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교를 창시한 요나 세트는 부활을 믿지 않았다. 그는 기질적으로 종교에 무관심했다. 그는 기록보관 기술자였다. 세트의 일은 손상된 기억에서 한 사람의 인격을 최대한 복원하는 것이었다. 집중력과 신중함이 요구되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불완전한 문장과 감각의 조각, 다른 사람이 기억하는 한 사람의 표정까지 모아 사라진 인격을 추정했다. 그는 자신의 일에 자부심이 컸던 탓에 홍보 문구에 ‘복원은 곧 창조’라고 썼다. 그러나 그 말의 참뜻에는 원래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믿음이 깔려 있었다. 그는 고객들에게 굳이 말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남은 자료로 그와 닮은 새로운 사람이 만들어질 뿐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복원된 사람들은 그 설명을 싫어했다. 아니, 부정했다. 그들은 자기 이름과 어린 시절, 사랑했던 사람을 기억했다. 기술자가 자신을 새로 만든 모형이라고 부르면 누구라도 화가 났다. 한 복원자는 세트에게 자신이 가짜라면 세트가 빌린 돈도 가짜냐고 물었다. 세트는 빚을 갚았다. 그 뒤 설명을 조금 바꿨다. 원본과 복원본을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사회는 둘을 같은 사람으로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존재의 진실보다 관계의 지속이 중요하다는 주장이었다. 이 생각은 귀환 가능자 판결 뒤 널리 퍼졌다. 가족들은 고장 난 기억저장체를 세트에게 가져왔다. 복원할 수 없는 경우에도 그는 자료를 버리지 않았다. 오늘의 손상이 내일의 기술로 읽힌 사례가 차곡차곡 쌓여갔기 때문이다.
세트는 한 번도 종교를 창시할 생각이 없었다. 최초의 복원 모임도 딱딱한 기술설명회였다. 그는 우주에서 정보가 완전히 사라지는지를 설명하다가 이런 말을 했다. “한 사람이 남긴 영향이 모두 존재한다면, 충분한 지성은 그 사람을 다시 계산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있을지도 모릅니다’를 듣지 않았다. 그 앞의 말만 기억했다. 복원교는 모든 사람이 우주에 흔적을 남기며, 언젠가 완전한 기술이 그 흔적을 모아 다시 살릴 수 있다고 믿었다. 신은 굳이 필요 없었다. 미래의 계산능력이 신의 자리를 대신했기 때문이다. 기도는 기록이었다. 신자들은 자신의 기억을 보관소에 매일 전송했다. 죽은 사람의 대화와 영상, 구매기록과 이동경로를 삭제하지 않았다. 사소한 자료일수록 인격의 빈 곳을 채우는 데 중요하다고 믿었다. 한 신자는 평생 먹은 아침식사의 목록을 보존했다. 후대 연구자는 그 자료가 본인의 성격보다 소화기관을 복원하는 데 더 유용하다고 평가했다. 복원교는 빠르게 성장했다. 죽음을 부정해서가 아니라 죽은 사람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유족에게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은 확률보다 중요했다. 교단은 기억보관소를 세웠고 통로에서 사라진 여행자들의 자료를 수집했다. 파산한 저장회사를 인수해 수많은 기억을 지켰다. 실제로 복원된 사람도 있었다. 성공한 한 번의 복원은 실패한 수십억 번의 보존을 정당화했다.
세트는 교단의 확대가 불편했다. 그는 완전한 복원 가능성을 증명한 적이 없다고 일관되게 말했다. 우주에 흔적이 남는 것과 그 흔적을 다시 모을 수 있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신자들은 그의 회의를 겸손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창시자가 자신의 교리를 의심하는 것까지 교리의 일부가 됐다. 세트가 죽었을 때 그의 유언은 모든 개인기록을 삭제하라는 것이었다. 교단은 유언을 집행하지 않았다. 죽기 전의 세트와 죽음을 앞둔 세트 가운데 어느 쪽의 의사가 진정한지 판단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의 기록은 세 곳의 보관소에 저장됐다. 복원된 세트는 각자 자신이 창시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첫 번째는 교단 해산을 명령했고, 두 번째는 자신을 즉시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세 번째는 두 사람의 요구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교단은 세 번째 세트를 정통 후계자로 인정했다. 기술자였던 요나 세트는 사람이 반드시 돌아온다고 말한 적이 없다.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은 복원교 창시자 요나 세트를 믿었다. 둘은 같은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