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진

1

“만약 내 이름이 문자가 아니었다면 나는 더 멋진 인생을 살았을 거야.”

벚꽃이 지고 가로수에 녹음이 물들기 시작할 무렵 내 아파트에 놀러온 문자가 말했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아파트 거실 깊숙이 파고들었다.

“개명 신청한다는 건 어떻게 됐어?”

요즘 문자는 가정법원에 개명 신청을 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다.

“해야지. 곧 할 거야.”

“생각해 둔 이름은 있어?”

“수빈이 어때?”

“좀 어려 보이지 않니?”

“그런가? 그럼 미수나 수영은 어때?”

“이름에 수자가 들어가는 게 좋아?”

“그러고 보니 그러네.” 문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근데 이름을 바꾸면 내 인생이 더 나아질까?”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개명이 삶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을까? 물론 변화는 생기겠지만 그게 더 좋은 것일지 아닐지 어떻게 알 수 있다는 말인가. 문자가 대답을 기다리는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그럼. 더 좋아질 거야.”

나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다. 나는 요즘 다시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솔직하게 말하여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지? 분명히 그럴 거야.”

내가 문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문자가 분별력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할 것은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리고 타인들에게 굳이 잘 보이려고 꾸미는 법이 없었다. 나는 직장에서 문자를 처음 보았다. 하지만 이 말은 엄밀히 따지면 틀린 말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문자와 나는 초등학교 동창이었고 대학도 같은 곳을 졸업했다. 서로를 알지 못했을 뿐이었다. 어쩌면 초등학교 운동회 때나 대학 축제 때 한두 번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일 년 만에 가까스로 한 대기업 계열사의 홍보실 막내로 취직했다. 문자는 우리 회사의 역사를 책으로 엮는 일을 담당하고 있었다. 미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그래픽디자이너였다. 우리 회사 소속이 아니라 홍보대행사와 거래하는 출판사에 다녔다. 그러니까 우리는 계약서상 갑과 병의 관계였다. 말이 갑이지 당시 홍보실 막내였던 나에게 잔심부름 말고 다른 일은 거의 없었다. 모든 게 미숙해서 하루도 빠짐없이 야단을 맞고 무수히 많은 담배를 피우면서 속을 끓이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디자이너 삼 년차인 문자는 달랐다. 디자인 실력도 좋았지만 일이 돌아가는 방식이나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구조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실무진들은 문자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고 문자가 밀던 안들은 무난하게 최종의사결정권자의 승인을 얻어냈다. 홍보실 막내였던 내게 선배들이 박문자에게 많이 배우라고 할 정도였다.

한번은 회사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며 화를 삭이는데 문자가 내게 다가왔다. 우리는 말없이 담배를 피웠다. 그날은 유독 황사가 심해서 시야가 흐릿했다. 어렵사리 들어온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들, 내가 과연 이곳에서 제몫을 해낼지에 대한 의구심들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나는 담배를 한 대 더 피웠다. 퇴근 후 우리는 회사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우리가 초등학교와 대학교 동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의 우정은 시작되었다.

사사 프로젝트가 끝나고 문자는 한 대형 출판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 뒤로도 몇 번 더 이직을 했다. 그리고 이태 전에는 회사를 완전히 떠나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출판계에서 나름 이름을 얻어 일감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우리는 자주는 아니었지만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전화를 주고받았고, 두어 달에 한 번 정도 함께 술자리를 가졌다. 상대방이 먼저 연락하기를 기다리는 자존심을 우리는 세우지 않았다.

문자는 아직 미혼이었고 나는 칠 년 전 이혼한 후 재혼하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여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그 누구와도 일상을 공유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상대방이 한 발짝 다가오면 나는 두 발짝 뒤로 물러났다. 나는 혼자서 지내는 게 더 이상 불편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회사 일도 그럭저럭 잘 해내고 있다. 지금은 홍보실에서 팀장으로 있지만 언젠가는 실장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예전의 어수룩한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일을 진정으로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문자는 삼십 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외모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빼어난 미인은 아니었지만 바짝 마른 몸에 적당히 나잇살이 붙으니 오히려 지적인 분위기가 살아났다.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빗어 넘기는 모습이 썩 멋있기까지 했다. 십 년을 사귀어도 어제 만난 것처럼 생기 있었다. 그러면서도 늘 편안했다. 나는 그런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몇 년 전 문자가 결혼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 나는 진심으로 응원해 주었다. 내가 “그 남자가 널 웃게 만들어?” 하고 물었을 때, 문자가 고개를 가로저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조금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내 결혼 생활이 그렇게 일찍 파탄이 난 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서로에게 웃음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돈이 없으면 사랑도 식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랑이 없어도 돈이 있으면 결혼 생활은 그럭저럭 유지된다. 그런데 결혼 생활을 건강하게 지속하려면 웃음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를 혹은 그녀를 떠올렸을 때 입가에 미소가 번지지 않는다면 결론은 뻔하다.

문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남자와 결혼하지 않았다. 만약 결혼했다면 우리의 우정도 끝이 났을 것이다. 물론 문자에게 성적인 매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문자와 자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왠지 자 버리면 친구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섹스의 부재는 나에게 편안함을 제공해 주었다. 나는 문자에게 잘 보이려고 과장을 하거나 허세를 부릴 필요가 없었다. 사실 문자가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그런 물음을 던진 적이 없다. 어쩌면 나도 이제 분별력이란 단어의 뜻 정도는 알 나이가 된 것 같다.

“나는 내 이름 때문에 소심하게 살아온 것 같아.” 문자가 소파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제 슬슬 나갈까?”

2

문자와 나는 아파트 근처에 새로 생긴 프렌치 레스토랑으로 갔다. 문자의 아파트는 우리 집에서 세 블록 떨어져 있다. 문자는 와인에 어린 닭을 넣고 졸인 꼬꼬뱅을 주문했고, 나는 소시지와 감자를 함께 찐 알자스 식 요리를 시켰다. 우리는 값이 비싸지 않은 보르도 와인도 한 병 곁들였다.

“아버지가 내 앞으로 작은 오피스텔을 하나 넘겨주시겠대. 오늘 아침 큰오빠에게 전화가 왔어.”

“어떻게 할 건데?”

문자는 잠시 말이 없었다. 요즘 아버지와 거의 대화를 하지 않고 지내며, 언제부터인지 아버지 댁에도 발걸음을 끊었다. 아버지의 재산이 어떻게 축적되었는지 알고 난 뒤 한 푼도 물려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군 장성 출신의 로비스트인 아버지가 노발대발했으리라는 건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오빠와 언니들이 화해를 주선하려고 했지만 문자는 언제나 완강히 거부했다.

“뭘 어떡해? 필요 없다고 했지. 부정한 돈이야. 너도 뉴스에서 봤을 거 아냐.”

“그럼 됐네.”

“나는 어머니를 닮아서 다행이야. 만약 오빠나 언니들처럼 친가 쪽을 닮았으면 너랑 친구가 되지 못했을 거야.”

“왜?”

“몰라.” 문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알아. 그랬을 거라는 걸.”

그때 내 휴대폰 벨이 울렸다. 얼마 전 회사에 사직서를 낸 홍보실의 김민서 과장이었다. 나는 전화를 받지 않고 휴대폰을 도로 재킷 안주머니에 넣었다.

“누군데? 왜 안 받아?”

“회사.”

“회사? 토요일 밤인데 혹시 급한 일 아냐?”

“급한 건 아닌데, 좀 귀찮은 일이야.”

“무슨 일인데?”

나는 잠시 그 사건에 대해 문자에게 털어 놓을지 말지 망설인다.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문자는 호기심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지난 삼월에 일본으로 출장 간 거 알지?”

“지진 났을 때?”

“그때 안 좋은 일이 있었어.”

“다친 사람 없이 모두 귀국했다고 하지 않았어?”

“우리는 모두 도쿄에 있었으니 다친 사람은 없었지.”

“그런데?”

나는 문자에게 이야기를 더 할지 말지 다시 망설인다.

지난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일본 도호쿠 지역에서 큰 지진이 일어났을 때 나는 도쿄 신주쿠에 있었다. 사흘 전 업무 차 홍보실 박진우 상무와 함께 오사카로 출장을 왔었다. 그리고 그날 아침 신칸센을 타고 도쿄에 도착했다. 우리보다 이틀 먼저 도쿄에 도착한 김민서 과장은 오후에 있을 회의 준비를 모두 마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도쿄 지사 간부들과 점심 식사를 하고 두 시부터 홍보 전략 회의를 진행했다. 한참 열을 올리며 회의를 하는데 누군가 회의 테이블을 발로 차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누군가의 실수라고 생각했는데 두 번 세 번 테이블이 들썩이자 박진우 상무가 갑자기 누가 회의 테이블을 발로 차느냐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회의 테이블을 발로 차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진이었다. 박진우 상무나 나는 이제껏 한 번도 지진을 경험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회의 테이블이 살짝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을 때 그것이 지진 때문이라는 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나는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회의실 구석에 있던 생수통 안의 물이 출렁거렸다.

맨 먼저 바닥에 떨어진 것은 회의 테이블 귀퉁이에 놓여 있던 모니터 리모컨이었다. 리모컨은 바닥에 떨어지면서 건전지와 분리되었다. 건전지가 구르며 회의실 벽에 부딪히기 전에 50인치 대형 모니터가 회의 테이블 안쪽으로 맥없이 넘어졌다. 나는 몸이 뻣뻣하게 굳은 채 회의실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신주쿠의 고층 빌딩들이 좌우로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진동 때문에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다. 회의실 벽에 걸려 있던 회사의 경영이념과 사훈(社訓) 액자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액자의 유리 파편들이 어지럽게 흩어졌다. 다시 회의 테이블이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며 들썩였다. 회의 테이블 위에 있던 대형 모니터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박살이 났다. 회의실 바닥은 난장판이 되었다. 금방이라도 건물이 무너져 내릴 듯 흔들렸다. 바닥에 떨어진 벽걸이 시계는 2시 48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끼익 하고 날카로운 소리가 나며 회의실 문이 뒤틀렸다. 지진이 얼마나 지속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일 분, 이 분, 아니면 십 분. 회의실 밖에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 왔다. 그리고 무엇인가 넘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건물이 무너져 콘크리트 잔해 더미 속에 묻히는 게 아닌지 두려웠다. 만약 건물이 무너진다면 고통 없이 즉사하길 빌었다. 죽음이 이렇게 가까이 있다는 것을 나는 불과 몇 분 전까지도 전혀 알지 못했다. 나는 슈트 상의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서 첫 번째로 떠오른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다. 죽기 전에 오랫동안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그 말을 하지 못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지진이 멈췄다.

회의실 벽에 나뭇잎처럼 수많은 잔금이 가 있었다. 17층 사무실에서 건물 로비까지 걸어 내려가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각 층의 사람들이 모두 비상계단으로 몰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앞사람을 따라서 걸어 내려갔다. 계단의 비상등은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휴대폰 불빛에 의지하여 조심스레 걸을 수밖에 없었다.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을 때 맨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뿌리 채 뽑혀 쓰러진 전신주였다.

“그런데? 안 좋은 일이라는 게 뭔데?”

“나중에 이야기하면 안 될까? 지금은 내키지 않네.”

우리는 잠시 말이 없었다. 문자도 딴생각을 하는지 와인 잔을 만지작거리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젊은 부부가 유모차를 끌며 지나가고 있었고, 두어 발짝 뒤에서는 노부부가 그들을 천천히 따라가고 있었다. 자전거를 탄 소년이 그 옆을 빠르게 지나갔다.

“오래전에 이런 일이 있었어.”

문자는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카투사로 복무할 때 한번은 우리 부대 인사계가 회식을 하자고 했어. 인사계랑 친한 고참병들이나 회식을 좋아하지, 나 같은 일등병에게 그게 뭐가 좋겠어. 그 양반들 뒤치다꺼리나 해야 하는데.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 가자면 가야지. 아무튼 토요일 근무를 마치고 우리는 모두 외박증 받아서 노량진시장에 있는 횟집으로 갔어.”

“그래서?”

“당시 우리 행정반에 호식이라는 이등병이 있었어. 술을 전혀 하지 못하는 친구였지. 그런데 그날 술을 못 마신다고 하면 될 걸, 땡땡 얼어가지고 주는 대로 모두 받아 마신 거야. 그러다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켰어. 나는 정말 호식이가 죽는 줄 알았어.”

“다행히 죽지 않았구나.”

“물론 죽지 않았지. 마신 술을 모두 토해 내게 만들고 손발을 주무르며 한바탕 난리를 쳤어. 삼십 분쯤 지나니 조금 괜찮아졌어. 그래서 인사계가 김 일병과 내게 호식이를 집까지 데려다 주라고 했어. 호식이네는 영등포역 근처에서 식당을 하고 있었거든.”

“걔 부모님이 놀라셨겠네.”

“응. 놀라시더라고. 호식이 어머니가 아들이 술을 마셨냐고 묻더군. 그런데 나는 별로 많이 마시지 않았다고 대답했어. 그러자 김 일병이 그게 아니라며, 호식이는 술을 많이 마셨고 그것 때문에 발작을 일으켰다고 내 말을 바로잡았어. 그때 내가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 모르겠어. 사실대로 말을 하지 않고 말이야.”

나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문자야, 나는 그날 이후 난처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어. 그런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더라.”

웨이터가 우리 테이블의 식기를 치우느라 잠시 대화가 끊어졌다.

“그리고?”

“이게 끝이야. 김 일병이랑 나는 호식이네 식당에서 나왔어. 그리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지.”

“가끔 김 일병이 떠오를 때가 있어. 아마 그 친구는 잘 살 거야.”

다시 내 휴대폰 벨이 울렸다. 문자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휴대폰의 전원을 껐다. 그리고 잠시 후 휴대폰에 전원을 넣으며 문자에게 전화를 걸고 오겠다고 말했다. 나는 레스토랑 밖으로 나가서 김민서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민서 과장과 통화를 끝내고 나는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문자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지 왼손으로 턱을 괴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그건 내가 할 말이잖아.”

“아까 그 사람이야. 일본에 함께 출장 갔던 김민서 과장. 내일 만나기로 했어. 그런데 넌 왜 이렇게 심각해?”

“별거 아니야.”

“근데 표정이 왜 그래?”

“만약 내가 개명을 하면 가족들과 영영 떨어져 버릴 것 같아. 유일하게 남은 끈이 문자라는 내 이름이잖아.”

문자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잔에 남은 와인을 모두 비웠다.

“그만 나갈까? 집에 좋은 위스키가 한 병 있는데 어때?” 문자가 말했다.

3

거리에 어둠이 내렸다. 레스토랑에서 문자네 집까지는 걸어서 채 십 분이 걸리지 않는다. 새로 조성된 아파트 단지라서 그런지 나무들의 키가 크지 않았다. 뿌리를 내리고 서있는 나무들의 모습이 위태롭게 보였다. 문자의 집은 아파트 단지 맨 안쪽에 있다. 경사로를 따라 한참 동안 걸어 올라가니 숨이 찼다.

“우리처럼 담배 피우는 사람은 숨차서 여기서 못 살겠는데.” 내가 말했다.

“나는 끊기 싫은데. 담배 끊으라고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는데 굳이 그걸 왜 끊어.”

“그럼 내가 잔소리해 줄까?”

“너부터 끊어 봐. 그럼 나도 고려해 볼게.”

문자가 아파트 현관문을 열자 늙은 치와와가 몸을 일으키려다 말고 고개만 드는 시늉을 했다. 거실로 들어간 문자는 개를 품에 안더니 머리와 등을 쓰다듬었다. 치와와의 아랫배가 부풀어 있었다.

“우리 아지도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대. 벌써 열세 살이야. 사람으로 치면 팔십 대래.”

“병원에서는 뭐래?”

“올봄을 넘기기 힘들 거래. 수의사는 종양이 많이 커졌다며 이제 안락사도 고려해 보래.”

“키우던 개가 죽으면 한동안 힘들 거야.”

“아마 그러겠지. 우리 아지가 죽으면 다시 애완견은 못 키울 것 같아.”

“많이들 그러더라.”

문자와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위스키를 마시기 시작했다. 치와와는 발밑에 누워 얼굴을 부비고 있었다. 병든 강아지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가련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천정에서 쿵 하고 소리가 났다. 커다란 북 속에 있는 것처럼 집안 전체가 잠시 흔들렸다. 진동 때문에 거실 창문까지 바르르 떨렸다. 나는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몸도 경직되었다.

“윗집에서 가끔 저런 이상한 소리를 내. 도대체 뭘 하는 걸까?”

“잠깐 동안 멀미가 났어. 도쿄에서 큰 지진을 당한 뒤로 진동에 몸이 반응하는 것 같아. 이걸 지진 멀미라고 한대.”

“심했어?”

“뭐가?”

“뭐긴, 도쿄에서 당한 지진 말이야.”

“건물이 무너질 것 같더라. 오 분 정도 심하게 흔들렸는데 마치 한 시간은 흐르는 것 같았어. 게다가 고층건물 안이라서 그랬는지 진동이 훨씬 더 심했지. 그 당시에는 함께 출장 갔던 사람들 모두 태연한 척 했지만, 속으로는 건물 잔해 더미에 깔려 죽는 줄 알았대.”

“사람은 죽는 순간이 닥치면 떠오르는 게 있다고 하던데? 살면서 하지 못해서 후회되는 일이나, 보고 싶은 사람이나, 아니면 화해하지 못한…….”

“아니, 난 그런 거 없던데.”

나는 위스키를 한 모금 마셨다.

“새벽에 회사 숙소에서 자다가 목이 말라 주방에 갔더니 냉장고 문이 열려 있더라. 냉장고는 벽에서 일 미터쯤 기어 나와 있고 말이야. 냉장고 전선이 싱크대에 걸려 개 목줄처럼 팽팽하게 뻗어 있었어. 밤새도록 수백 번의 여진이 있었거든.”

“그런데 도쿄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 그거. 지진이 난 다음날 귀국을 했으면 아무 탈이 없었을 텐데, 출장 일정 때문에 곧바로 돌아올 수 없었어. 주말이 끼인데다 지진 때문에 비행기 표도 매진이었거든. 그런데 홍보실장이 토요일 밤에 신주쿠 유흥가로 놀러 가자고 하는 거야.”

“정말? 그 난리 통에?”

“믿기지 않지? 김민서 과장이 싫다고 했어. 이 친구가 아까 전화했던 그 사람이야. 김 과장은 천성이 대범해서 윗사람 눈치를 잘 안 보거든. 김 과장이 그렇게 나오니까 나도 홍보실장에게 숙소 근처에서 맥주나 마시자고 했어.”

“그래서?”

“홍보실장이 일본에서 지진이 난 거랑 우리랑 무슨 상관이냐는 거야. 이런 대재난이 일어나면 몇 만 명쯤 죽는 건 일도 아니라고 하면서 말이야.”

“진짜? 그 인간 미친 거 아냐?”

“정나미가 뚝 떨어지더라니까. 그리고 홍보실장이 기어이 나랑 김 과장을 끌고 신주쿠 유흥가로 데려갔어. 무희들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성기까지 드러내며 춤을 추는 그런 곳이었어.”

“그 새끼 미친 새끼네.”

“나도 기분이 몹시 안 좋았어. 지진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이런 데서 나체쇼를 보고 있다는 게 내 스스로에게 도저히 용납이 안 되더라고. 그래서 나는 쇼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건물 밖으로 나가 버렸어. 잠시 후 김 과장도 나오더라.”

“그리고?”

“쇼가 끝나자 홍보실장도 나왔지. 그러면서 우리더러 도중에 나가는 게 어디 있냐며 야단을 치는 거야. 그건 무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면서 말이야. 그러자 갑자기 김 과장이 스무 살도 더 많은 홍보실장에게 욕을 했어. 운동권 출신이라고 떠들어대더니 민주투사 새끼 수준이 이거냐면서 말이야. 그러자 흥분한 홍보실장이 주먹으로 김 과장을 때리려고 했어. 내가 중간에서 겨우 말리기는 했는데, 그날 밤 분위기가 정말 사나웠어.”

“그래서 김 과장이 징계를 먹은 거야?”

“그건 아니고. 그날 밤 사건은 홍보실장도 잘한 게 없으니 우리 선에서 어정쩡하게 마무리되었지. 소문이 나면 홍보실장 본인에게도 좋을 게 없잖아. 그리고 출장을 마치고 귀국을 했지. 한동안 아무 일 없이 지냈는데, 얼마 전 그 사건이 회사에서 돌기 시작한 거야.”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들었네.”

“꼴사납게 된 거지.”

“그래서 어떻게 결론이 났는데?”

“김 과장이 더럽다며 사표를 냈어. 그 친구는 아직 미혼인데다 실무 능력이 제법 좋은 편이라서 금방 다른 직장을 구하겠지. 그런데 문제는 홍보실장 쪽이야. 소문이 안 좋게 돌자 홍보실장이 회사에 보고를 다른 식으로 한 것 같아.”

“어떻게?”

“그러니까 김민서 과장이 신주쿠로 놀러 가자고 해서 자기가 어쩔 수 없이 따라간 거라고 말이야.”

“웃긴 놈이네. 그 새끼 개새끼네. 개새끼.”

“김 과장이 나갈 때는 나가더라도 누명을 쓸 수 없다며 내게 증인이 돼 달라고 부탁을 했어.”

“증인?”

“회사에 사건 경위에 대한 보고서를 쓰고 퇴사를 하겠대. 내가 이왕 퇴사할 거면 그러지 말고 조용히 나가면 되는 거 아니냐고 달래 보았는데 말이 안 먹히더라고. 김 과장은 절대 그럴 수 없대. 죽어도 홍보실장이랑 함께 죽겠대. 자신은 손해 볼 것 없다며 말이지. 그래서 내가 중간에서 곤란한 상황이야.”

“그러게 왜 거길 따라갔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네.”

“그래.” 문자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직장 상사가 가자는데 어떻게 거절할 수 있었겠어. 그게 쉬운 일이 아니지. 내일 김 과장을 만나면 어떻게 할 건데?”

“몰라. 일단 만나 봐야지. 피하려고 했는데 잘 안 되네.”

“까딱하다가는 너까지 곤란해지겠네.”

“김 과장이야 어차피 떠날 사람이지만 홍보실장과는 계속 얼굴 맞대고 살아야 하니까 정말 죽을 맛이야.”

“그런데 우리 아지가 숨을 안 쉬는 것 같아.”

문자가 발을 조심스레 빼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손거울 하나만 줘 봐.”

문자가 손거울을 가지러 가는 동안 나는 치와와를 살짝 흔들어 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문자가 놀란 얼굴로 내게 손거울을 내밀었다. 나는 치와와의 코밑에 손거울을 대 보았다. 거울에 김이 아주 조금 서렸다.

“오늘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고마워.”

나는 거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열 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오늘 조금만 더 있다 가면 안 될까?”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갈 수도 있으니까 걱정 마.”

문자의 입가에 어색한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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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는 가정법원에 개명 신청을 했다. 나는 이제 문자를 수빈이라고 부른다. 나는 이름을 부르기 전 먼저 머릿속으로 수빈이라는 이름을 떠올린다. 다시는 문자라고 부르지 않기 위해서다. 깊은 밤, 눈을 감고 베개 밑에 손을 넣으면 떠오르는 유년의 음산하고 어두운 기억들이 모두 문자라는 이름과 함께 사라지길 바란다. 수빈은 얼마 전 버려진 새끼 고양이를 한 마리 입양했다. 고양이는 치와와보다 기르기가 수월하다고 한다. 그리고 새끼 고양이에게 묘희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나는 수빈이 그 새끼 고양이를 묘희라고 부를 때 야릇한 기분이 든다. 왠지 고양이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수빈이 앞으로 더 나은 삶을 살도록 응원하는 것이다.

도쿄에서 겪었던 대지진은 내 삶의 궤도를 크게 틀어 놓았다. 박진우 상무는 여전히 홍보실장으로 회사에 다니고 있으며, 김민서 과장의 사직서는 반려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박 상무가 김 과장 집까지 찾아가 정식으로 사과를 했다고 한다. 박 상무는 내게도 정중히 사과를 하며 용서를 구했고, 김 과장 역시 번거롭게 해서 죄송하다고 했다. 결국 회사 일이라는 게 늘 그렇듯이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나는 왠지 그들과 더 이상 함께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딱히 그들을 비난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날의 지진과 신주쿠의 무희를 생각하면 밀려오는 자괴감을 지울 수가 없다. 대지진으로 인한 죽음의 각성은 하루 만에 성기를 드러낸 채 춤을 추는 무희 앞에서 힘없이 무너졌다. 자의든 타의든 조직과 위계를 핑계로 나는 너무 멀리 가 버렸다. 결국 나는 건강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대고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다. 회사를 떠나자 나는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불안이나 두려움은 마음속에서 일지 않았다. 나는 뭔가 새로운 의욕이 생길 때까지 잠시 나를 내버려두고 싶다.

나에게 이런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요즘 내가 수빈이를 자주 만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정식으로 데이트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나는 수빈과 한 집에서 살 생각이 없다. 타인과 일상을 공유하기에 나는 너무 오랫동안 혼자 살아왔다. 내 삶에는 여전히 빈 공간이 없다. 그래서 수빈과도 멀찍이 떨어져서 만나는 게 좋다. 그렇게 하면 수빈이 내게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도쿄의 무너질 듯 흔들리는 건물 안에서 맨 먼저 떠올랐던 얼굴이 너였다는 것을 나는 수빈에게 말하지 않았다. 내가 죽게 될지도 모르는 그 순간 가장 보고 싶었던 사람이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수빈은 무슨 생각을 할까. 나는 앞으로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내 가슴 깊은 곳에 깃들어 있던 평온한 사랑이 깨어나던 그 순간을 나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싶기에.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