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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 역사편

14. 제5·6차 전쟁

에너지 결손과 웜홀 통로 유지비가 늘어난 뒤 중심부연합 정부는 권역별 에너지 배급량을 정했다. 인구와 생산시설, 의료수요를 기준으로 공급량을 배정했다. 생명보호연합은 항성연합과 연대하여 현재 주민의 수뿐 아니라 저온수면자와 기억보존소의 시민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중심부연합 정부는 같은 시민을 두 곳에서 셀 수 없다고 답했다. 한 사람이 출발지에 복원될 가능성이 있고 목적지로 귀환할 가능성도 있다는 이유로 양쪽에 전력을 배정하면 총량이 맞지 않았다. 식민지는 어느 가능성이 실제가 될지 아직 모르는 상태에서 한쪽을 제외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에너지 배급은 거주지마다 다른 기준으로 집행됐다. 어떤 곳은 현재 의식을 실행 중인 사람에게 전력을 우선 공급했다. 다른 곳은 장기수면자와 기억보존소의 전원을 지키기 위해 도시의 조명을 줄였다. 두 방식 모두 시민을 보호한다는 법률에 근거했다.

첫 충돌은 복원시설의 공급량을 줄이라는 명령에서 일어났다. 현지 권역별 자치 정부는 기억저장체를 정지시킬 권한이 없다고 답했다. 중심부연합 정부가 발전시설의 출력을 제한하자 현지 경비대가 시설을 점거했다. 인접 거주지들은 점거를 지지하거나 자신들의 전력계약을 지키기 위해 반대했다. 전쟁이 확대되자 각 권역은 공급받을 전력을 먼저 확보했다. 서로의 통로를 영구히 닫지는 못했으나 운송을 지연시키고 발전시설의 출력을 자기 권역에 우선 배정했다. 배급량을 지키려는 결정이 다른 권역의 배급량을 줄였다. 중심부연합 정부는 일부 권역을 다시 통제했지만 모든 공급계약을 동시에 이행할 수는 없었다. 종전협정이 작성될 무렵에는 단일한 상대와 협상하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거주지와 발전망, 기억보존소가 각각 다른 연합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제5차 전쟁은 승자와 패자를 기록할 수 없았다. 중심부연합 정부의 배급령이 효력을 잃고 권역별 배분체계만 남았다. 후대는 전투가 끝난 시점보다 어느 기관도 은하 전체의 공급량을 집행할 수 없게 된 시점을 종전으로 정했다. 그 뒤 각 권역은 다른 방식으로 생존을 연장했다. 항성 채굴을 늘린 곳이 있었고, 시민의 육체를 계산세계로 옮긴 곳도 있었다. 통로를 유지할 에너지를 확보하려고 다른 시설의 전원을 끈 곳도 있었다. 권역마다 무엇을 시민으로 보호하는지 달라지면서 여행자의 권리와 기억의 소유권도 경계마다 바뀌었다.

이 상태에서 선제적생명보호의무연합이 결성됐다. 약칭은 선의연합이었다. 이들의 전신은 생명보호연합이었다. 선의연합은 생태계연맹, 의료조합, 구조단체, 종교기관과 재난피해자 조직의 느슨한 연합체에서 출발해 연결권 단체, 기억보존소 보호단체, 통로안전기구 등이 참여하면서 정치적 집단으로 성장했다. 선의연합은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도 공식적으로는 비영리단체의 지위를 유지했다. 선의연합에 소속된 단체들의 목적은 서로 달랐다. 어떤 곳은 살아 있는 시민의 산소를, 어떤 곳은 아직 깨어나지 않은 시민의 전원을, 다른 곳은 사람이 떠난 행성의 생태계를 우선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초기 인류부터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는 가장 고결한 가치, 인본주의였다. 선의연합은 모든 권역에 동일한 시민 명부를 요구했다. 몸을 가진 시민과 계산세계의 시민, 저온수면자와 복원 대기자의 지위를 등록하고, 한 권역의 비용을 줄이기 위해 다른 권역의 보호대상을 임의로 지우지 못하게 하자는 제안이었다. 일부 권역은 제안을 받아들였다. 등록된 시민이 어느 항성계로 이동해도 같은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권역은 거부했다. 이미 공급할 에너지가 부족한 상태에서 외부의 기억저장체까지 시민으로 인정하면 현재 주민의 생명유지시설을 줄여야 했다.

선의연합은 거부한 권역에 원자재와 복원장비의 공급을 중단했다. 직접 통로를 닫지는 않았다.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자치 정부에 시민의 기록을 맡길 수 없다는 이유였다. 거부 권역은 선의연합이 민간기구의 이름으로 생명유지시설을 봉쇄한다고 발표했다. 이 충돌이 제6차 전쟁의 발단이었다. 전쟁의 양측은 자신들이 보호하는 생명의 목록을 발표했다. 한쪽은 지금 살아 있는 주민에게 확실히 공급할 수 있는 산소와 열을 셌다. 다른 쪽은 공급이 끊기면 돌아올 기회가 영구히 사라질 존재까지 셌다. 상대의 목록에서 빠진 생명을 제시하는 것은 군사적 점령만큼 효과적인 전쟁 수단이 됐다. 선의연합은 통로 안전기구의 기록과 여러 권역에 남아 있던 시민 명부를 결합했다. 등록을 인정한 항성계들 사이에서는 물자와 전력을 공동 배분할 수 있었다. 그 체계에 들어오려는 권역이 늘었고, 가입을 거부한 권역은 운송계약을 맺기 어려워졌다. 전투는 주로 발전시설과 통로의 관리권을 두고 벌어졌다. 한 권역은 현재 주민의 전력을 지키려고 기억보존소를 분리했고, 선의연합은 저장된 시민의 권리를 근거로 시설을 다시 연결했다. 양쪽 조치가 반복되는 동안 발전시설이 파손됐다. 시설의 소유권을 회복한 쪽도 잃어버린 출력을 되찾지는 못했다. 제6차 전쟁의 승자는 선의연합이었다. 가입 권역의 수가 늘어서만은 아니었다. 전쟁 동안 중심부연합 정부가 잃은 배급과 통로 관리 기능의 상당 부분을 선의연합의 공동배분망이 대신하고 있었다. 패배한 권역의 시민들도 이동하거나 복원될 때 자신의 지위가 인정되기를 원했다. 선의연합의 명부는 전쟁 뒤 중심부연합 정부의 공식 시민명부를 대신했다. 시민의 지위를 결정하는 권한이 명부와 함께 선의연합으로 이동했다.

전쟁이 끝난 뒤 중심부연합 정부는 선의연합의 공동배분망과 시민명부를 공식 행정체계로 받아들였다. 선의연합의 지도기구와 중심부연합 정부의 행정조직은 단계적으로 통합됐고, 이후 이 체계는 선의통합정부라고 불렸다. 통합 직후 선의통합정부는 생명연속성 보장령을 발표했다. 보장령은 현재 활동하는 생명과 장차 활동을 재개할 합리적 가능성이 있는 생명의 연속성을 보호했다. 시민의 육체가 사라졌거나 의식이 멈춰 있다는 이유만으로 생명유지시설과 기억보존시설을 폐쇄할 수 없었다. 복원할 수 있는지 불분명한 기록에도 검토절차가 필요했다. 명령에는 비용조항도 있었다. 필요한 전력이 부족하면 먼저 에너지 사용방식을 바꾸고, 그래도 부족하면 활동속도를 늦추며, 영구적인 정지는 마지막까지 피하도록 했다. 선의통합정부는 이전처럼 어느 권역의 시민을 배급표에서 지워 공급량을 맞출 수 없게 됐다. 보장령은 행성을 더 적은 에너지로 유지하기 위해 의식이주를 권장했다. 이미 계산세계에 살던 시민에게는 큰 변화가 없었다. 육체를 가진 시민은 복제된 의식이 자신과 같은 사람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선의통합정부는 강제이주를 금지했다. 대신 물리세계의 대기와 기후, 식량을 유지하는 비용을 각 시설의 장부에 모두 표시했다. 육체와 행성에 남을 권리는 유지됐다. 그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시민은 계산세계로 이주했다. 처음에는 에너지 소비가 크게 줄었다. 도시와 교통시설의 일부가 정지했고, 수많은 의식이 작은 계산소에서 활동했다. 육체로 돌아갈 가능성도 보호대상에 포함됐다. 선의통합정부는 시민이 일정 기간 사용할 수 있는 공공신체를 마련하고, 이주한 시민의 옛 행성도 복구 가능한 상태로 남겼다. 바다가 얼어도 다시 녹일 시설을 보존했고, 웜홀의 목을 좁혀도 완전히 닫지는 않았다. 선의통합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보존 대상의 수가 오히려 늘어나는 바람에 에너지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았다.

계산세계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생겼다. 여러 시민이 하나의 하늘과 도시를 공유하면 전력을 아낄 수 있었다. 시민들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갈 권리를 요구했다. 관측되는 곳만 계산하는 방식은 자신이 보지 않는 동안에도 기억과 세계가 이어진다는 보장을 요구하는 시민의 이의신청을 받았다. 법원은 계산을 어느 정도 단순화할 수 있는지 기준을 만들었다. 개인의 경험과 기억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데 필요한 부분은 유지해야 했다. 그 기준 아래에서 많은 세계를 별도로 실행했다. 한 시민의 기억에서 갈라진 복제 인격들이 서로 다른 경험을 쌓으면 누구를 시민으로 셀 것인지도 결정해야 했다. 법원은 독립된 의식과 기억의 연속성이 확인된 존재를 각각 보호했다. 한 사람당 필요한 계산량은 줄었지만 보호받는 시민의 수는 오히려 늘어났다. 다음 조치는 시민의 시간률을 낮추는 것이었다. 계산세계에서 사고가 진행되는 속도를 줄이면 같은 시간 동안 사용할 전력이 감소했다. 내부에서는 자신의 생각이 느리게 진행된다는 사실을 체감하기 어려웠다. 외부에서 답변을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차이가 컸다. 빠르게 실행되는 시민과 느리게 실행되는 시민의 권리가 같아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선의연합은 모든 시민에게 최소한의 시간률을 보장하고, 그 이상은 남은 에너지의 범위에서 배분했다. 최소한을 정하기 위한 투표에서 느린 시민들의 표는 가장 늦게 도착했다. 투표가 끝날 때까지 기존의 속도 차이는 유지됐다.

보장령 시행 뒤 시민 한 명당 에너지 사용량은 크게 줄었다. 선의통합정부는 그 수치를 정책의 성과로 발표했다. 보호받는 시민과 세계, 복원 대기자의 총수가 함께 증가했다. 에너지 총소비량은 일시적으로 감소한 뒤 다시 늘었다. 제6차 전쟁의 명분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생명의 목록에서 누군가를 빼지 말자는 것이었기 때문에 보장령 폐지할 수 없었다. 물론 보장령에 의해 권리를 보호한 실제 사례도 무수히 많았다. 그러나 일부 계산세계에서 외부의 1천 년 동안 내부의 하루가 흘렀다. 통로는 열려 있었고 기억체의 전원도 유지됐다. 많은 시민이 법적으로 살아 있었다. 은하 문명은 그들이 다음 생각에 도달하도록 하는 데 남은 가용에너지의 대부분을 사용해야 했다. 선의통합정부는 단일한 생명 명부를 남겼지만 그걸 유지할 에너지는 끝내 갖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