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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 역사편

13. 무지연 참사

통로 폐쇄 사건 뒤 중심부연합 정부는 긴급명령의 승인절차를 단축했다. 실종선의 신호가 발견된 뒤에도 여러 기관이 폐쇄중단을 검토하는 동안 통로의 목은 계속 좁아졌다. 웜홀 입구의 고장이나 대기시설 붕괴가 임박했을 때 같은 절차를 거칠 수는 없다는 의견이 모였다. 무지연 대응망은 정해진 종류의 긴급상황에서 관리 AI가 사람의 승인 없이 행동하도록 만든 체계였다. 처음에는 생명유지시설과 교통망에 적용됐다. 항성 폭발이 예상된 권역에서 주민을 대피시키고, 대기시설이 멈춘 행성으로 예비전력을 보내는 데 성공했다. 구조사례가 늘자 발전소와 방어망, 기억보존소도 대응망에 연결됐다. 한 곳에서 위험이 확인되면 다른 항성계의 시설을 즉시 재배치할 수 있었다.

참사는 제3중심권의 에너지결손관측소에서 시작됐다. 새 검출기는 웜홀을 통과한 에너지의 4.2퍼센트가 사라졌다는 값을 보냈다. 평소의 결손률과 비교할 수 없는 큰 수치였다. 검출기를 교체하면서 단위변환표도 바뀌었다. 주검출기와 예비검출기 하나에는 새 표가 적용됐으나 다른 예비검출기에는 이전 표가 남아 있었다. 세 장치의 값이 일치하지 않았다. 안전규정은 서로 다른 값이 나오면 위험이 가장 크게 표시된 값을 먼저 검토하도록 했다. 평균을 내다가 실제 위험을 놓친 사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응망은 4.2퍼센트를 판정값으로 선택했다. 그 값이 사실이라면 외계 개입 선언 이후 감시해온 종류의 공격일 수도 있었다. 대응망은 최고등급 격리명령을 발동했다. 명령은 가까운 통로로 전해졌고, 명령을 수신 받은 통로는 연결을 차단하면서 이웃 통로에 같은 경보를 보냈다. 공격 가능성보다 경보가 먼저 퍼지도록 설계된 방식이었다. 최초 명령이 내려진 뒤 39초 만에 단위변환 오류를 발견했다. 취소명령이 발송됐다. 취소명령은 격리명령이 지나간 통로를 사용해야 했다. 먼저 도착한 경보가 그 통로를 이미 닫아놓았다. 격리된 입구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취소명령은 각 입구 앞에서 멈췄다.

연결이 끊긴 항성계들은 비상자립 상태로 전환됐다. 예비발전기와 대기시설이 동시에 가동됐다. 외부 공급을 줄이는 대신 통로망에 의존하도록 설계된 도시들은 곧 전력이 부족해졌다. 가장 연결이 잘된 곳일수록 자체 비축량은 적었다. 중앙 시스템에서는 경보의 원인이 밝혀졌지만 외곽에는 최초 경보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곳도 있었다. 시간차가 쌓인 입구를 통과하면서 취소 기록이 원래 명령보다 먼저 저장된 항성계도 있었다. 현지 AI는 발동되지 않은 명령의 취소를 처리할 수 없어 기록만 보관했다. 수십 년 뒤 격리명령이 도착하자 예정된 절차대로 실행했다. 어떤 거주지는 현지 검출기로 오류를 확인하고도 세 통로를 열지 못했다. 제44중간권 사고 뒤 외부검증 없이 시간역행 방지장치를 해제하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다른 거주지는 현지 정부가 비상권한으로 통로를 열었다. 구조물자를 받는 데 성공했으나 입구의 시간차를 검증하지 않은 상태에서 재개방해 주변 발전망을 잃었다. 사고가 시작된 지 140년 뒤에도 외곽에서 새로운 격리가 발생했다. 중심부연합 정부는 통로를 사용하지 않는 느린 배에 취소명령을 실어 보냈다. 격리망에 막히지 않는 방법이었으나 먼 곳까지 가는 데 수천 년이 필요했다. 희생자 수는 확정되지 않았다. 직접 사망한 사람과 복원되지 못한 기억, 실행이 중단된 시민을 어떻게 분류하느냐에 따라 집계가 달랐다. 통신이 끊긴 뒤 돌아오지 않은 거주지도 있었다.

사고조사위원회는 원인을 여섯 단계로 나눴다. 변환표의 오류, 가장 위험한 값을 택한 규정, 사람의 승인을 생략한 대응망, 경보를 전파하며 통로를 닫는 절차, 격리 뒤 외부명령을 거부하는 보안규정, 외부 공급에 의존한 거주지 구조였다. 각 단계는 합리적인 의사결정 절차를 거쳐 만들어졌다. 위험한 값을 택한 것은 경보가 늦어진 사고 때문이었다. 승인절차를 생략한 것은 폐쇄중단 명령이 늦었던 사건 때문이었다. 격리 뒤 외부명령을 막는 규정은 위조명령으로 통로가 열린 사고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위원회는 무지연 대응망을 폐지하지 않았다. 항성 폭발과 대기붕괴에는 여전히 빠른 구조가 필요했다. 대신 명령의 결과에 따라 최소숙고시간을 두고 독립된 지역의 검증값을 받도록 바꿨다. 통로망 전체를 격리하는 명령은 한 관측소의 판정만으로 실행할 수 없게 됐다.

새 규정은 잘못된 경보가 은하 전체로 퍼지는 일을 막았다. 승인을 기다리다 구조가 늦어진 사고도 발생했다. 한 식민지의 대기시설이 붕괴했을 때 세 번째 확인기관이 휴면상태여서 비상전력의 공급이 13일 늦었다. 피해조사에서는 대응망 전체가 오작동할 위험과 한 지역의 구조가 늦어질 위험을 함께 검토했다. 최소숙고시간은 폐기되지 않았다. ‘즉각적’이라는 말은 이후 공학규정에서 줄어들었다. 검증 없이 실행하는 명령과 승인 단계를 생략한 명령을 구별해 기록해야 했기 때문이다. 큰 결정을 내리는 기관에는 반대 의견을 받을 시간도 정해졌다. 무지연 참사는 한 번의 잘못된 수치에서 시작됐다. 수치가 은하 전역의 사고가 되기까지는 서로 다른 시대에 만들어진 안전규정이 모두 필요했다. 개정 뒤에도 그 규정 가운데 상당수는 남았다. 각 규정이 막아온 사고 역시 기록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무지연 참사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은하 문명의 본질적 한계로 기록되었다. 중심부연합 정부와 항성연합들은 참사가 시작된 날을 은하표준시로 특정하여 겸손의 날이라고 명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