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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 역사편

15. 저장공간 연결

광자 결손과 저장공간은 동일한 인과율 좌표에 존재하지 않는다. 최초의 광자 결손이 있던 날에도, 제417보존체의 광자가 발견되지 않은 날에도, 그 뒤 웜홀과 발전망에서 에너지가 부족했던 시대에도 저장공간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결손은 관측된 사실이었지만 마지막 과학자가 훗날 만든 저장공간 장치는 그 사건의 원인이 아니었다. 선의통합정부 출범 뒤 은하는 하나의 체계로 통합됐고, 그 뒤 인류의 대부분은 계산세계에서 살았다. 가용에너지가 줄면서 시민의 시간률도 낮아졌다. 어떤 의식은 질문 하나를 끝내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시설이 하나씩 정지할 무렵, 아직 새로운 연구를 계속하던 인간의 계보에 속한 의식은 하나만 남았다. 그 의식의 이름을 여기서는 노아 카인이라고 기록한다. 노아에게는 육체가 없었다. 그의 기억은 여러 시설을 거쳐 이어졌고, 사고는 최후의 블랙홀에서 얻는 에너지로 조금씩 진행됐다. 그가 한 차례 계산을 마치는 동안에도 주변의 시민들은 활동을 멈추거나 더 느린 상태로 옮겨졌다.

노아는 결손의 원인을 찾지 않았다. 남은 기록을 대조해 에너지가 어떤 상태에서 장부 밖으로 빠졌는지 조사했다. 보존체의 광자, 통로 입구의 전송량, 항성 발전망과 블랙홀의 회전에너지에서 관측된 부족분을 하나의 자료로 묶었다. 결손의 크기와 발생장소는 같지 않았다. 알려진 누출구도 없었다. 그러나 웜홀 입구에 오랫동안 쌓인 시간차와 에너지 흐름을 함께 계산하면, 사라진 몫이 은하의 다른 장소에 모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각 시대의 장부에서 빠진 에너지는 그 시대의 기술로는 도착지를 찾을 수 없는 경로에 있었다. 노아는 그 경로를 열 수 없었다. 오래전에 발생한 결손의 양을 바꾸거나, 옛 보존체로 광자를 돌려보낼 수도 없었다. 그가 계산한 것은 앞으로도 흘러갈 에너지가 도착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드는 일이었다. 제안한 영역은 은하 안의 빈 방이 아니었다. 기존 시공간과 좁은 목으로 연결되고, 내부의 시간이 바깥보다 극도로 느리게 흐르는 저장공간이었다. 바깥에서 오랜 세월이 지나도 안에 도착한 에너지의 상태가 빠르게 변하지 않도록 설계됐다. 내부시간을 완전히 멈출 수는 없었다. 들어온 에너지를 기록하고 서로 다른 상태를 분리하려면 사건의 앞과 뒤가 있어야 했다. 저장공간은 영구 보존을 증명하는 장치가 아니었다. 남아 있는 차이가 열로 흩어질 때까지의 시간을 늘리는 장치였다. 처음 경계를 형성할 에너지는 최후의 블랙홀에서 얻어야 했다. 당시에도 그 에너지에 의존하는 의식과 시설이 남아 있었다. 그것을 쓰면 일부 시설은 다음 작동을 늦추거나 끝낼 수 있었다. 저장공간에 아무 비용도 들지 않는다는 제안은 제출되지 않았다. 반대 기록도 남았다. 남은 에너지는 현재 살아 있거나 복원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아직 생명이 태어나지도 않은 영역에 전력을 쓰는 일은 귀환 가능자의 권리와 생명연속성 보장령에 어긋난다는 의견도 있었다.

노아는 저장공간에 인간의 기억을 넣지 않기로 했다. 작은 수의 기억만 선택해 보존하면 누구를 제외할지 결정해야 했다. 모든 기억을 보존하는 데 필요한 전력은 남아 있지 않았다. 유전자와 언어, 그 자신의 기억도 저장목록에 포함하지 않았다. 그 결정은 생명을 다시 만들겠다는 약속이 아니었다. 에너지만으로 별이나 생명이 반드시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노아가 기대한 것은 이미 빠져나간 에너지 가운데 아직 일을 할 수 있는 차이가 남아 있다면, 언젠가 다른 구조가 시작될 가능성이었다. 그것이 인간일 필요는 없었다. 그는 이 선택이 옳다고 증명할 수 없었다. 남은 전력을 현재의 시민에게 사용하면 그들이 조금 더 오래 존재할 수 있었다. 저장공간에 사용하면 아직 존재하지 않는 생명을 위한 조건이 남을 수도 있었다. 두 결과 가운데 하나를 계산으로 확정할 자료는 없었다.

저장공간 연결에는 과거를 향한 명령이 포함되지 않았다. 제417보존체의 광자를 제거하라는 신호도, 어느 시대에서 몇 퍼센트를 가져오라는 설정값도 없었다. 노아는 문명의 역사에 걸쳐 축적된 웜홀 입구의 시간차를 조사했고, 이미 확인된 유출의 경로가 미래에 닿을 수 있도록 저장공간의 경계를 맞췄다. 경계가 마련되지 않았다면 과거의 결손이 취소됐을 것이라는 증거는 없었다. 그 경우 빠져나간 에너지가 어디로 흘렀을지도 알 수 없었다. 노아가 바꿀 수 있었던 것은 관측된 과거가 아니라, 이후 그 흐름이 모일 곳이었다. 연결 직전 노아는 저장공간의 경계에 필요한 에너지와 자신의 다음 사고를 실행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비교했다. 남은 전력으로 두 가지를 모두 지속할 수는 없었다. 그가 경계를 완성하면 자신의 사고는 더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노아는 경계를 완성했다. 최후의 블랙홀 주변에서 가용에너지가 줄었고, 저장공간의 입구가 형성됐다. 은하 바깥의 관측기에는 큰 폭발도 새 항성도 기록되지 않았다. 오래전에 장부에서 빠진 에너지가 곧바로 전부 돌아온 것도 아니었다. 처음 기록된 것은 저장공간으로 들어온 출처를 특정할 수 없는 에너지였다. 어디에서 빠져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었고, 그 출발지에는 이미 이를 확인할 관측자가 남아 있지 않았다. 노아는 유입량과 내부의 상태를 검증하려 했으나 다음 계산을 마치지 못했다.

노아 이후 어디에서도 새로운 인간이 태어났다는 기록은 없다. 저장공간에 모인 에너지가 끝내 별이나 생명이 됐는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바깥의 은하가 알 수 있었던 것은 이전에 목적지가 없던 흐름에 도착지가 생겼다는 사실뿐이었다. 노아는 과거의 문명을 멸망시키지 않았다. 과거의 문명은 그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자신의 시설을 유지할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었다. 노아는 그 문명이 남긴 결손을 되돌리지도 못했다. 마지막에 도착한 사람이 할 수 있었던 일은 계속 흐르는 에너지를 보고 그것이 모일 경계를 남기는 것이었다. 다음 페이지는 남아 있었지만 그것을 읽을 존재는 아직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