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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냐?”
대호가 아파트 현관문을 열자 쉰 목소리가 그르렁거렸다.
“밥 먹었어?”
대호는 현관 입구에 쪼그려앉아 신발 끈을 풀며 말했다.
“뭐라고?”
안방에서 나온 노인은 쭈글쭈글한 손으로 벽의 모서리를 짚고 서있었다.
“할매, 밥 먹었냐고?”
“그래그래. 어서 씻어. 할매가 미역국 끓여 놨다.”
노인은 서너 발자국 옆에 있는 주방을 향해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옮겼다. 노인의 벽에서 손을 떼을 때 유독 누렇게 변색된 벽지의 손자국이 드러났다.
“배달하다가 짬뽕 국물을 흘렸어. 내가 저녁 먹고 세탁기 돌릴 테니 할매는 신경 쓰지 마.”
대호는 옷을 벗어 대충 빨래 바구니에 던져 넣고, 욕실로 들어가며 말했다.
노인은 고개를 잠시 갸웃하더니 가스레인지에 올려둔 냄비에 불을 켰다. 그리고 빨래 바구니를 집어 들더니 주방 뒤쪽 세탁기실로 절뚝거리며 가지고 갔다.
대호는 샤워기에서 따뜻한 물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수압을 올렸다. 하지만 따뜻한 물은 좀체 나오지 않았다. 따뜻한 물을 기다리는 동안 대호는 욕실 벽면의 들떠버린 타일 두 장을 손바닥으로 지긋이 눌렀다. 타일은 벽쪽으로 들어가는 듯하더니 손을 떼자 대충 발라놓은 실리콘의 탄성 때문인지 다시 슬그머니 밀려나왔다.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미지근한 물은 대호의 몸에 닿자마자 식어버렸다. 머리를 감고 몸에 밴 짬뽕 냄새를 씻어 내는 동안 대호는 쉬지 않고 이를 딱딱거렸다. 머리를 두 번이나 감았는데도 짬뽕 냄새가 가시지 않는 듯 대호는 어깨에 코를 박고 킁킁거렸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대호는 식탁에 앉지도 않고 미역국을 단번에 들이켰다. 국물과 함께 입속으로 빨려들어간 미역과 고깃덩어리를 우적거리며 대호는 잠시 몸서리를 쳤다. 그리고 국그릇에 미역국을 한사발 가득 퍼 담았다.
“할매, 진짜 올해 안에는 어떻게 해서든 엘리베이터 있는 아파트로 이사 가자. 내가 집주인에게 아까 전화했거든. 새 세입자 구해지고 우리더러 복비만 내래. 그럼 괜찮대. 내가 우리 할매 무릎이 안 좋아서 4층까지 업고 병원 다닌다고 죽는 소리를 했더니 집주인이 아파트 상가에 있는 부동산에 연락해 놓겠다. 집 보러 오는 사람 있으면 집 비우지 말고 깨끗이 청소나 잘 해두래. 내가 올라오기 전에 부동산에 들렀는데 오늘은 문을 안 열었더라. 내가 내일 다시 들러서 이야기해 놓을 테니 할매는 어디 가지 말고 집에 꼭 붙어 있어.”
“뭔 돈이 있다고 갑자기 이사냐?”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마.”
“그 부동산 사장이란 양반 사기꾼 아냐? 이 집도 올 수리라고 큰소리치더니 뜻뜻한 물도 잘 나오고 보일러도 영 시원치 않잖아. 가을부터 이렇게 웃풍이 심하니 원…….”
“하여간 그건 됐고 이번에는 무조건 엘리베이터 있는 곳으로 갈 거야. 내가 조양동에 있는 열세 평짜리 봐뒀다고. 여기보다 두 평 좁기는 한데 별 차이 없더라. 어차피 할매랑 나랑 둘이서 살 거니까 그 정도가 딱 좋아. 그리고 거긴 보일러도 새 걸로 교체했다고 하더라고. 이번에는 정말 확실하다고.”
대호는 입안에 든 밥알을 튀기며 말했다.
“그래그래. 알았다. 내 강아지.”
“강아지라고 하지 말랬잖아. 나도 이제 주민등록증 나온 어른이라고.”
“그래그래 알았다. 대호야 그런데 화내지 말고 들어?”
“내가 언제 화를 냈다고 그래, 할매는? 뭔 이야긴데?”
“느그 애비가 지금 목포에 있다고 전화왔다.”
대호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숟가락을 국에 만 밥을 먹었다.
“배가 고장이 나서 목포에서 수리한다고 하는 것 같더라. 내가 집에 좀 들르라고 했더니 배에서 못 나온대. 수리하는 동안 배에서 일할 게 산더미래.”
“그럼 배 고치고 나면 다시 참치 잡으러 돌아가면 되잖아. 집에는 오지도 않을 거면서 왜 전화했대?”
“그게 아니라 혹시 네가 목포에 올 수 있으면 얼굴 한번 보자고 하더라.”
“내가 거길 왜 가? 할매도 참. 목포가 여기서 얼마나 먼 줄 알아? 여기서는 가는 버스도 없고, 열차도 없고, 비행기도 없어. 완전 끝에서 끝이라고.”
“그러니까 화내지 말고 내 말 좀 들어 봐. 느그 애비가 3년 계약이라서 아직 집에 오려면 1년 넘게 남아서 그러니까 니 얼굴 한 번 보자고 그러더라.”
“난 싫어. 그리고 내가 거기 가면 할매는 병원에 어떻게 가고 시장에는 어떻게 가려고. 그리고 부동산에서 집 보러 와서 갑자기 이사 가야 하면 어쩌려고. 지금 하루가 급하다고. 진짜 추워지기 전에 조양동 아파트로 이사 가야 한다고. 내가 이사 가려고 돈도 많이 모아놨다고.”
“그래도…….”
“안 돼. 할매. 그건 절대 안 돼. 저번에도 집에 와서 같이 밥도 한 번 안 먹고 술만 퍼마시더니 얼굴도 안 보고 가버렸잖아. 생활비도 제대로 보내지 않으면서 나더러 목포까지 오라고. 염치도 없어도 어지간해야지.”
대호는 말없이 미역국에 만 밥을 먹었다. 할매도 더 이상 대호를 채근하지 않았다. 저녁식사를 마친 대호는 세탁실에서 마른 걸레 두 장과 바스켓을 챙겨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안방 창문의 새시에 고여 있는 빗물을 마른 걸레로 흠뻑 적셨다. 대호는 빗물을 머금은 걸레를 바스켓에 넣고 쥐어짰다. 빗물을 모두 제거한 후 대호는 안방 새시를 두 손으로 들어올려 수평을 맞추려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대호는 잠시 안방 창문을 바라보더니 아무 말없이 한숨을 내쉬고 나서 바스켓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하수구에 빗물을 버리고 나서 이번에는 빈 바스켓과 걸레를 들고 발코니로 나갔다. 그리고 안방에서 했던 작업을 똑같이 반복했다. 발코니 바닥으로 흘러넘친 빗물까지 모두 치우고 뒷정리를 마치자 밤 8시가 넘었다. 대호는 주방에서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미역국을 한그릇 퍼 담아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