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장마가 끝나고 있었다. 우리는 이제 막 사랑을 나눈 터라 침대에 누워 호흡을 고르며 빗소리가 잦아드는 것을 듣고 있다. 빗방울이 에어컨 실외기에 떨어진다. “저 소리만 들으면 칼국수 생각이 나.” 아내가 말한다. “왜?” 내가 묻는다. “양철 지붕에 빗방울이 떨어지면 엄마는 국수를 삶았어. 그리고 마루에 둘러앉아 칼국수를 먹었지. 모시조개 국물에 애호박을 채 썰어 넣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어.” “우리 엄마는 파전을 지졌는데. 빗소리가 들리면 쪽파를 씻고 밀가루를 풀어서 반죽을 했어. 가끔 누나에게 시장에 가서 조갯살을 사 오라고 했어. 누나는 심부름을 싫어했어. 그래서 결국 내가 조갯살을 사러 가곤 했지. 정말 옛날이야기네.” 아내는 내게 팔베개를 달라는 시늉을 한다. 나는 왼팔을 뻗는다. 아내는 얼굴을 기대고 내 가슴을 쓰다듬는다. 나는 아내의 이 부드러운 손길을 사랑한다. “우리 나가서 칼국수 먹을까?” 내가 묻는다. “응. 하지만 조금만 더 누웠다가 나가자.” 나는 가만히 천정을 바라본다. 음식을 연상시키는 다른 소리가 또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하지만 그게 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숙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내와 나는 평소에 술을 잘 마시지 않지만 어제는 좀 과음을 했다. 데킬라 반병에 와인 두 병을 마셨으니 우리는 둘 다 상당히 취했다. 어제가 무슨 특별한 기념일은 아니었다. 며칠 전에 아내는 내게 자신의 첫사랑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아내는 그 남자 이름이 맹요철이라고 했다. 나는 오목할 요(凹)와 볼록할 철(凸)을 이름에 넣다니 그 양반 아버지도 참 재미난 분이네, 하고 아내를 놀렸다. 아내는 요자는 한자로 무슨 자인지 모르지만 철은 밝을 철(哲)이라며 내게 눈을 흘겼다. 나는 웃음을 참으며 잘만 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찾을 수 있겠는데, 하고 말했다. 아내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내는 중학교 3학년 때, 그러니까 지금부터 무려 이십 년도 더 지난 그 옛날 첫사랑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첫사랑의 배경은 당연히 아내의 고향인 속초다. 아내의 집은 속초 중앙시장 근처에 있었다. 당시 처가는 그리 잘사는 집도 못사는 집도 아니었지만 남는 방이 두어 개 있어서 세를 놓았다. 아마 장모님 용돈벌이가 아니었을까 하고 추측해 본다. 대개는 뱃일을 하는 사람들이 보름이나 한 달 정도 썼는데, 그해 여름에는 서울에서 내려 온 대학생이 두 달 동안 세를 들었다. 바로 그가 아내의 첫사랑인 맹요철 씨다. 첫눈에 반해서 사랑이 불타오른 것은 물론 아니라고 했다. 아무래도 학생이 셋방에 있다 보니 장모님은 신경이 쓰였을 게다. 그래서 점심 때 국수라도 삶으면 한 그릇 담아서 대학생이 묵는 셋방 툇마루에 가져다주라고 아내에게 심부름도 시켰겠지. 혹은 저녁때가 되면 밥 먹으러 오라고 부르기도 하고 말이다. 옛날에는 그런 게 당연하던 시절이었으니 별로 이상할 것도 없다.
아내는 그 대학생을 오빠라고 부르지 않고 요철이 아저씨라고 불렀다. 나 같으면 상당히 섭섭했을 텐데 요철이 아저씨는 그게 별 상관이 없었나 보다. 아무튼 한번은 요철이 아저씨가 아내를 데리고 속초 바닷가에서 해삼이랑 멍게를 사줬는데, 아내는 지금도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그게 사실일까? 해삼이랑 멍게가 그때는 모두 자연산이었으니 요즘에 먹는 양식이랑은 확연히 달랐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더구나 맛에 관해서는 누구나 잊지 못하는 추억이 하나쯤 있을 테니 말이다. 요철이 아저씨는 낮에는 낚싯대를 들고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내고, 밤에는 늦도록 책을 읽거나 하모니카를 불곤 했다. 아내 말로는 어찌나 하모니카 소리가 구슬픈지 장인이 한 곡 더 연주해 보게, 하고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수박 이야기를 빠트릴 뻔 했다. 요철이 아저씨가 하루는 저녁에 들어오며 장모님께 수박 한 통을 드렸다. 만날 저녁식사 얻어먹는 게 마음에 걸렸는지 커다란 수박을 사왔던 것 같다. 마당 평상에 둘러앉아 수박을 먹으며 장인이 무슨 일로 속초에 내려왔냐고 물었을 때, 그는 그냥 쉬러 왔다고만 대답했다고 한다. 그날 밤 아내는 요철이 아저씨가 서울에서 실연을 당해 그 슬픔을 이기고자 속초에 내려왔다는 공상을 했단다. 그리고 요철이 아저씨의 마음을 상하게 한 그 여자가 밉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다. 중학교 3학년 소녀가 품을 만한 감정이 아닌가? 나는 아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대목에서 그녀에게 한없는 사랑을 느꼈다.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큰 태풍이 왔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비가 어찌나 오는지 우산도 소용없었다. 낚시를 나간 요철이 아저씨가 걱정이 되어 아내는 우산을 챙겨 아저씨를 찾아 나섰다. 나중에 장모님께 크게 야단을 맞기는 했지만 사랑에 빠진 열여섯 살 소녀에게 태풍 따위가 무슨 대수였겠는가? 아내가 요철이 아저씨의 낚시하는 곳에 갔을 때에는 이미 아저씨는 거기에 없었고 출입도 통제된 상태였다. 아내는 비를 맞으며 훌쩍훌쩍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요철이 아저씨 걱정에 가슴을 졸이고 있는데 아저씨는 해질 무렵 아무렇지도 않게 하얀 비옷을 입은 채 돌아왔다. 어찌나 야속했는지 아내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단다. 아내가 이 이야기를 할 때 나는 한 마디 안 할 수 없었다. “이거 질투 나는 걸” 하고 말이다. 아내는 요철이 아저씨가 무사히 돌아와 주었기 때문에 모든 걸 용서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저씨가 아내를 가만히 부르더니 노란 비옷을 하나 내밀더라는 것이다. 모자가 달린 작고 귀여운 노란 비옷 말이다. 상상해 보라. 얼마나 기뻤겠는가? 정말 질투가 날 정도다. 아무튼 사춘기 소녀는 그 비옷을 애지중지하며 비가 올 때면 언제나 입었다. 태풍이 끝나는 마지막 날 요철이 아저씨는 급히 서울로 올라갔다. 무슨 사정인지는 말하지 않고 짐을 챙겨 간단하게 인사만 하고 서둘러 떠났다고 한다. 노란 비옷은 다음 번 태풍 때 찢어졌다. 아내의 동생이 몰래 입고 나갔다가 여기저기 찢어진 채 돌아왔다. 나는 아내가 처제와 가끔 나누던 노란 비옷의 이야기가 무엇인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처제는 아내에게 심하게 혼이 났다. 처제야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으니 그 노란 비옷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 사춘기 소녀는 그 찢어진 노란 비옷을 들고 밤새 눈물을 적셨다. 요철이 아저씨는 그 뒤로 연락이 없었다고 한다. 여름 한때의 소나기 같은 아내의 첫사랑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났을 때, 내가 다시 “요철이 아저씨 찾아 줄까?” 하고 물었다. 아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맹요철 씨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인터넷에 들어가 삼십분 만에 그의 전화번호와 주소까지 알아냈다. 맹 씨 성에 요철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 명이나 있겠는가? 이런 건 나에게 일도 아니다. 내가 아내에게 맹요철 씨의 전화번호를 건네자 아내는 내게 대신 전화를 걸어달라고 했다. 나는 맹요철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그가 전화를 받자 간단히 내 소개를 하고 아내에게 수화기를 넘겨주었다. 아내는 수화기에 대고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 속초 바닷가 소녀 박정화라고 하는데요. 혹시 기억하시겠어요?” 바닷가 소녀 박정화,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작은 방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아내는 요철이 아저씨와 십분 가량 통화를 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고 내게 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결혼했대. 애도 있고. 서산에 산대.” 나는 아내를 안아주었다. 설마 요철 씨가 미혼이라면 나를 떠나 그 사람에게 간다는 건 아니겠지. 나는 아내의 등을 다독였다. 그날 저녁 우리는 데킬라와 와인을 마시며 옛날 추억들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술에 취해서 기억이 어렴풋하지만 아내는 내게 꽃게 철이 되면 서산에 한번 다녀오자는 말을 했던 것 같다.
“이제 칼국수 먹으러 갈까?” 아내가 말한다. “응. 파전도.” 내가 조용히 대답한다. 아내는 침대에서 일어나 샤워를 하러 욕실로 들어간다. 시원한 물줄기 소리가 침대까지 들린다. 나는 생각한다. 그리운 희정이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고 말이다.
일요일 오후의 햇살이 침실로 파고든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