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n-in-Seoul.com

제3부 — 인물편

3. 무스타파 세른 - 은하표준시의 설계자

무스타파 세른은 약속시간을 자주 지키지 못했다. 그는 게으르지도 않았고 무심하지도 않았으며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그냥 늘 시간에 쫓기는 평범한 일벌레였다. 인류는 유전자를 아무리 편집하고 개조해도 일벌레 유전자만큼은 조작하지 못했다. 세른은 바로 그 일벌레 유전자를 가진 인간이었다. 그는 그 형질을 최대치로 발휘해 은하표준시를 설계했다. 그것은 최고 등급의 AI도 포기했던 가장 어려운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은하 전체의 시간을 맞췄지만 자기 일정표만큼은 끝내 맞추지 못했다. 세른은 손목시계를 찬 적이 없었다. 오른손잡이였지만 사고로 왼쪽 손목을 잃어 시계를 찰 곳도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는 시계를 만드는 기술자가 아니었다. 그는 서로 다른 시계들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계산하는 기획자였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엔지니어나 공학자로 부르는 것을 탐탁지 않아 했다. 그는 자신을 미래와 전략을 설계하는 기획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젊은 시절 시간분쟁 법정에서 감정인으로 일했다. 한 회사가 계약보다 먼저 파산했는지 계약 뒤에 파산했는지를 두고 두 항성계가 다툰 적이 있었다. 양쪽 기록은 모두 정확했고, 각 지역의 시간으로는 모두 자기 주장이 옳았다. 판사는 세른에게 어느 쪽 시간이 진짜인지 물었다. 세른은 ‘진짜 시간’이라는 표현 자체가 질문을 잘못 만들었다고 답했다. 판사는 잘못된 질문이라도 판결은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세른은 자연에 존재하는 하나의 시간을 찾는 대신, 서로 다른 시간을 하나의 기록 안에서 비교할 수 있는 계산법을 만들기로 했다.

그의 최초 설계안에는 중심시계가 없었다. 은하 곳곳의 원자시계와 펄서 신호 등 다양한 값을 모아 차이를 비교하면 누구의 시간도 표준이 되지 않았다. 어느 시계도 다른 지역에서 그대로 사용할 수 없었고, 시계들 사이의 관계를 계산해야만 공통기록을 만들 수 있었다. 정치가들은 그 설계를 좋아했다. 엄밀히 말하면 설계 자체보다 그것을 정치공학이라는 익숙한 문구로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을 더 좋아했다. 어느 행성도 다른 행성의 시간에 복종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과학자와 공학자, 기술자들은 모두 반대했다. 표준시를 계산하려면 은하 전체에 새로운 시계와 전용통로를 설치해야 했기 때문이다. 세른은 반대의 이유가 바뀔 때마다 설계가 성공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처음에는 모두가 불공평하다고 반대했고, 나중에는 모두가 똑같이 비싸다고 반대했다.

은하표준시협정회의 개회선언은 열네 번 반복됐다. 대표단마다 도착시각이 달랐기 때문이다. 세른은 첫 선언과 마지막 선언 가운데 어느 것을 공식시각으로 기록할지 질문 받았다. 그는 표준시가 완성된 뒤 역산하자고 답했다. 회의는 아직 만들지 않은 시계로 자기 시작을 정했다. 세른은 겉으로는 근엄하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이런 바보들에게 대체 은하표준시 따위가 무슨 소용이냐고 자조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 상관없이 은하표준시는 필요 때문에 가동됐다. 그 뒤로 은하 문명에서 계약분쟁은 크게 줄었다. 여행자의 나이와 보험기간을 계산할 수 있었고, 여러 행성에서 깨어난 기억본 가운데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도 판정할 수 있었다. 은하표준시는 구조와 보험, 상속과 시민권의 기준을 하나로 묶었고, 수많은 분쟁이 전쟁으로 번지는 것을 막았다. 후대의 역사가들은 그 설계가 막아낸 전쟁과 구한 생명의 수를 계산하려 했지만,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고만 기록했다. 그렇다고 세른이 당대에 존경을 받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어느 유명인보다 더 유명해졌다. 시민들은 그가 은하 전체에 같은 시간을 흐르게 만들었다고 믿었다. 기념행사 사회자가 그렇게 소개할 때마다 세른은 같은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을 변환하는 법을 합의한 것이라고 정정했다. 사회자는 다음 행사에서도 같은 소개문을 읽었다. 정확한 설명은 축사로 사용하기에 너무 길었기 때문에 세른도 결국 물리적 시간은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다는 말로 사회자의 오류를 넘겼다. 청중들은 그의 겸손한 발언 때문에 그를 더 사랑하고 존경했다.

세른은 자기 집에 열두 개의 시계를 두었다. 모두 다른 행성의 현지시간을 표시했고 은하표준시를 나타내는 시계는 없었다. 방문객이 이유를 물으면 표준시는 장소가 아니라 관계이므로 벽에 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아내에 따르면 그저 열세 번째 시계를 살 돈이 아까웠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세른은 은하표준시가 가동된 뒤 오래된 기록들을 같은 좌표로 옮기는 작업을 보았다. 서로 다른 기관에서 붙인 날짜와 사건의 순서가 바뀌기도 했다. 그는 “우리는 처음으로 같은 실수를 함께 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 문장은 훗날 그의 묘비에 새겨졌다.

세른은 은하표준시 측정을 고도화하기 위하여 기준망을 무제한으로 확대하는 데 반대했다. 시간을 더 정확하게 계산하려고 전용통로를 늘리면 통로가 늘어난 뒤의 은하는 이전과 같은 측정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의 반대는 광자 결손을 예견한 경고가 아니었다. 새로운 망을 설치하는 일에도 비용과 영향이 있다는 설계자의 의견이었다. 의회는 그의 반대를 신중한 의견으로 기록한 뒤 예정대로 기준망을 확장했다. 세른이 죽은 뒤, 과거의 결손 기록들도 은하표준시를 이용해 다시 대조됐다. 광자보존표준체에서 사라진 광자와 통로에서 부족했던 에너지가 서로 무관한 장치 고장만은 아닐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세른은 그 결과를 직접 보지 못했다. 수십억 년 뒤 마지막 과학자는 세른의 계산법으로 과거 통로들의 시간차를 조사했다. 아무도 시간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공개한 표준시는 오래된 에너지의 흐름을 읽어내는 데에도 쓰였다. 세른은 그 용도를 예측하지 못했다. 예측했다면 표준시를 만들지 않았을지는 알 수 없다. 표준시가 없었다면 은하를 하나의 문명으로 기록하는 일은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표준시가 있었으므로 은하 문명의 서로 다른 종말을 하나의 역사로 기록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