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왜 자살하지 않는가?”
<논리학> 시험에 특이한 문제가 출제되었다. 이번 학기 내내 진리함수, 귀납적 추리, 단항한량과 일반한량 따위로 철학과 신입생들을 괴롭혔던 안주희 교수님이 칠판에 단 하나의 문제만을 적고 분필을 내려놓자, 학생들의 허탈한 탄식과 안도의 한숨이 뒤섞였다. 누군가 손을 들고 논리학과 자살이 무슨 상관이냐고 질문할 법도 했지만 그런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서로 눈치를 보던 학생들은 하나둘 고개를 숙이고 답안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교수님은 조용히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한 시간 뒤 안주희 교수님이 돌아왔을 때 강의실에는 나 혼자밖에 없었다. 교수님은 학생들이 제출한 답안지를 읽기 시작했다. 교수님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강의실 밖은 사학과 학생들 때문에 조금 시끄러웠다. 몇몇 학생들은 빈 강의실인 줄 알고 문을 열기까지 했다. 교수님은 교탁 위의 답안지와 출석부를 정리하며 말했다.
“김신 학생. 시간이 다 되었네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답안지를 제출했다. 교수님은 내 답안지를 받더니 부드럽게 나를 바라보았다.
“철학이 부전공이죠? 불문과라고 했었나요?”
철학을 부전공으로 선택한 학생들은 드물었다. 그래서인지 철학과 교수님들은 철학 부전공 학생들의 얼굴을 대부분 알고 있었다. 점수에 떠밀려 철학과에 입학한 학생들보다 뒤늦게 철학 공부를 시작한 부전공 학생들의 진지함을 좋아하기도 했다.
“네.”
“논리학은 전공필수라서 백지 답안지를 제출하면 곤란해질 텐데요?”
“시간이 해결해 줄 겁니다.”
교수님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백지 답안지를 낼 거면서 왜 혼자 강의실에 남아있었죠?”
“학생들이 제출한 답안지가 분실되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저마저 없으면 복도에 있는 사학과 학생들이 강의실에 들어와 답안지를 읽을 수도 있잖아요.”
“더 남은 시험이 있나요?”
“아뇨. 논리학이 마지막 시험이에요.”
강의실 문이 열리더니 과대표로 보이는 학생이 강의실을 비워달라고 공손하게 요청했다.
“잠시 내 연구실로 갈까요?”
나는 손목시계를 힐끔 보았다.
“시간이 많지는 않아요.”
“차 한 잔 마실 시간이면 괜찮을까요?”
“네. 그 정도면…….”
우리는 강의실 밖으로 나와서 교수 연구동으로 향했다. 나는 안주희 교수님의 두어 발짝 뒤에서 천천히 걸었다. 교수님은 발걸음을 멈추고 내가 옆에 오도록 기다렸다. 우리는 잠시 동안 나란히 걸었지만 이내 간격은 다시 벌어졌다. 나는 다른 약속이 있다고 핑계를 대지 못한 걸 후회하며 보폭을 줄이고 있었다.
“겨울방학에 무슨 특별한 계획이라도 있나요?”
머그잔을 건네며 교수님이 말했다.
“논리학 공부를 다시 해야 하지 않을까요. 내년에도 낙제하면 부전공 인정이 안 될 테니까요.”
“낙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어차피 정답이 있는 문제도 아닌걸요. 그런데 왜 아무 내용도 쓰지 않았죠?”
“제가 자살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누구도 알 권리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건 사적인 것이잖아요.”
“사과를 해야겠군요. 미안해요.”
“그러실 필요는 없어요.”
교수님은 서랍을 뒤지며 뭔가를 찾았다.
“담배 드릴까요?”
내가 담뱃갑을 내밀었다.
“고마워요. 피우고 싶으면 피워도 돼요.”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교수님이 창문을 조금 열었다. 담배를 다 피우고 나더니 서가에서 책을 한 권 꺼냈다. 그리고 그 책을 내게 내밀었다.
“읽어 볼래요?”
까뮈의 <시지프 신화>였다.
나는 책을 받아 들며 무심결에 손목시계를 힐끗 훔쳐보았다.
“약속이 있다고 했던가요?”
“아뇨. 약속이 있는 건 아니고……. 아까는 구술시험이라도 보게 될까봐 시간이 별로 없다고 했던 거예요.”
교수님이 미소를 짓자 나도 모르게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성격이군요.”
교수님은 오디오에 시디를 한 장 걸었다. 음악 때문인지 어색함이 덜어졌다.
“왜 논리학 시험에 그런 문제를 내셨죠?”
“철학과 신입생들이 한번쯤 고민해 볼 문제잖아요. 비트겐슈타인은 비논리적인 삶을 산 대표적인 논리학자예요. 부유한 집안의 상속자였지만 그는 상속을 포기하고 시골학교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쳤어요. 그의 삶을 논리 기호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어떤 명제가 참이냐 거짓이냐 하는 문제는 말장난이에요. 세상은 참과 거짓으로 판명되는 그런 곳이 아니잖아요.”
“저는 마일스 보다 몽크를 더 좋아해요.”
내가 신호등이 그려진 마일스의 프레스티지 앨범 재킷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논리학자라서 그런지 몽크처럼 신비롭고 안개에 싸인 음악보다는 마일스처럼 선명한 게 좋은가 봐요.”
교수님은 담배를 한 대 더 피웠다. 사위가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왜 취업에 도움도 안 되는 철학을 부전공으로 선택했죠?”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철학은 음악이나 미술 같은 것이잖아요. 없어도 먹고사는데 문제는 없겠지만 알게 되면 다른 차원의 세상이 펼쳐지잖아요.”
교수님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대학원생 조교가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이제 그만 돌아가야겠다고 교수님에게 말했다.
“나는 방학 때 매일 연구실에 있을 거예요. 학교에 나오거든 가끔 들르겠어요?”
조교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네. 학교에 나오면 인사드릴게요.”
2
겨울. 눈보다 비가 많이 내렸다. 거무죽죽한 흐릿한 날이 계속되었다. 나는 매일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지만 안주희 교수님의 연구실에는 들르지 않았다.
“난 네가 고아 같아서 좋아.”
고전음악 동아리방에서 연수가 이 말을 했을 때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내가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는 말이라고 넘겨들었던 것 같다. 연수는 철학과 학생이었다. 삼수생 딱지에다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주위에 친한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녀는 불문과 복학생인 내게 자잘한 철학과 공지사항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가끔 인문대학 학생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으면 내 옆에 물 잔을 가만히 내려놓고 사라지곤 했다. 그녀는 모차르트와 쇼팽을 즐겨 들었고, 나는 동아리방에 혼자 있을 때면 말러의 가곡을 듣곤 했다.
“고아? 누구나 언젠가는 고아가 되지. 고아가 안 돼 본 사람은 가장 큰 불효를 짓는 사람이야. 조사부사자사손사(祖死父死子死孫死)는 효의 기본이야.”
내 말에 연수는 피식 웃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이 끝나자 연수는 아르바이트를 간다며 동아리방을 나섰다. 잠시 후 신입생들이 손에 시디 한 장씩을 들고 동아리방 문을 열었다. 들어올지 말지 쭈뼛쭈뼛 망설이고 있었다. 나는 동아리방을 나왔다.
아침부터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저녁 무렵 눈으로 변했고 매서운 바람 때문에 길은 얼어붙었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나는 교수 연구동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어느새 안주희 교수님 연구실의 문을 노크하고 있었다. 연구실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나는 내 귀를 한 번 세게 잡아당긴 후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연구실 문이 열리더니 안주희 교수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신 학생?” 내가 고개를 돌리자 “노크를 한 번만 하는 게 어디 있어요? 그건 예의가 아니지” 하고 교수님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쓸데없이 귀찮게 하는 것 같아서요.”
교수님의 새침한 표정이 이내 밝아졌다.
“괜찮아요. 어서 들어와요. 따뜻한 차 한 잔 마시고 가요.”
연구실에는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이놈의 담배 끊어야 하는데.”
교수님은 창문을 조금 열었다.
“커피? 아니면”
“커피, 좋습니다.”
나는 가방에서 시디 한 장을 꺼내 교수님에게 내밀었다. 교수님은 조금 놀라는 표정이었다.
“몽크의 음악 중에서 이게 가장 선명한 앨범인 것 같아서요.”
“그럼. 잘 들을게요. 지금 한번 들어볼까요?”
“아뇨. 혼자 계실 때 들으면 더 좋을 거예요. 몽크 자신에 대한 이야기라서 그런지 여럿이 들으면 맛이 잘 안 나요. 몽크를 들으면 세상이 고요해져요.”
“그래요? 그럼, 혼자 있을 때 들을게요. 그런데 재즈에 대해서 잘 아는 것 같아요.”
“그냥 그렇게 됐어요. 군에 있을 때 어머니와 형을 교통사고로 잃었는데, 형이 재즈를 무척 좋아했어요. 형의 유품 중에서 엘피와 시디는 제가 보관하기로 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히 듣게 된 거죠.”
“괜한 이야기를 꺼냈군요. 미안해요.”
“모두 지난 일인 걸요. 시간이 감정까지 잡아먹는지 이제는 무덤덤해요.”
교수님이 담뱃갑을 꺼냈다. 우리는 함께 담배를 피웠다.
“철학과 신입생 중에도 백지 답안지를 낸 학생이 있더군요.”
“이연수요?”
“어머. 어떻게 알았어요?”
“그 친구 말고 그럴만한 신입생은 없는 것 같아서요.”
“혹시 여자 친구? 이연수는 낙제시킬 걸 그랬군요.”
교수님이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심각한 사이는 아니에요. 제가 불문과라서 그런지 그 친구가 이것저것 챙겨 줘요.”
“여학생 후배들에게 인기가 많을 것 같은데요.”
나는 손목시계를 힐끔 보았다.
“약속이 있나요?”
“군에서 시계 보는 버릇이 생겼는데 잘 안 고쳐지네요. 며칠 전 비트겐슈타인의 책을 한 권 읽었어요.”
“어떤 책인데요?”
“논리철학논고요.”
“골치 아픈 책이죠.”
“저는 한계에 대한 부분이 끌리더군요. 언어의 한계, 세계의 한계, 인식의 한계. 그리고 삶의 한계. 자살도 결국 한계의 문제라고 생각했거든요.”
교수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탁상달력을 손에 들고 일정을 확인한 후 이렇게 말했다.
“오늘 저녁 식사 같이 할까요? 특별한 약속이 없다면 말이죠.”
우리는 식사를 하는 대신 맥주에 가벼운 스낵과 철학자들을 안주 삼아 이야기를 나눴다. 시작은 비트겐슈타인이었다. 그가 교사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초등학생을 위한 사전>을 이야기할 때 안주희 교수님은 조금 들떠 보였다. 이 사전은 알파벳순이 아니라 같은 종류의 단어를 중심으로 파생어를 더하는 방식이라며, 역시 비트겐슈타인다운 구성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가 한 학생의 손바닥을 때린 사건 때문에 결국 교사직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할 때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대화는 자연스럽게 클림트로 넘어갔다. 우리가 라벨의 <왼손을 위한 협주곡>을 이야기할 때 나는 취기가 조금 올랐다. 그 이후로는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교수님이 유학시절 결혼했던 남편을 과거형으로 말하고 있었다는 것이 어렴풋하게 생각날 뿐이었다.
살얼음이 낀 길은 몹시 미끄러웠다.
“댁이 어디세요?”
“걸어서 오 분 거리야.”
“모셔다 드릴게요.”
“괜찮아. 신이도 집에 들어가야지.”
빙판 때문에 교수님이 잠시 몸의 중심을 잃었다. 나는 넘어지려는 교수님의 손을 잡았다.
“괜찮아. 혼자 들어갈게.”
교수님이 내가 쥔 오른손을 오므렸다. 그리고 내 손에서 살며시 주먹을 빼냈다.
“연구실로 또 놀러 올 거지?”
“네.”
나는 교수님이 넘어질까 봐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안주희 교수님과 맥주를 마신 이후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 연구실을 찾았다. 가끔 교수식당에서 점심을 얻어먹기도 하고, 교수님이 빌려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나는 형이상학을 전공할걸 그랬나 봐. 학생 때는 존재론이란 게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흥미가 없었는데 공부를 할수록 아리스토텔레스가 왜 이걸 제1철학이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아.”
내가 빙그레 웃었다.
“어머. 왜?”
나는 얼굴을 붉힌 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3
“내일 바다 보러 가지 않을래? 겨울바다.”
연수가 아르바이트를 마치던 날 동아리방에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바다?”
“싫어?”
“그건 아니고.”
“그럼 됐네. 어제 내가 차표도 두 장 미리 끊어 놨어. 강릉이 가깝긴 한데 그래도 속초에 가고 싶어. 속초에는 산도 있고 호수도 있고 바다도 있잖아.”
연수는 요즘 서투른 화장을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민얼굴일 때보다 생기가 있어 보였다.
“고속버스로 가면 다섯 시간은 걸릴 텐데.”
“집에는 동아리 엠티 간다고 이미 이야기해 두었는걸.”
연수의 발그레한 볼이 붉게 달아올랐다.
연수가 마지막 아르바이트를 하러 동아리방을 나가자, 나는 안주희 교수님의 연구실로 갔다. 문은 잠겨 있었다. 내가 1층 우편함에 내일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다는 메모를 남겨 두려는데 교수님이 연구동 로비로 들어왔다.
“신이 왔네. 여기서 뭐해? 내 방으로 올라가자.”
교수님은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그리고 커피를 내리고 재떨이를 비웠다.
“내일 영화 보기로 한 약속을 다음 주로 미뤘으면 해서요.”
“급한 일이 생겼나 보네?”
“친구가 갑자기 내일 속초에 가자고 해서요. 제게 묻지도 않고 차표까지 예매하는 바람에 날짜를 바꾸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요. 죄송합니다.”
“연수?”
교수님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심각한 사이는 아니라더니 이제 심각해지겠는걸.”
“그건 아니고요. 저도 겨울바다가 보고 싶더라고요.”
연수와 속초 여행을 다녀온 후 안주희 교수님과 약속했던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는 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슴 한편이 몹시 시린 영화였다. 나는 왠지 안주희 교수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기가 불편했다. 교수님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였는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헤어질 때까지 영화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그날 밤 연수가 우리 집으로 전화를 했다. 연수는 평소에 말수가 많지 않았는데 그날따라 이상하리만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러더니 잠시 수화기 너머로 숨소리만 들렸다.
“오늘 <데미지> 보러 갔다며. 재밌었어?”
연수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슬픈 영화였어.”
“나도 내일 친구들과 보러가기로 했어.”
수화기 너머로 연수의 작은 숨소리만 들렸다. 나는 불현듯 연수에게 한없는 애정을 느꼈다.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이 내 가슴 깊은 곳에 문신처럼 새겨지는 것 같았다.
“기다려. 지금 갈게.”
우리는 그날 사랑을 나누었다. 연수는 한 번도 안주희 교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그것이 나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녀의 자존심 때문이었는지 알지 못한다. <데미지>로 인한 쓸데없는 소문은 돌지 않았다.
새 학기 등록금 고지서와 함께 성적장학금 대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안내문이 집으로 배달되었다. <논리학> 때문에 장학금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전공과목의 성적이 좋았다. 그 즈음 안주희 교수님의 연구실에 방문하는 횟수도 점점 뜸해졌다. 서로 바쁘기도 했지만 새 학기가 시작되고 교수님의 연구실은 항상 철학과 학생들로 북적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게 되었다. 게다가 나는 철학 부전공을 그만두었다. 대신 물리학과 생물학 강의를 들었고 초급 라틴어를 배웠다. 저녁에는 프랑스문화원에서 회화 수업을 받았다.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갔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되었을 때 안주희 교수님의 연락을 받았다. 교수님은 이번 학기를 끝으로 학교를 그만두었다고 했다. 칠월 말에 보스턴으로 떠나는데 그 전에 나를 한 번 보고 싶다고 했다.
“미안해. 이삿짐 때문에 집이 엉망이지.”
약속 시간이 20분이나 지났는데 교수님이 나오지 않아서 전화를 했더니, 교수님은 지금 중요한 전화를 기다리기 때문에 나갈 수 없다고 했다. 대신 나에게 잠시 집으로 오라고 했다.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교수님은 영어로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실례한다는 손짓을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통화는 꽤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나는 거실을 둘러보았다. 가전제품이라고는 작은 오디오 하나뿐이었다. 시디가 많았다. 지난겨울 내가 선물했던 <Thelonious himself>가 오디오 위에 놓여 있었다. 벽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었다. 가족사진이나 흔한 그림 따위도 걸려 있지 않았다. 벽에 못이 박힌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사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책들은 두꺼운 종이 박스에 들어가 있었지만 아직 테이프로 마감을 하지는 않은 상태였다. 그런 종이 박스가 서른 개도 넘었다.
이번에도 우리는 식사 대신 맥주를 마셨다. 비트겐슈타인은 등장하지 않았다. 나는 철학 부전공을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물리학과 라틴어 강의를 한 학기 동안 들었다고 했다. 우리는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학생들이 mare의 라틴어 격변화를 몰라 야단맞는 장면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맥주 집 유리창 너머로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교수님이 왜 사직을 하고 미국으로 떠나는지 묻지 않았다. 다만 오랫동안 별거 중이었던 남편과 서류 정리가 끝났다는 것을 알아챘다. 과거형으로만 존재하던 그가 잠시 현재형으로 튀어나왔다가 다시 과거형으로 묻혔고, 미래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인물처럼 여겨졌다. 교수님은 고독해 보였다. 외로움이나 쓸쓸함이 아니라 뼛속 깊이 침잠해 있는 오래된 고독이 그녀의 온몸에 박혀 있는 것을 나는 느꼈다. 빗방울은 굵어졌다. 바람도 세차게 불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가늘어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맥주를 몇 잔 더 마셨고 취기가 올랐다. 지하철이 끊길 시간이 다가오자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수님은 우산이 없었다. 청바지에 샌들 차림이어서 집까지 뛰어가겠다고 했지만 그러기에는 비가 너무 많이 내렸다. 나는 접이식 우산을 펼쳐 교수님을 집까지 바래다 드렸다. 오 분 거리밖에 되지 않은 길이었지만 우리는 흠뻑 젖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교수님의 젖가슴이 내 오른팔에 닿았다. 지하철도 버스도 끊겼다. 폭우 때문에 택시를 잡을 수도 없었다. 나는 작은 접이식 우산에 몸을 숨기고 오른팔에 닿던 그 작은 가슴의 촉감을 생각하며 한없이 걷고 또 걸었다. 고요한 밤이었다.
4
졸업 후 나는 한 대기업 계열사에 취직을 했다. 입사 동기들 보다 승진이 조금 빨랐고 그 만큼 스트레스도 컸다. 직장에서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연수와 결혼을 했다. 연수는 아이를 원했다. 그러나 나는 거부했다. 나는 그녀의 생리주기를 다이어리에 몰래 표시했고 배란기에는 술자리마저 피했다. 피치 못할 회식 자리에라도 참석하게 되면 작은방에서 혼자 잤다. 장인은 비둘기처럼 둘이서만 좋아하지 말고 이제 진정한 가정을 꾸리라고 했지만 강요는 하지 않았다. 처갓집 식구들은 말수가 없는 나를 어려워했고 나는 그게 편했다. 아버지는 끝내 재혼을 하지 않고 돌아가셨다. 사랑하는 아내와 큰아들을 교통사고로 한꺼번에 잃어버린 그의 노년은 쓸쓸했다.
“난 네가 고아 같아서 좋아.”
고전음악 동아리방에서 연수가 했던 이 말의 의미를 나는 이제 안다. 나를 둘러싼 그 어느 것도 그녀를 옭아매지 않았다. 연수를 만나기 전부터 나는 정서적으로 고아였다. 우리는 서로를 구속하지 않았다. 우리는 선을 넘지 않는 한에서 각자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갔다. 가끔 연수의 머리칼에서 남성용 스킨 냄새가 났지만 나는 모른 척 했다. 쓸데없는 망상으로 우리의 안락과 평화를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연수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는지 내 와이셔츠 깃에 묻은 루주 자국 따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연수는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며 몇 권의 베스트셀러를 만들었다. 연수가 담당했던 마케팅 서적이 우리 회사에서 필독서로 지정되었을 때, 나는 연수에게 축하를 해 주었지만 그 책을 읽지는 않았다. 그녀 역시 자신이 담당했던 베스트셀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연수는 몇몇 대형 출판사로부터 이직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매번 거절했다. 연수는 출판사에서 가장 젊은 팀장이 되었고 얼마 후에는 편집장으로 승진했다. 어느 날 연수가 불임수술을 받겠다고 했을 때 나는 말리지 않았다. 더 이상 다이어리에 그녀의 생리주기를 표시할 필요가 없어졌다. 둘이 살기에 좁지 않은 아파트와 두 대의 자동차 그리고 클래식과 재즈를 가리지 않는 오디오. 연수와 나는 그렇게 정해진 길을 따라 걸어갔다. 비트겐슈타인과 까뮈는 십 년이 넘도록 한 번도 입에 올린 적이 없는 사람들로 내 기억 속에서 서서히 지워져 갔다. 연수가 사용하는 프랑스산 화장품인 BEAU-TEMPS을 보땅이라고 읽을 수는 있었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는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회사에서 프랑스어는 라틴어처럼 죽은 언어였다. “나는 왜 자살하지 않는가?” 이런 질문 따위는 우리 삶에 끼어들 틈이 없었다. 안주희 교수님 말처럼 이런 철학적 고뇌는 때가 있는 것이었다. 세상은 거무죽죽한 진회색이었고 논리학으로 설명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안주희 교수님과의 우정은 이메일로 계속 이어졌다. 교수님은 보스턴의 한 대학에서 논리학과 언어철학을 강의한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정교수로 임용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몇 년 전 뉴욕으로 출장을 갔을 때 나는 교수님을 만나려고 했다. 뉴욕에서 보스턴까지는 지척이었다. 하지만 그때 교수님은 시애틀에 가 있었다. 나는 출장 일정을 며칠 더 연기해 보려고 갖은 애를 썼지만 허사였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쉴새없이 뒤척였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나는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연수를 시내로 불러내 호텔에서 근사한 식사를 하고 격렬한 사랑을 나누었다. 한동안 안주희 교수님과의 연락이 끊겼다. 이메일을 보냈지만 답장은커녕 수신도 하지 않았다. 전화도 해보았지만 교수님은 받지 않았다. 다른 중요한 일에 몰두를 하고 있거나 아니면 멋진 남자와 사랑에 빠진 것이라고 여기며 먼저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나, 여기 부산이야.”
휴대폰 너머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지만 분명히 안주희 교수님이었다.
“네.”
“신이는 여전히 말수가 없구나.”
“교수님, 건강하시죠?”
나는 탁상달력을 들고 스케줄부터 확인했다. 연수는 어제 뉴욕으로 출장을 떠나서 서울에 없었다.
“그럼. 이번 가을 학기부터 여기서 강의하고 있어. 연락이 늦었지. 미안해.”
나는 그리움에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신이 한번 보고 싶은데…….”
“교수님, 이번 토요일에 뵐 수 있어요. 부산에 도착하면 전화 드릴게요.”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밀린 업무를 내버려두고 사무실을 나왔다. 그리고 가로등이 켜질 때까지 밤길을 걷고 또 걸었다.
5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신이는.”
토요일 아침 옷장의 옷을 반은 꺼내 입고 벗고를 반복하다가, 결국 청바지와 분홍빛이 도는 셔츠에 가벼운 재킷을 걸친 나를 보고 교수님이 놀라며 말했다.
“뱃살이 하나도 안 나왔네. 대학생이라고 해도 믿겠는걸. 이거 질투가 나는걸.”
교수님이 잠시 새침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환하게 웃었다.
“교수님도 그대로인걸요.”
안주희 교수님은 옛날 그 모습 그대로 아름다웠다. 서글서글한 눈매에 온화한 미소 그리고 적당히 마른 몸매. 거기에 희끗희끗한 머리카락 때문인지 훨씬 더 이지적인 매력이 풍겨났다.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견딜 수 없던 그리움이 폭발했는지 아니면 교수님의 안녕을 확인하고 안도감에 마음이 놓였는지, 나는 교수님을 두 팔로 꼭 껴안았다. 교수님도 거부하지 않고 나를 안았다.
“신이에게 이런 면이 있는지 몰랐네.”
부산역을 빠져나오며 교수님이 말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우리는 빛바랜 추억들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과거의 일들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펼쳐졌다.
“그때 왜 제게 B학점을 주셨어요? 하마터면 장학금을 놓칠 뻔 했던 거 아세요?”
“C학점이 아니었어? 백지 답안지를 낸 불량 학생에게 B학점도 과분한 거지. 진지하게 답안지를 작성한 학생들이 몇 명 있었어. 그 학생들에게 A학점을 주고 나머지 학생들에게는 모두 B학점을 줬을 거야.”
“당시는 상대평가가 아니었나 보네요.”
“그런가? 그건 잘 기억이 나질 않네. 그런데 한 학부모가 학생들에게 자살을 조장한다며 거세게 항의하는 바람에 혼이 났지. 새 학기가 시작되기 직전이라서 성적 때문은 아닌 것 같았는데 말이야.”
“저는 철학과가 아니라서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몰랐네요. 철학 부전공도 포기하는 바람에 철학과 학생들을 만날 기회도 없었거든요.”
“그때 그 일이 잘 터진 것 같아. 나는 그때 누구를 가르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거든. 오히려 잘됐다 싶었지.”
“혹시 그 일 때문에 사직하신 거예요?”
“아니, 그 일 때문은 아니야. 난 공부를 더 하고 싶었어. 그런데 운 좋게 보스턴에서 나를 찾는 대학이 있었던 거지. 마침 집안일도 정리되었고 말이야. 그거 알지?”
교수님은 마치 남의 일처럼 담담하게 말했다.
“교수님이 그분을 과거형으로만 말하는 걸 보고 눈치챘죠.”
“그래? 눈썰미가 좋네. 그걸 다 알아채고 말이야.”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다. 교수님은 내가 말수가 늘었다며 즐거워했다. 나는 그건 아마도 남성 호르몬이 줄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농담을 했다. 교수님은 그 특유의 새침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우리는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바다가 보이는 횟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전망이 트인 창밖으로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지난 삶의 궤적에 대해서 털어놓으며 서로의 시간을 맞추어 보았다. 교수님은 여전히 독신이었고, 철학자로서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 계속 공부 중이었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철학을 가르치기는 하지만 “나는 왜 자살하지 않는가?” 따위의 질문은 더 이상 던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해, 그러니까 우리의 연락이 한동안 끊겼던 그때 그녀는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입에 잘 맞지 않은 음식과 불규칙한 생활, 그리고 그 보다 더 나쁜 고독이 그녀의 건강을 서서히 좀먹고 있었던 것이다.
“서울로 올라오실 거예요?”
“그건 잘 모르겠어. 부산은 처음인데 바다가 있어서 좋네.”
“아직 소녀네요.”
“소녀?”
교수님의 입이 귀에 살며시 걸리며 볼에 붉은 기운이 돌았다. 술을 더 이상 마시지 않는 교수님은 술잔에 물을 채워 내가 잔을 들 때마다 건배를 해 주었다. 오래된 친구를 새로 사귀는 기분이었다. 편안했지만 설렜다.
“댁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교수님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에서 가깝네요.”
택시가 아파트 단지 입구에 서자 내가 말했다.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택시를 타지 않아도 될 거리였다. 나는 접이식 우산을 펼쳤다.
“우산을 왼손으로 들면 안 될까?”
나는 우산을 왼손으로 바꿔 들었다. 그러자 교수님이 내 왼편에 섰다. 우리는 함께 우산을 쓰고 단지 안쪽에 있는 교수님 아파트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교수님의 젖가슴이 내 왼팔에 스쳤다.
“또 연락 드려도 되죠?”
“그럼. 언제든지.”
교수님은 나를 아파트 안으로 초대하지 않았다. 나는 왼팔을 스치던 그 작은 젖가슴의 촉감을 떠올리며 해운대 백사장을 향해 걸었다. 파도는 잔잔했다.
나는 가끔 부산 출장 업무를 만들었다. 직위를 남용하지 않는 선에서 권한을 행사했다. 부산지사 직원들은 본사 감사실 부장의 출장에 매번 긴장을 했다. 토요일에는 안주희 교수님과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함께 바닷가를 산책하곤 했는데 그때면 으레 교수님의 철학 강의를 들어야 했다. 교수님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고 했던 젊은 비트겐슈타인보다 그저 자연에 맡기라던 만년의 그가 더 좋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할 때 그녀는 편안해 보였다. 교수님은 내 일상에 대해서도 궁금해 했지만 나는 따분하고 지루한 회사생활 이야기는 되도록이면 피했다. 그리고 연수 이야기가 나오면 화제를 다른 쪽으로 슬며시 돌리곤 했다. 나는 지켜야 할 선을 넘지 않았기 때문에 연수에게 교수님과의 우정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의 우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안주희 교수님은 부산에 정착한 지 두 해를 넘기지 못하고 암이 재발하여 짧은 생을 마감했다.
임종이 가까웠을 때 나는 교수님의 손을 처음으로 잡았다. 내가 두 손으로 교수님의 오른손을 감싸자 그녀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내 왼손에 깍지를 끼웠다.
- 끝 -