 세 검증위원회는 모두 당시 규정에 따른 검색을 마쳤다.
나머지 시범통로의 폐쇄는 중단됐다. 계획을 승인한 행정가도 조사를 받았다. 그는 기준을 생략하거나 자료를 숨기지 않았다. 기록의 이름이 달랐고, 이름을 좌표에 연결하는 절차에 그 변경이 반영되지 않았다. 사건 뒤 의회는 심사를 강화했다. 1천 년이던 무통행 기준은 1만 년으로 늘었다. 과거의 항성명과 좌표를 모두 대조하고, 미확인 여행자가 있을 가능성도 여러 독립체계가 평가하도록 했다. 새 기준을 통과한 통로는 발견되지 않았다. 에너지절약위원회는 폐쇄 대신 작은 목을 평소에 유지하고 접근신호가 있으면 확장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유지비는 일시적으로 줄었으나 비상확장 장치와 신호예측 체계가 필요했다. 기술이 안정되자 예전에는 경제성이 없어 연결하지 못한 장소에도 작은 통로를 설치할 수 있게 됐다. 시범계획에서 닫은 통로보다 새로 열린 통로가 많아졌다.
폐쇄에 반대한 연합들은 실종선 승객들의 기록을 중심부연합 정부와 관련 기관에 제출했다. 그렇다고 통로 유지에 찬성한 사람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절약된 전력을 받아 살아남은 거주지의 기록도 있었다. 같은 계획이 생명을 구하기도 했고 생명을 잃게 하기도 했다. 어느 쪽의 자료도 삭제되지 않았다. 통로 폐쇄 계획 이후 정치가들은 ‘폐쇄’ 대신 ‘장기대기’나 ‘운용중단’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명칭을 바꿔도 목을 완전히 없애는 결정은 승인되지 않았다. 영구적인 폐쇄와 사고 때 안전장치가 일시적으로 통로를 닫는 일은 규정상 다른 행위로 남았다. 그 차이는 뒤에 무지연 참사가 발생했을 때 중요해졌다. 위험 경보에 따라 통로를 잠시 닫는 체계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지만, 정상적인 통로를 영구히 없애는 데에는 많은 검증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