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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친 오후

오늘 담임 선생님에게 조퇴 증을 받으러 갈 때까지만 해도 열이 오르고, 머리가아프고, 골반과 가슴이 욱신거리고, 몸도 붓고, 괜스레 짜증까지 났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조퇴 증을 받고 나자 몸이 서서히 나아지는 것 같더니, 교문을 빠져나오니까 그렇게 쑤시던 삭신이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정말 예수님이 문둥이 고치듯 통증이 사라졌다. 머리까지 상쾌했다. 아무래도 우리 학교는 터가 안 좋은 것 같다. 어쨌든 아까는 진짜로 아팠다. 지금쯤 수학 쪽지 시험 때문에 머리 쥐어뜯고 있을 우리 반 아이들 생각을 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6교시는 인간 수면제 변재호 선생님의 물리 시간이었다. 오늘 조퇴하지 않았다면 119에 전화해서 앰뷸런스라도 불러야 했을 거다. 그러니 선생님들은 내게 고마워해야 한다. 내가 자진해서 조퇴하고 이렇게 깔끔하게 나았으니 말이다. 몸도 개운해졌으니 황금 같은 금요일 오후를 알차게 보내야지.

사거리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산이가 손을 흔들었다. 나는 손을 살짝 들었다 내렸다. 흔들지는 않았다. 내숭덩어리. 아침까지만 해도 땡땡이치기 싫다더니 나보다 먼저 조퇴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산이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내 단짝이다. 학교에서 나를 찾으려면 산이가 어디 있는지 알면 된다. 우리는 화장실도 함께 다녔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는 언제나 붙어 있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나는 산이와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이유를 대자면 수백 가지를 더 댈 수 있지만 그것으로 산이와 나의 관계를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힘들다. 그냥 좋다.

산이와 나는 외동이라는 점을 빼면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키가 산이보다 한 뼘이나 컸지만 그렇다고 내 키가 큰 편에 속한 것은 아니었다. 산이는 작고 깜찍한 인형처럼 귀여워서 중학생 때부터 남자 애들에게 고백을 몇 번이나 받았다. 하지만 나는 고백은커녕 친근한 눈길 한 번 받아 본 적 없었다. 나는 맞벌이 부모님 밑에서 넉넉한 용돈을 받으며 사는 반면, 산이는 재작년부터 할머니와 단 둘이 낡은 임대 아파트에서 지냈다. 부모님이 일찍 이혼한 까닭에 산이는 아빠와도 잠깐, 친엄마와도 잠깐, 큰아빠와도 잠깐, 큰고모와도 잠깐 살았다. 농구공 패스하듯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며 살았지만 산이는 언제나 밝고 쾌활했다. 물론 그게 산이의 진심인지 가식인지 알 수 없었다. 비라도 내리면 하루 종일 기분이 울적한 나는 산이의 그런 유쾌한 성격이 가장 부러웠다.

산이는 싫어하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다. 바로 친엄마였다. 산이는 엄마를 엄마라고 하지 않고 꼭 친엄마라고 불렀다. 그래서인지 친엄마는 엄마 같지 않고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낯선 존재처럼 보였다. 산이가 우리 둘만의 <회색 노트>에 적어 놓은 내용을 보면 산이 친엄마는 예수님도 회개시키기 어려울 여자였다. 산이가 친척 집에서 눈칫밥을 먹고 있는 동안 친엄마는 한번도 양육비를 보태지 않았다. 게다가 재작년에 죽은 산이 아빠의 생명 보험금마저 이혼한 친엄마가 혼자서 꿀꺽했다. 임종이 가까워질 무렵 큰아빠는 보험금 상속인을 산이 할머니로 지정해야 한다고 산이 아빠에게 충고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산이 아빠는 그 충고를 무시했다. 산이는 자기 아빠를 바보 천치라고 불렀고, 아무도 바보는 못 이긴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두세 달에 한 번 정도 산이를 보던 친엄마는 몇 달 전부터 산이 통장에 쥐꼬리만 한 용돈을 부친 걸로 엄마 몫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학원에 다닐 형편이 아닌데도 산이의 성적은 상위권에 속했다. 특히 수학을 잘했다. 그에 비해 나는 일치감치 수학을 포기했다. 포기하니까 마음은 편했다. 다행히 인구감소로 인해 대학이 학생을 모셔가는 입장이라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나처럼 수학을 포기한 학생도 갈 수 있는 대학이 어디엔가 있을 텐데, 지금부터 미리 걱정해서 뭐하나 싶다. 고1의 내신 반영 비율은 고작 20퍼센트이다. 그리고 수능까지는 아직 시간이 넉넉하다. 사실 나는 운도 기막히게 좋은 편이다. 물론 모든 걸 운에 맡길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거기에 약간의 기대를 건다는 게 딱히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산이 집에는 딱 한 번 가보았다. 말로만 듣던 임대아파트라서 조금 무섭고 불안했는데, 내 생각과 달리 산이네 아파트 단지는 무척 잘 정돈되어 있었다. 산이 집은 우리 집보다 훨씬 좁았지만 티끌 하나 없이 깨끗했다. 산이가 우리 집에 처음 놀러 왔을 때 지었던 놀란 표정이 어쩌면 우리 집이 넓어서가 아니라, 너무 어질러지고 지저분해서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무슨 핑계 댔어? 선생님이 조퇴 증 바로 써 주대?”

산이가 말했다.

“생리통. 근데 거짓말하려고 마음먹었더니 진짜로 생리통 증상이 나타나더라. 배도 막 아프고 머리도 지끈거리고 가슴도 쥐어짜는 것 같고.”

내가 산이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타고났네. 마음만 먹으면 생리하는 여자로 빙의도 하고.”

“홍대 가서 시원한 아이스커피 마실래? 오늘 너무 더운데 스타벅스 어때?”

“거기는싫어.”

“그럼, 우리 미장원에 머리하러 갈래? 더 더워지기 전에 좀 자를까 봐. 근데 넌 어떻게 조퇴 증 받았어?”

“할머니에게 부탁해서 선생님에게 문자 한 통 넣어 달라고 했어.”

“무슨 문자?”

“실은, 지금 친엄마 병원에 가 봐야 해.”

“왜, 어디 아파?”

“아니, 친엄마가 벌써 세 달째 용돈을 안 보내 주고 있어.” 산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빠 보험금 혼자서 다 타먹고 왜 내 용돈은 안 주냐고 친엄마에게 따지러 가겠다니까, 할머니가 담임 선생님에게 문자를 보냈대. 할머니가 뭐라고 썼는지 몰라도 선생님이 걱정까지 해주며 얼른 집에 가 보라고 하더라. 우리 할머니, 진짜 웃기지 않니?”

“너, 회색 노트에는 용돈 밀린 이야기 안 했잖아. 비밀 노트라더니?”

나는 산이의 속도 모르고 스타벅스와 미장원 이야기를 꺼낸 게 미안하면서도, 내게 감춘 비밀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살짝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쪽팔려서 이야기 안 했어. 미안해.” 산이가 내 허리에 간지럼을 태우며 말했다. “아무튼 오늘 친엄마 병원에 찾아가서 깽판 한 번 부려야겠어. 그 돈이 전부 친엄마 돈은 아니잖아. 아빠가 나 줄려고 했던 돈인데 왜 친엄마가 혼자서 꿀꺽하는지 모르겠어. 다달이 용돈 때문에 정말 치사해 죽겠어.”

우리는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산이 친엄마가 일하는 병원에 찾아갔다. 그곳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입원하는 병원이었는데, 특히 손가락 잘린 사람들을 위한 수지접합 수술로 꽤 유명하다고 했다. 산이 친엄마는 입원 병동 수간호사였다. 결혼하고 출산하느라 경력이 단절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시내의 큰 병원에서 수간호사를 하고 있었을 텐데 현실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입원 병동 로비에 있는 대형 시계는 2시 45분을 가리켰다.

“다행이다.” 산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입원 병동 수간호사라서 7시까지 출근하고 3시면 퇴근이래.”

“내가 간호사실에 함께 가 줄까?”

“아니,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환자들 앞에서 난리칠 거야.”

우리는 병원 로비에서 산이 친엄마를 기다렸다. 세상의 아픈 노동자들은 모두 이곳에 모여 있는 것 같았다. 태국인, 베트남인, 인도인, 필리핀인 들은 자기네 말로 이야기하다가, 다른 나라 사람이 말을 걸면 능숙한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했다. 서울에서 10년 넘게 사는 동안 한국말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던 유럽 출신의 어느 무용수와는 무척 대조적이었다. 환자들은 하나같이 손과 팔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나는 그런 마음을 먹지 않으려 했지만 이 광경을 보고 있자니 어쩔 수 없이 울적해졌다.

산이 친엄마는 정확히 3시 5분에 로비로 내려왔다. 산이가 두 팔을 세차게 흔들며 성큼성큼 다가가자 깜짝 놀란 친엄마는 “너……, 여기 왜?” 하고 말을 잇지 못했다. 마치 무슨 큰 비밀이라도 들킨 여자 같았다. 나는 ‘처녀 행세했네, 딱 걸렸어’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산이 친엄마는 산이 손목을 잡아당기며 건물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 했다. 산이가 “내 돈 내놔!” 하고 소리치며 발버둥치자 산이 친엄마는 순식간에 산이를 끌고 사라졌다. 나는 산이 가방까지 들쳐 매고 뛰어나갔다. 입원 병동 주차장 앞에서 산이가 친엄마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나는 그쪽으로 달려가 산이 뒤에 섰다. 두 손을 허리에 대고 당찬 모습으로 산이를 응원했다. 산이 친엄마는 핸드백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산이 계좌로 밀린 용돈 3개월분과 앞으로 줄 용돈 3개월분을 송금했다. 그리고 송금 완료 화면을 산이 코앞에 들이 밀며 “됐지” 하고 말했다. 산이 친엄마는 주차장 안쪽으로 걸어가며 “하여간 하는 짓이 지 아빠랑 똑같다니까” 하고 중얼거렸다.

산이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산이의 손을 잡고 벚나무 그늘 밑 벤치로 데려갔다. 산이는 한바탕 울고 나더니, 침을 한 번 탁 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가자.” 산이의 눈에는 아직 눈물이 맺혀 있었지만 목소리만큼은 우렁찼다.“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나는 산이의 말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산이 친엄마가 보여 준 송금 완료 화면에찍힌 금액은 내 두 달 용돈보다 적었다. 내 과외비까지 합하면 산이의 반년 치 용돈은 내가 한 달에 쓰는 돈에 비해 턱없이 모자랐다.

“그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떡볶이로 할래.”

나는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과장된 말투로 말했다.

산이 친엄마 병원에서 홍대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버스가 오지 않아서 한참을 기다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버스는 초만원이었다. 한 승객이 왜 이렇게 늦게 오냐고 항의하자 버스 기사는 앞차가 접촉 사고를 당했다고 해명했다. 그러자 승객은 그래도 이렇게 늦으면 어떡하느냐고 말도 안 되는 시비를 걸었다. 앞차 사고를 왜 뒤차 버스 기사에게 따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버스가 출발하자 이번에는 에어컨이 왜 이렇게 약하냐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마치 시비가 목적인 사람처럼 구시렁구시렁하며 다른 승객들까지 불쾌하게 만들었다. 지하철 안도 승객들로 미어터지기는 마찬가지였다. 두 다리가 후들거려서 임산부석에라도 앉고 싶었지만 차마 교복을 입고 그럴 수는 없었다. 다음 날 '고딩 임산부'라는 제목의 내 사진이 인터넷에 도배되면 어쩌란 말인가. 신상 한 번 털리면 영혼까지 모두 털려 인생 막장으로 떨어지는 게, 학교 수업 땡땡이치는 일보다 쉬운 세상이다. 아무튼 5교시 수학과 6교시 물리를 빼먹은 대가치고 금요일 오후의 버스와 지하철 안은 너무 끔찍했다.

홍대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엄마에게 산이랑 밥 먹고 들어가겠다고 카톡을 보내려는데 엄마의 선톡이 왔다.

“딸, 엄마 오늘 좀 늦을 것 같아.”

나는 살짝 삐진 투로 답장을 했다.

“왜? 또 혼자 먹어. 아빠도 이번 주는 집에 못 온다고 했잖아.”

아빠는 작년 가을 나주 혁신도시로 인사 발령이 나서 2주에 한 번씩 금요일에만집에 왔다. 그리고 주말 내내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지내다, 일요일 오후가 되면 회사 버스를 타고 나주 혁신도시로 내려갔다. 아빠는 아무리 공짜라도 4시간 넘게 버스를 타는 게 너무 힘들다고 했다. 내가 KTX를 타면 안 되냐고 물었더니, 아빠는 KTX 10만 원에 택시비가 따로 4만 원이나 든단다. 그렇게 한 달에 두 번 서울 집에 오면 28만 원이고, 네 번이면 56만 원이었다. 그래서 집에는 KTX와 택시를 타고 한 달에 두 번만 오고, 교통비의 반을 내 용돈으로 주면 어떠냐고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아빠는 차라리 우리 가족 모두 나주 혁신도시로 이사를 가자고 했다. 결국 그냥 없었던 일로 마무리 지었다. 아빠가 집에 없으니까 서운한 것도 많았지만, 그 대신 부부싸움을 한 달에 두 번만 보면 끝이라서 좋은 점도 있었다.

“엄마가 준 카드 가지고 있지?”

“응.”

“산이도 불러서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먹어.”

“응.”

“딸, 우리 주말에 쇼핑하자. 여름옷 몇 벌 사줄게.”

나는 여름옷이라는 말을 보자 갑자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엄마, 있잖아…….”

“왜? 우리 딸, 갑자기 뭐 하고 싶은 거 생각났어?

“아니야.”

“말해 봐.”

“나 오늘 산이랑 애비로드에서 반바지와 반팔 하나씩 사 입어도 돼?”

‘1’ 표시가 사라졌는데도 엄마의 답장이 없자 살짝 불안했지만, 일 때문에 대화가중단되는 경우가 많아서 일단 참고 기다렸다. 이십 분쯤 있다가 답장이 왔다.

“그럼, 애비로드에서는 한 벌씩만 사. 엄마가 내일 좋은 옷 사줄게. 사랑해. 우리딸.”

나는 이모티콘을 폭탄처럼 우수수 투하하는 걸로 사랑한다는 말을 대신했다.

“신난다. 엄마가 오늘 늦는다네.”

내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여름옷 이야기는 아직 꺼내지 않았다.“홍대에서 좀 놀다가 우리 집으로 가자. 엄마가 너랑 집에서 뭐든 다 시켜 먹으래. 어때?”

산이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좋아.”

산이가 할머니에게 문자를 넣는 동안, 나는 머릿속으로 오늘 스케줄을 짜기 시작했다.

‘홍대에 도착하면 곧장 애비로드에서 시원한 반팔 셔츠와 반바지를 사 입어야지.칙칙한 교복은 가방에 쑤셔놓고 산이와 함께 화려하게 변신하는 거야. 그리고 엽떡 먹으러 가야지. 엽기 떡볶이 한 세트를 시키는 거야. 만두와 야채튀김과 김말이까지 모두 나오는 A세트를 주문해야지. 엽떡 <오리지날>은 너무 매우니까 <덜 매운맛>으로 주문하면 산이도 잘 먹을 거야. 산이는 겉으로 센 척하지만 사실 속은 순해서 매운 걸 잘 못 먹잖아. 오뎅은 별도로 한 그릇 주문해야지. 그러면 2만원이 넘을 텐데 어떡하나. 그래, 산이에게는 이건 우리 엄마가 사는 거라고 하자. 산이가 안 된다고 하면 산이 자존심도 있으니까 카카오 프렌즈 스토어에서 라이언 볼펜을 하나 사달라고 해야지. 그 정도면 산이도 별 부담이 없을 거야. 스타벅스에서 달달한 커피 한 잔 마시면 힐링이 될텐데,왜산이는 싫어하는지모르겠다.혹시커피값이너무비싸서그런건아닐까?그럼엄마가준돈으로가면된다고하고다시한번꾀어봐야지.’

지하철 역사 밖으로 나오자 홍대 거리 역시 사람들로 미어터졌다. 좁은 골목길은사람, 자전거, 오토바이, 승용차, 버스 들이 뒤엉켜 아수라장 같았다. 나는 한적한 우리 동네보다 혼잡스럽고 지저분한 홍대 거리가 더 좋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사복이라도 좀 싸 올 걸.” 내가 슬그머니 옷 이야기를 꺼냈다.“우리 교복 너무 눈에 띈다. 그지?”

“그럼, 애비로드에서 여름옷 하나 사 입을래?”

“야, 너 신기 있는 거 아냐?”

“신기?”

“아까 엄마랑 카톡하다가 애비로드에서 여름옷 사는 거 허락 받았거든. 너랑 나랑 한 벌씩 사 입자. 우리 엄마가 사준대.”

“정말? 그래도 그건…….”

나는 산이가 거절을 하기 전에 팔짱을 끼며 코맹맹이 소리로 말했다.“비싼 거 말고 싼 걸로 사면 되잖아. 오늘 인천 다녀온 기념으로 한 벌씩 사 입자.”

“가람이는 참 착하구나.”

“산아, 울지 마.”

“내가 왜 우리 아빠를 바보 천치라고 부르는 줄 알아?”

“친엄마에게 빼앗긴 보험금 때문에?”

“그 이유도 있지만 아빠가 임종 때 한 말 때문이야.”

“그게 뭔데?”

“사람의 가슴속에는 부처나 예수 같은 마음과 악귀의 마음이 함께 있대. 사람을만날 때 그 사람의 선한 마음과 관계를 맺으래. 그런데 정작 본인은 자신의 악귀로 타인의 악귀만 만나서 평생 지옥 속에서 살았다나. 다 큰 어른이 죽을 때 그걸 깨달았다는 게 바보 같지 않아? 가람이는 이제 고작 열일곱 살이지만 벌써 그걸 다 아는데 말이야. 우리 아빠는 진짜 바보 천치야.”

나는 산이 말에 대답하지 않고 팔짱을 더 세게 조이는 것으로 내 마음을 표현했다. 눈물을 그친 산이와 나는 씩씩하게 애비로드를 향해 걸었다. 바겐세일 기간도 아닌데 매장 안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산이는 체크무늬 반팔 셔츠와 노란 반바지를 골랐는데 가뜩이나 깜찍한 애가 더 깜찍해 보였다. 이 차림으로 홍대 거리를 걸으면 핸드폰 번호 따려는 대학생이 줄을 설 것 같았다. 나는 하얀 라운드 셔츠와 주황색 반바지를 골랐다. 우리는 교복을 가방에 쑤셔 넣고 사복 차림으로 애비로드를 나왔다.

라운드 셔츠 때문에 목이 너무 길어 보이는 것 같아 자꾸 신경이 쓰였는데, 산이가 괜찮다고 하는 바람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엽떡 먹으러 가는 동안 산이에게 핸드폰 번호를 묻는 대학생이 두 명이나 있었다. 아마 라운드 셔츠 때문이겠지만 내 핸드폰 번호를 묻는 대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산이에게 일일이 응대하기 귀찮으니까 처음부터 핸드폰 번호를 명찰로 만들어 가슴에 달고 다니라고 했다. 산이는 그것 참 좋은 방법이라며 나중에 대학생이 되면 꼭 그렇게 하고 다니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어느새 산이의 웃음이 내 얼굴까지 번졌다. 우리는 함께 깔깔거리며 홍대 거리를 활보했다.

* * *

며칠 전부터 가람이가 금요일 오후 수업을 빼먹고 홍대에 놀러가자고 <회색 노트>에 온갖 아양을 떨며 졸랐다. 가람이는 날씨를 탔다. 울적한 비도 내리지 않고, 침울한 바람도 불지 않고,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자 마음이 살랑거려 밖으로 나가고 싶어 했다. 올봄은 미세먼지와 황사가 유난히 심해서 그런지 이른 더위마저 축복 같았다. 가람이는 주말이면 부모님 때문에 자기만의 시간이 없었다. 2주일에 한 번 집에 오는 아빠는 가람이를 호주머니에 넣어 다녔고, 광고 회사의 임원인 엄마는 주중에 못한 엄마 노릇을 토요일과 일요일에 몰아서 했다. 복 받은 년. 5교시 수학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었지만 6교시 물리는 정말, 그래 말을 말자. 변재호 선생님은 며칠 전 수업 시간에 고등학생 56퍼센트는 10억이 생긴다면 죄짓고 감옥 가도 괜찮다는 설문 조사를 인용하며, 마치 우리를 예비 범죄자라도 되는 양 끝없는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자기가 잔소리를 하지 않으면 이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부류는 딱 질색이었다. 왜 어른들은 저 따위 쓰레기 같은 설문조사를 하는지 모르겠다. 10억 때문에 양심을 파는 건 잘못이라며 모범을 보일 생각은 하지 않고, 고등학생인 우리들에게 ‘거 봐, 너희도 별 수 없잖아’ 하고 비아냥거리는 것만 같다. 나이만 먹으면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최악이다. 시간만 지나면 공짜로 먹는 게 나이인데 그게 마치 전쟁터에서 받은 훈장인 양 착각하는 것도 유분수지.

그래, 오늘 오후 수업은 땡땡이치는 걸로 하자. 뭐, 그렇다고 가람이 때문만은 아니다. 실은 친엄마가 세 달째 용돈을 보내주지 않았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문자에도 답장이 없었다. 이번 주는 서랍 속 동전 통에 있는 돈으로 그럭저럭 버텼지만, 다음 주면 완전히 빈털터리였다. 더럽고 치사하지만 친엄마를 찾아가서 따질 수밖에 없었다. 가람이에게 얻어먹는 것도 한두 번이지, 정말 이러다가 영혼마저 증발해 버릴 지경이다. 왜 바보 천치 아빠는 큰아빠 말을 듣지 않고 보험 상속인을 할머니로 바꾸지 않았을까? 양심은 있어 가지고 내 용돈만은 직접 챙기겠다며 큰아빠에게 약속했다지만 모두 다 말뿐이었다. 한번도 제때 부친 적이 없었다. 용돈을 달라고 전화하거나 문자를 넣어야 보내 줬다. 바빠서라는 핑계만큼 허울 좋은 말이 어디 있는가.

알바라도 시작할까? 아니 절대로 그럴 수 없다. 용돈 몇 푼에 피 같은 시간을 버리고 싶지는 않다. 나는 대학에 갈 거다. 그것도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 학종이나 내신으로 승부를 내는 것보다 수능에 올인하는 게 우리 집 형편에도 맞고 내 기질에도 맞다. 남들에게 살살거리느니 차라리 죽어 버리고 말지. 이제 2년 반만 참고 견디면 된다. 대학에 올 장학생으로 입학해서 보란 듯이 내 갈 길을 갈 테다. 큰아빠, 큰엄마, 사촌언니에게 대학입학통지서를 보여 주면 다들 깜짝 놀라겠지. 사촌언니는 어른들 앞에서는 내게 친한 척했지만 뒤에서는 온갖 못된 짓을 다했다. 결국 언니 등쌀을 견딜 수 없었던 나는 큰집에서 나와 할머니 집으로 옮겼다.

사촌언니는 올해 대학에 들어갔는데 몇 번을 들어도 학교 이름이 외어지지 않는대학이었다. 어차피 몇 년 뒤면 신입생을 못 받아 폐교될 게 뻔한 그런 대학에 왜 들어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만약 내가 마음에 찍어 둔 대학에 들어가면 모두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말 테지. 옷 사이즈가 투엑스라지인 큰고모에게는 절대로 합격 사실을 알리지 말아야겠다. 진짜로 풍 맞는 수가 있으니까. 큰고모는 이태 전에 살짝 풍이 스쳐가기는 했다. 게임 덕후인 사촌오빠가 게임 아이템 산다고 몇 백만 원을 날린 것도 모자라, 인터넷 도박 사이트에서 천만 원도 넘게 잃었던 것이다. 도대체 천만 원이면 얼마나 큰돈일까?

사촌언니와 사촌오빠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바보였지만 그래도 사촌언니가 살짝 더 바보였다. 왜냐하면 사촌오빠는 자기가 바보인 줄 알았는데 사촌언니는 그것조차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 둘은 어찌나 앙숙이었는지 만나기만 하면 서로 헐뜯었는데, 안타깝게도 이 둘이 내뱉는 수많은 허튼소리 중에서 그게 유일한 진실이었다.

오후 수업을 땡땡이치기로 마음먹고 담임 선생님에게 조퇴 증을 받아 학교 앞 사거리에서 가람이를 기다렸다. 10분쯤 지나서 가람이가 보이길래 손을 들어 크게 흔들었더니 가람이는 손을 살짝 들었다 내리는 시늉만 했다. 하여간 누가 내숭덩어리 아니랄까 봐. 근데 내게 다가오더니 팔짱을 꽉 끼는 게 귀여웠다. 가람이는 나를 보자마자 홍대 스타벅스에 가자느니 미장원에 가자느니 하며 신이 나서 떠들었다. 내 형편을 아는 가람이는 항상 내 것까지 계산을 했다. 가람이가 해마다 모으는 스타벅스 다이어리가 꼭 부럽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나도 그런 다이어리 하나쯤 가지게 되면 가람이에게 “너, 이거 가져” 하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도 나에겐 그 어떤 다이어리보다 <회색 노트>가 훨씬 더 소중했다. 나는 <회색 노트>에 87퍼센트쯤 진실을 썼다. 만약 그 노트가 없었다면 미쳐버렸을지 모른다. 중3 가을부터 가람이랑 한 줄씩 쓰기 시작한 게 어느새 빈 페이지가 남지 않을 만큼 사연으로 가득 찼다. 가람이는 내가 <회색 노트>에 숨기는 게 많다며 자꾸 핀잔을 주지만 그건 가람이도 마찬가지다. 작년 여름 주차장에서 가람이 엄마가……. 아니, 그건 말하지 않을 테다. 가람이가 노트에 적지 않은 내용을 떠벌리고 싶지는 않다. 아무튼 가람이도 <회색 노트>에 87퍼센트 정도만 진실을 적고 있다. 나머지는 드러내지 않는 게 어쩌면 더 좋을지 모른다. 바보 천치 아빠와 친엄마 사이만 봐도 진실보다 더 무서운 건 없다. 적당한 가식 때문에 사람들은 거리를 유지하며 편하게 사는지도 모르겠다. 가식이 없다면 체면도 없을 테고, 그러면 사람들 사이는 진공 상태가 되어 아무런 저항 없이 상처를 줄 게 뻔했다. 가람이와 내 사이도 13퍼센트의 여백 때문에 서로에게 그늘 지우지 않고 떳떳하다. 친엄마가 근무하는 인천의 병원까지 가람이가 따라온다며 고집을 피워서 조금 놀랐다. 처음에는 나 혼자 다녀올 테니 홍대 스타벅스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자 가람이가 토라져서 도저히 함께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멀고 먼 인천까지 원정을 떠났다. 이번에 친엄마를 보면 거의 6개월만이었다. 친엄마는 내가 아빠를 닮았다며 싫어했다. 나도 그런 친엄마가 싫었다. 친엄마가 나를 싫어하는 명분은 약했지만 내가 그러는 이유는 떳떳하고 정당했다. 나를 싫어하는 인간들에게 잘 대하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다. 병원에서 죽어가던 아빠는 착한 심성이니 악귀니 하며 부처나 예수라도 된 것처럼 떠들어 댔지만, 진짜로 중요한 것은 다 놓치고 있었다. 아빠랑 잠시, 친엄마랑 잠시, 큰아빠랑 잠시, 큰고모랑 잠시 그리고 할머니랑 잠시 살면서 내가 깨우친 것이 하나 있다면, 오는 말이 고우면 가는 말이 곱다는 절대불변의 진리였다. 한바탕 난리를 쳐서 용돈을 타내면 뒤도 안 돌아보고 돌아올 테다. 울지도 않을 거다.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 가람이는 음악을 듣는다며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가람이가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하면 얼마나 좋을까. 고1이야 내신 반영 비율이 20퍼센트밖에 안 된다지만, 가람이를 보면 고1이 아니라 중4처럼 보일 때가 많다. 고1 첫 모의고사 등수가 그대로 수능까지 간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너무 널널하다. 대학에 입학해서도 친하게 지내려면 엇비슷한 대학에 들어가는 게 더 좋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가람이가 가장 좋다. 가람이는 마른 건초더미처럼 푸석푸석한 나와는 많이 달랐다. 사람은 대부분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데 내 몸과 마음은 몇 년째 가뭄으로 바짝 가물었다. 만약 강 같은 가람이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땠을지 상상도 하기 싫다.

1시간 30분이 걸려 친엄마가 일하는 병원에 도착했다. 지금은 입원 병동 수간호사지만 전에는 외래 병동에서 근무했다. 결혼 전에는 수술방에서 일 잘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단다. 친엄마는 수술실을 꼭 수술방이라고 불렀다. 친엄마는 가벼운 교통사고로 입원한 아빠를 병원에서 처음 만났다. 아직도 그 일만 생각하면 울화가 터지는지 “나이롱환자와 사랑에 빠진 내가 미친년이지”를 연발했다. 마흔 셋에 죽은 아빠는 친척들 말에 따르면 사기꾼 기질이 다분한 무능력자였다. 친엄마 친정 돈까지 꽤 많이 끌어다 썼다고 한다.

우리 집안에서 그나마 이성적이고 중립적인 큰엄마 말에 따르면, 친엄마가 아빠생명 보험금 타먹은 걸 가지고 너무 욕할 필요는 없단다. 어쩌면 아빠는 친엄마에게 진 빚을 보험금으로 갈음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큰집에 살 때 큰엄마는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도록 했는데 나는 그게 딱히 싫지 않았다. 큰엄마는 실제 엄마 노릇을 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고, 그 덕분에 나는 나쁜 길로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 구닥다리인 할머니보다, 그래도 어엿한 가족 분위기를 풍기는 큰집이 좋을 때도 많았다. 큰엄마는 내게 있어서 마지막 비상구였다. 진짜 비빌 구석 하나 없을 때면 큰엄마에게 전화했다. 그러면 큰엄마는 이유를 묻지 않고 필요한 돈을 보내주었다. 물론 큰돈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딱 세 번 비밀 용돈을 받은 적이 있었다.

3시 5분, 친엄마가 로비로 내려왔다. 나는 숨을 크게 한 번 들이마시고 친엄마에게 달려들었지만, 심장이 터질 듯이 빠르게 뛰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친엄마 역시 놀랐는지 말을 더듬거리며 나를 건물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 했다. 나는 발버둥 치며 “내 돈 내놔!”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친엄마는 순식간에 나를 끌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내 돈 내놓으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때만큼은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이제 이판사판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가람이가 옆에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이보다 더한 꼴도 얼마나 많이 보아 왔던가. 그렇지만 나는 나쁜 애가 되지 않았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이 나의 처지를 동정하는 게 싫어서 아무 티를 내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언제나 문제아들에게 시간을 쏟느라 평범한 애들에게 관심을 가져 주지 않았다. 나는 관심 따위는 필요 없는 평범한 아이가 되고 싶었고 그래서 누구보다 더 노력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은 모든 걸 폭발시키지 않으면 영원히 패배자가 될 것 같았다. 나는 고작 열일곱 살이었지만 화를 내야 할 때 화를 참으면 나중에 몇 배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친엄마는 주차장까지 나를 끌고 가더니 핸드백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밀린 것까지 포함해서 6개월분 용돈을 보내 주었다. 결국 내가 승리했다. 나는 울지도 않았다. 그런데 친엄마가 주차장 안쪽으로 걸어가며 “하여간 하는 짓이 지 아빠랑 똑같다니까” 하고 말하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주먹을 꼭 쥐고 입 밖으로 울음소리를 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가람이가 내 손을 잡아 주자 더 이상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한바탕 울고 나니 온몸에서 기운이 빠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삶에 대한 투지가 솟아올랐다. 나는 눈물을 닦으며 살면서 가망 없는 일도 벌어지고 원하는 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을지라도 결코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온힘을 다해 침을 한 번 탁 뱉고 벤치에서 일어났다.

홍대로 가는 버스와 지하철 안에서 가람이는 무슨 신나는 일이라도 생겼는지 카톡을 하며 싱글거렸다. 땡볕 아래서 이십 분 넘게 버스를 기다려야 했고 지하철도 만원이었지만 지친 내색 하나 비치지 않아서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엄마에게 저녁 시간을 나와 함께 보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며 가람이가 즐거워하자, 오늘만큼은 가람이가 원하는 대로 내버려두자고 마음먹었다.

‘가람이는 오랜만에 홍대에 나왔다며 분명히 애비로드에 옷 사러 가자고 할 텐데,이번에는 내가 먼저 선수를 쳐야지. 작년에 입던 여름옷은 이제 작아서 맞지 않으니, 어차피 나도 여름옷 하나 장만할 때가 되었잖아. 엽떡에 가면 오늘은 <덜 매운맛> 말고 가람이가 좋아하는 <오리지날>로 주문할 테다. 좀 맵긴 한데 양념을 긁어내고 먹으면 못 먹을 정도는 아니니까. 엽떡은 내가 사겠다고 했지만 가람이는 엄마 핑계를 대며 자기가 계산하려 들 게 뻔했다. 그럼 그건 가람이가 사게 내버려두고 카카오 프렌즈 스토어에서 우리들의 두 번째 <회색 노트>를 한 권 선물해야지. 아마 이건 가람이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거야. 그리고 가람이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벅스 힐링이라는 것도 함께 해야지.’

지하철 안에서 이런 생각을 하며 행복감에 젖어 있는데 어느새 홍대역에 도착했다. 역시 예상대로 지하철 밖으로 나오자 가람이는 은근슬쩍 사복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계획대로 애비로드에 여름옷을 사러 가자고 선수를 쳤다. 그러자 가람이는 이미 엄마에게 승낙을 받았다며 내 여름옷도 사자고 했다. 콧등이 시큰거리며 눈물이 핑 돌았다. 가람이는 팔짱을 끼면서 인천 원정 기념이라며 내 자존심까지 배려했다. 나는 갑자기 바보 천치 아빠 생각이 나서 부처나 예수의 마음과 악귀에 대한 아빠의 개똥철학을 이야기해 주었다. 가람이는 말없이 팔짱을 더 세게 조였는데, 이건 가람이가 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때 보내는 신호였다.

애비로드에서 멋진 여름옷을 한 벌씩 사 입은 가람이와 나는 엽떡을 공략하러 홍대 거리를 활보했다. 금요일 오후라서 거리는 인산인해였다. 사람들은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전진하고 후퇴했다.

“가람아, 신발 끈 풀렸어.”

나는 쭈그리고 앉아 가람이의 운동화 끈을 묶어 주었다.

“가람아, 너 생리…….”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가람이가 소리쳤다.

“와! 다행이다.”

가람이와 나는 오늘 가짜 생리를 핑계로 땡땡이친 게 계속 마음에 걸렸는데, 이제야 떳떳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고 아주 많이는 아니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