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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는 만리장성 앞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가게로 돌아갔다. 만선이 추리닝에 슬리퍼 차림으로 하품을 하며 홀 청소를 하고 있었다. 판선이 손가락으로 만선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만선이 “비 오는 줄 알았으면 일찍 나올 걸 그랬네. 난 그것도 모른 채……” 하고 웅얼거렸다.
“알았어.”
대호가 비옷을 벗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만선이 눈을 부라리자 판선이 만선의 손목을 잡았다. 만선은 한 번 씨익 웃더니 “대호야 미안하다. 졸라 미안해” 하고 홀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큰소리로 다시 사과했다.
“사과해 줘서 졸라 고마워.”
대호는 조금 전보다 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판선은 앞치마를 벗으며 “이제 점심 먹자. 만선이가 음식 좀 날라” 하고 말했다.
대호는 자리에 앉아 만선이 짬뽕 세 그릇과 군만두 접시를 나르는 동안 손가락도 까딱하지 않고, 간장 종지에 식초와 고춧가루를 섞어 소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차려진 탕수육을 먹기 시작했다. 만선은 숟가락으로 짬뽕 국물만 뜨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만선이 너 도대체 몇 시까지 피시방에 있었어?”
“몰라.”
“너, 말 짧게 하지 말랬지.”
판선이 언성을 높였다.
“모른다니까요.”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말라.”
대호가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끼어들었다.
“이 자식이 뭐래?”
만선이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대호는 만선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탕수육 접시를 자기 앞으로 당겼다.
“만선아. 만선아.”
판선이 낮은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만선은 고개를 숙인 채 한숨을 쉬더니 눈만 살짝 치켜떴다.
“넌 내가 몇 살인 줄 아니?”
만선은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열여덟 살 때 만리장성에 취직한 게 벌써 십구 년 전이야. 그럼 몇 살인지 알겠지?”
“뭐. 대충은.”
만선은 큼큼거리며 목을 다듬더니 대답했다.
“뭐가 대충이야. 십팔 더하기 십구는 삼십육이지. 너 바보냐?”
“서른 일곱이네.”
대호가 판선의 오류를 정정했다.
“그래 삼십육이 아니라 삼십칠이구나. 내가 올해 서른일곱이란 말이야. 아무튼 그건 됐고, 중요한 건 내가 만리장성에서 무려 십구 년을 뺑이 쳤다는 사실이야. 십구 년이면 진짜 중국에서 만리장성을 두 번 아니 세 번을 쌓았겠다. 안 그래?”
판선이 만선과 대호의 얼굴을 한 번씩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만선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대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란 말이지. 우리 집이 얼마나 가난했는지 니들은 모를 거야. 너무 배가 고파서 고등학교 입학하자마자 때려치우고 무작정 만리장성 사장님에게 취직 시켜 달라고 무릎 꿇고 빌었어. 처음에는 얼마나 쪽팔렸는지 아니? 배달 갔다가 중학교 동창이나 고등학교 친구들 보면 진짜 죽고 싶더라. ”
판선이 한숨을 내쉬며 왼쪽 손에 난 수많은 칼자국 흉터들을 쓸었다.
“그때 같이 배달하던 형들이 두 명 더 있었는데 일만 끝나면 당구장에서 죽치며 우리 만리장성에서 짜장면을 시켜 먹더라. 그러는 사이 나는 배달 이 년 만에 주방 보조가 되었고, 다시 오 년 만에 부주방장이 되었단 말이야. 그때가 몇 살이었냐면……. 대호야 카운터에 가서 계산기 좀 가져다줄래요.”
대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기를 가져오는 동안 판선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래, 십팔 더하기 이, 다시 더하기 오, 그러니까 스물다섯 살이었어.”
판선은 계산기를 옆으로 밀며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잔소리하는 게 아니야. 속초 촌구석에서 중국집 사장이 무슨 대수냐고 비웃을 수도 있지만 이건 내 인생 전부야. 앞으로 한 번만 더 무단결근하면 그날로 끝이야. 알았어?”
만선은 고개를 숙인 채 대답이 없었다.
“알았냐고?”
판선의 언성이 높아졌다.
“네.”
대호가 침을 꼴깍 삼키더니 대답했다.
“네는 뭐가 네야, 멍청아! 너는 수십 번도 더 들은 잔소리가 지겹지도 않냐?”
만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대호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한 대 후려갈겼다. 그러더니 식탁 위의 음식들을 손으로 쓸며 소리쳤다. 하지만 만선의 팔이 짧아서 짬뽕 그릇 하나만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닥은 짬뽕 국물과 건더기로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그만두면 될 것 아냐. 어디서 훈장질이야. 감히 누구한테 훈장질이냐고!”
대호는 주먹을 쥐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이게 친구랍시고 봐줬더니 이제 진짜 막나가네.”
대호는 두 손으로 만선의 멱살을 잡고 들어올렸다. 만선이 숨을 컥컥거리며 두 다리로 발버둥 쳤다.
“놓아줘.”
대호는 판선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 천천히 만선의 멱살을 풀어 주었다. 만선은 바닥에 고인 짬뽕 국물 때문에 뒷걸음질 치더니 그만 중심을 잃고 꽈당 자빠졌다. 짬뽕 국물로 범벅이 된 만선은 자리에서 일어나 판선과 대호를 노려보더니 “이런 씨발!” 하고 소리쳤다. 대호는 만선을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더니 판선의 옆으로 가서 섰다.
“이 자식, 맨날 피시방에 데리고 가서 같이 놀아 줬더니 배신을 때려.”
“야! 말은 바로 해라. 피시방은 네가 혼자 가기 싫어서 나까지 억지로 끌고 간 거지, 언제 내가 먼저 가자고 한 적 있냐?”
만선이 녀석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고함을 치더니 재빨리 앞문 쪽으로 뛰쳐나갔다. 그런데 영업시간이 끝나서 앞문은 이미 닫혀 있었고 셔터도 내린 지 오래였다. 당황한 만선이는 잠시 주춤거리더니 뒷문 쪽으로 달려 나갔다.
“바보 자식.”
대호는 욕을 한 번 내뱉고 청소도구를 가지고 왔다. 대호가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면과 국물을 양동이에 쓸어 담았다. 판선은 아무 말 없이 대걸레를 가져와 바닥을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